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하지만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옛날입니다. 대덕리 필봉산자락 어디쯤에 아주 작은 산골마을이 있었습니다.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고 함양읍이 환하게 보이는 곳입니다. 그곳에 봉점이네가 살았습니다. 봉점이네는 산비탈에서 매실. 도라지. 밤나무 등등 여러 가지 농사를 지었습니다. 마을에는 봉점이 또래가 한명도 없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농사일로 바빠서 봉점과 놀아주지 못했습니다. 봉점은 항상 혼자서 놀았습니다. 혼자서 소꿉놀이를 하고. 혼자서 고무줄놀이를 하고. 혼자서 공기놀이를 했습니다. 혼자서 하는 놀이는 재미가 없었습니다. 작은 마을에는 부처님이 새겨진 커다란 바위가 있었습니다. 정말 오랜 옛날. 아마 고려시대쯤? 이곳에 절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봉점은 매일매일 돌부처를 찾아가 소원을 이야기했습니다. “돌부처야 나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 봄바람을 타고 아지랑이가 산봉우리를 넘어왔습니다. 그리고는 톡. 톡. 톡 매화꽃이 하얀 꽃잎을 열었습니다. 산비탈은 매화꽃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달콤한 매화꽃향기를 타고 대전에서 친척 할머니가 옆집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몸이 약한 할머니는 고향에서 따뜻한 햇볕과 바람과 함께 보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돌부처가 소원을 들어주었던 것일까요? 봉점은 할머니와 금세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사를 오기 전. 아파트에서 혼자 지냈던 할머니도 봉점이가 있어 외롭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어 봉점이가 숨 쉬는 것도 잠시 잊어버릴 정도였습니다. 이야기를 마칠 때는 항상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람이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것이란다” 그런 말을 하는 할머니 얼굴은 무엇인가를 그리워하는 듯. 혹은 쓸쓸한 듯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겨울이 오고 또 겨울이 왔습니다. 겨울이 되니 어둠이 빨리 산봉우리를 넘어갔습니다. 빨리 찾아온 어둠만큼 일찍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였습니다. 봉점은 번개처럼 돌부처가 생각났습니다. 하루 종일 기운 없어 고개를 들지 못하던 할머니의 모습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엄마! 우리 할머니한테 가보자.” “날도 어둡고 추워서 안 돼!” 결국 엄마는 떼를 쓰는 봉점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현관문을 여니 매운바람이 왈칵 엄마와 봉점을 덮쳤습니다. 코끝이 찡했지만 봉점은 할머니 집에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봉점은 작은 손으로 할머니 집 대문을 쿵쾅쿵쾅 두드렸습니다. 대문 너머에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깊이 잠드실 시간이 아닌데······.” 엄마는 키 작은 대문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그리고는 방문을 열었습니다.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봉점은 덜컹 겁이 났습니다. 봉점은 얼른 부엌으로 갔습니다. 부엌에는 된장냄새가 진동했습니다. 된장을 담았던 뚝배기가 조각조각 깨져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할머니가 쓰러져 계셨습니다. 엄마는 할머니를 방으로 옮겼습니다. 할머니 몸은 열이 펄펄 끓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입술을 달싹 거렸습니다. 마치 물을 찾는 금붕어 입술 같았습니다. 엄마가 얼른 부엌으로 가서 물을 가져왔습니다. 할머니는 물을 한 사발 드시고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많이 놀랬제? 괜찮다.” “오늘은 저희 집에서 주무세요.” 엄마와 봉점이가 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계속) *함양 대덕리 마애여래입상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19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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