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춘천에 살면서 생활협동조합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지인의 페이스북 게시판에 도루묵에 관한 홍보물이 올라왔다. 도루묵의 계절이다. 지금은 떠나오고 자주 갈 수 없는 곳이지만 춘천은 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아주 특별한 곳이다. 그곳엔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는 수많은 추억들로 가득한데 그 추억들은 늘 허겁지겁 먹던 음식들과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그 시절을 기억하면서 떠올릴 수 있는 음식들 중에 생선은 양미리와 고등어자반. 그리고 도루묵 정도가 전부다. 아주 가끔 장날이면 할아버지께서 사들고 오시던 고등어자반은 지나치게 비리기도 하고 쌀뜨물에 하루저녁을 불린 후 조리해 먹어야 할 만큼 너무 짜서 그랬고. 양미리는 꾸덕꾸덕하게 말려진 상태로 사와서 주로 조림을 해먹었는데 어쩐지 나는 그 양미리조림은 별로였었다. 하지만 도루묵은 아니다. 수수알 같은 큰 알들이 한 보따리나 들어 있어 오로지 알만 있는 생선처럼 보이는 도루묵은 조리해 놓았을 때의 모습이 마치 해산을 코앞에 둔 배부른 임산부가 허리를 뒤로 젖힌 모습과 같아 일단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알이 입안에서 오독오독 씹히는 맛은 맛도 맛이지만 어찌나 재미있는지 그 재미난 ‘알맛’을 나이든 지금도 나는 잊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언젠가는 어머니와 함께 춘천엘 갔다가 시청 앞에서 도루묵찌개를 전문으로 파는 음식점을 발견하고 들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냉동한 도루묵으로 끓여주는 그 찌개는 옛맛이 나지 않았다. 도루묵은 역시 찬바람이 나는 11월쯤이 되어서야 제 맛이 나는 생선이었던 것이었다. 도루묵은 원래 ‘묵’ 혹은 ‘묵어’라고 불리던 가을에 출몰하는 동해안의 계절생선이다. 성어라고 해도 기껏해야 15~20cm 내외의 작은 크기지만 지방이 적고 담백하면서 살이 연하여 먹을만 하다. 11월과 12월에 본격적인 산란기라 이때에는 어떤 조리법으로 음식을 해도 맛나다. 석쇠에 얹어 구우면 그대로 좋고. 고추장 양념에 자작하게 조림을 해도 좋으며 고성이니 속초지역에서는 식해나 깍두기를 담아 먹기도 하니 생선치고는 조리법도 꽤 다양한 편이다. 하지만 산란이 끝나면 원래도 적었던 체내 지방이 빠져 나가 맛이 없어 식탁에서 퇴출 당한다. 도루묵의 유래는 조선시대의 선조와 관련된 것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으나 역사적으로 그 근거를 찾기 어렵다 한다. 하지만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광해군 시절에 전북의 함열 지방으로 귀양 갔을 때 쓴 전국팔도 음식평론서인 ‘도문대작’에는 환목어를 우리말로 풀이한 도루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동해에서 나는 생선으로 처음에는 이름이 목어(木魚)였는데 전 왕조에 이 생선을 좋아하는 임금이 있어 이름을 은어(銀魚)라고 고쳤다가 너무 많이 먹어 싫증나자 다시 목어라고 고쳐 환목어(還木魚)라고 했다.” 은어면 어떻고 목어면 어떤가. 다시 도루묵이라 해도 그 맛이 어디로 가겠는가. 재미와 맛만 좋은 것이 아니라 영양도 풍부하니 어떻게 찾아 먹지 않을 수 있겠는가. EPA. DHA가 풍부하여 성장기 어린이의 두뇌 발달에 좋으니 아이들에게 먹이면 알을 먹는 재미와 영양이 더해져 이만한 아동요리가 없을 것이다. 지방이 적은 반면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들어있어 비만 걱정이 없는 도루묵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도 좋을 생선임에 틀림없다. 가시도 거세지 않아 푹 조리면 뼈째 먹을 수도 있어 좋다. 아침에 무를 넉넉히 넣고 도루묵조림을 했더니 어머니께서 잘 드신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도루묵구이에 대한 말씀을 한참 하신다. 며칠 내로 다시 도루묵구이를 상에 올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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