<서소희의 함양기행 24편>대덕리 마애여래입상(2) 서소희 시민기자 할머니의 몸은 열이 펄펄 끓었습니다. 매일매일 잠만 잤습니다. 엄마는 여러 가지 약초를 달인 물을 할머니에게 먹였습니다. 며칠 뒤 할머니는 열은 내렸지만 기침은 쉽게 멈추지 않았습니다. 가슴을 부여잡고 기침을 하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봉점의 가슴도 따끔거렸습니다. “내일은 꼭 병원에 가야겠어요?” “늙어서 하는 기침인데 병원은 무슨······.” 엄마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할머니 고집은 고래심줄처럼 질겼습니다. 엄마는 또 다시 도라지를 다렸습니다. 그 물을 마시면 기침이 멈춘다고 했습니다. 봉점이네 밭에서 자라는 도라지는 산삼처럼 약효가 좋다고 소문이 난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도라지 달인 물을 먹고 할머니의 기침은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봉점은 할머니가 낮잠을 주무실 때 혼자 돌부처를 찾아왔습니다. 혹시라도 봉점의 소원을 들어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돌부처야! 할머니 얼른얼른 낫게 해줘.” 슬픈 봉점의 마음을 위로하듯 바람이 겨울 산의 향기를 실어왔습니다. 맑은 향기에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봉점아. 봉점아!” 봉점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야. 돌부처.” 봉점은 깜짝 놀랐습니다. “어. 어. 어! 너는 말 못하는 돌부처잖아?” “그럼 넌 말 못하는 나한테 무슨 얘기를 그리했니?” “너는 돌부처인데······.” 봉점은 너무 놀라 같은 말만 반복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하나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가끔 사람들은 내 목소리를 듣기도 해.” 마음이 샘물처럼 맑은 사람은 돌부처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일까요? “봉점아. 눈이 펑펑 내리는 날 할머니는 떠나신단다.” “어디로?” “아주 멀리······.” 봉점은 할머니가 떠난다는 생각에 고개가 옆으로 쓰러졌습니다. “봄이 오면 너는 입학을 하고 친구도 많이 생길거야.” “나는 할머니가 참 좋은데······.” “봉점아! 사람들은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는 법이야.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지나간 자리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단다. 항상 가슴 속에 따스하게 남아있을거야.” “그래도 싫어! 할머니랑 오래오래 함께 살고 싶어.” 봉점은 엉엉 소리 내 울었습니다.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며 눈을 떴습니다. 봉점이가 눈을 껌벅이며 바라보니 돌부처는 여전히 바위에 새겨진 벙어리 돌부처였습니다. “깜박 졸면서 꿈을 꾸었나?” 정말 봉점은 꿈을 꾸었던 것일까요? 하지만 돌부처의 마지막 말은 자꾸 메아리가 되어 봉점의 심장에 부딪쳤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가슴속에 남아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할머니의 도라지 달인 물을 마시자 기침하는 횟수는 조금씩 줄었습니다. 하지만 힘이 없다며 누워서 잠만 자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동안 할머니를 지켜보던 엄마는 읍내 큰 병원에 전화를 했습니다. 한참 후. 삐-뽀-삐-뽀 하는 소리가 앙상한 나무 가지를 헤치며 들려왔습니다. 구급차가 봉점이네 집에 도착하던 그 시각. 하늘에는 매화 송이만한 하얀 눈들이 하나씩. 둘씩 날아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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