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 출생의 사진기자 캐빈 카터는 남아공 살육현장의 참상을 사진에 담아 세상에 알림으로써 조국의 변화를 꿈꾸었습니다. 다른 사진기자 캔 암더벡. 실바. 그렉마리노비치등과 함께 뱅뱅Bangbang클럽이라는 이름으로 폭력과 총탄이 빗발치는 참사의 현장에서 활동하며 처참한 참상을 세계에 알려왔습니다. 마침내 캐빈 카터는 아요드 식량보급소로 가던 중‘소녀와 독수리’라는 사진 한 장을 찍게 되었고 그 사진으로 마침내 1994년 세계 최고 권위의 <퓰리처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소녀와 독수리’ 사진은 신문에 실린 바와 같이 아프리카 수단의 폐허에 굶주림에 죽어가는 어린 소녀 뒤로 독수리가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은 먹지 않는 독수리가 끈질기게 소녀의 주변에 앉아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소녀는 기아로 굶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참혹한 굶주림의 죽음. 그 절박한 순간을 지켜보며 캐빈 카터는 생생한 기아의 사진 한 장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습니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전에 소녀를 먼저 구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비난이 맹렬히 일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진이라도 윤리를 저버린 사진작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어린생명마저 이용한 부도덕한 사람은 상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분노를 나타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캐빈 카터는 20분간만 소녀 사진을 찍고 식량보급소에 데려다 주어 생명을 구했다고 합니다. 결국 사람들의 비난을 견디지 못한 그는 수상 3개월 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수단의 참상이 알려져 수단은 전 세계 국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프리카는 신이 버린 땅으로 자주 묘사됩니다. 기아와 질병과 전쟁과 노예로 저주의 땅이 되었습니다. 그 비극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유니세프Unicef에서 안성기씨가 나와 월 3만원의 가족이 되어 죽어가는 생명을 구해달라고 호소합니다.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에서도 굶고 병들어 죽어가는 세계 각국의 어린이들을 도와달라고 호소합니다. 한비야는 여행가를 집어치우고 아예 생명구호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21세기가 되어도 밥을 못 먹어 굶주림과 질병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한없이 많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내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대학에서 프랑스어 연수받을 때 일입니다. 번화가 건물 한 기둥에 비스듬히 기대어 술 취해 졸고 있는 20대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빡빡 머리를 깎았습니다. 앞에 종이로 이렇게 쓰여 있었고 모자가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Apres Prison. un Pain!> -감옥에서 나왔음. 빵을!- S’il vous plait ‘부탁합니다’ 라는 예의상 표현도 없이 술 먹고 취해 쓰러져 있는 거지의 모습을 보며 유럽 거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술병이 옆에 놓여진 거지에게 누가 동정을 하여 빵을 줄까? 저렇게 새파랗게 젊은 젊은이가 일하지도 않고 벌건 대낮에 술 취해 쓰러져있는 사람에게 누가 도움을 줄 것인가? 그러나 그런 나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그의 모자 속에는 1프랑. 10프랑의 동전과 붉은 종이돈이 제법 놓여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할머니가 한참을 쳐다보더니 가방을 열어 돈을 꺼내 모자에 공손히 갖다 놓는 것을 보았습니다. 젊은이가 보고나 말거나 고맙다고 말을 하거나 말거나 상관없는 태도였습니다. 왜 할머니는 돈을 주었을까? 내가 이른 결론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연민. 동정 등의 의미를 포함하여 자유와 관용을 보여주는 프랑스인들의 고품격 ‘똘레랑스tolerence’일 것입니다. 젊은이가 저렇게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면 언젠가는 저 젊은이가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사회의 일원으로 돌아가 건강한 일꾼이 될 것이다. 한때 누구나 겪는 절망과 방황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기다려주자. 저 젊은이의 젊음을 버리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러니 나의 이 한 푼이 어쩌면 그에게 희망을 줄지도 모른다. 아마 이런 뜻으로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인도의 거지들을 철학적 거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지가 거지다워야 하는데 구걸하는 사람이 오히려 오만스럽다는 겁니다. 돈을 주면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받고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선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당신은 나로 하여금 선을 행할 수 있었으니 나에게 감사하라는 겁니다. 부처님 속에서 자비를 베푸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거지인 나라는 겁니다. 하.하. 얼마나 재미난 철학자 거지입니까? 겨울이 오면 우후죽순 각종 단체에서 불우이웃성금 모금행사가 펼쳐집니다. 구세군 자선냄비가 걸리고 땡그랑 종소리가 지나는 행인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연탄 한 장이 없어 떨고 있을 가난한 이웃과 돈이 없어 치료조차 하지 못하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또 무언가 힘든 이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랑의 모금은 아무리 지나쳐도 과하지 않습니다. 함양 사람들은 원래 정이 많아서 그런지 인정이 아주 많습니다. 불우한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미담사례가 끊이지 않습니다. 사랑의 집을 지어주기나 참 고마운 가게로 남을 도와주거나 독거노인에게 도시락과 반찬을 배달해주거나 연례적으로 김장을 담아 나누어 주는 여성단체도 많습니다. 불우한 사람에게 써 달라며 적지 않은 돈을 기부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평생 염소를 기르며 안 쓰고 안 먹고 모은 돈 1억원을 자신의 고향 학교 안의고에 장학금으로 써달라고 아낌없이 내놓은 안의면 정갑연 염소할머니(80세)를 기억하시나요? 함양군 장학회에서는 함양고를 비롯한 관내 학교에 매년 13억 정도가 미래자원을 위해 쓰여지고 있다니 함양의 온정은 100도가 아니라 태양폭발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금이 부자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가진 보통의 사람들 주머니에서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마련된다는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부자들은 다 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의 부자들은 99억을 가지고 1억이 모자라다고 팔을 내젓고 부정축재하기에 기를 쓴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부자가 존경받지 못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재벌들은 부정축재로 다 감옥에 한번 씩 들어갔다 나옵니다. 재벌의 자격증을 감옥에서 주는 모양입니다. 프랑스 말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즈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회의 고위층이나 지도층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사회에 대해서 일정 정도 이바지해야 할 도덕적. 윤리적 의무의 무엇인가가 있다는 뜻의 말이지요. 즉 공동체적인 이웃에 사랑과 연민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유한 캠벌리 회사 아시나요? 유일한 사장님을 아시나요? 자식에게 대학을 졸업시켜주었으니 이제부터 너는 너 스스로 자립해라라고 말하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사람. 회사는 회사의 사람들 것이니 다 주주가 되는 유한회사로 사회에 남겨두겠다고 실천하고 죽은 사람.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 자비를 베풀라는 부처님의 말씀. 말은 쉬운데 실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돌이켜보면 부끄러울 뿐입니다. 한끼 밥이 무어라고 그것도 못 먹어 죽어가는 세계의 사람들이 엄청난 숫자에 이르는데 내 것 풍부한 것을 조금 아껴 도와준다면 좋겠습니다. 10.000명이 넘게 죽은 필리핀 ‘하이옌’ 태풍의 참상을 보며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나요? 남을 도와주는 일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지요. 한번 동참해보면 마음에 따스한 무언가가 고이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동정이 아니라 사랑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트라스부르그 거지는 밥을 구걸한 것이 아니라 따스한 사랑을 찾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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