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끝이 났다. 산삼축제도 물레방아 축제도 모두 끝이 났다. 파란 하늘에 띄웠던 커다란 풍선도. 바람에 펄럭였던 깃발도. 허공에 소원을 매달았던 오색등도 모두 사라졌다. 그뿐이 아니다. 여름날의 뜨거웠던 햇살도. 햇살 아래 빛나던 꽃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홀로 상림(上林)을 걸었다. 숲속은 고즈넉했다. 아니다. 숲속은 온갖 소리들로 가득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멀리서 음악소리도 들렸다. 그리고 새소리가 들렸다. 새는 어디쯤 있는 것일까. 새를 찾아 움직이던 눈동자는 작은 다람쥐를 발견하였다. 그녀석이 찾는 것은 도토리일 것이다. 도토리? 도토리가 벌써 떨어졌단 말인가. 꿈속에서 깨어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숲은 황금의 색깔로 출렁이고 있었다. 여름날 시원함을 자랑했던 푸른 잎들은 어느새 노랗게 혹은 발갛게 변해버렸다. 그리고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빨간 열매들이 톡톡톡 모습을 드러내었다. 한차례 차가운 바람이 나뭇잎을 건드리며 지나갔다. 수수수 울음을 울던 나뭇잎은 더욱 고은 빛으로 파도를 일으켰다. 바람 속에 물감이 숨겨져 있었던 것일까. 바람의 손길에 숲이 화려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상림은 천연기념물 제154호이다. 약 1.100년 전 신라 진성여왕 때. 당시 함양태수를 지내던 최치원이 호안림(護岸林. 제방의 보호를 위한 숲)으로 조성한 인공림이다. 사람들은 함양을 흐르는 하천의 범람과 수해를 막기 위해 둑을 쌓고 물길을 돌렸다. 그리고는 노간주나무. 생강나무. 개암나무. 물오리나무. 서어나무 등등 여러 가지 나무를 심었다. 강기슭과 하천 부지를 잦은 홍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숲은 천년을 지탱해 오고 있는 것이다. 천년의 세월동안 나무는 어떻게 뿌리를 내렸을까. 뿌리가 아무리 실하다고 해도 나무는 물 없이는 살 수 없다. 살던 땅을 떠나 새 땅에 정착 하는 나무에게 필요한 것은 맑은 물이다. 그러고 보니 숲에는 맑은 샘물이 있었다. 아마 낯선 곳에 자리 잡은 나무는 그 샘 줄기에 뿌리 한 자락을 담그고 있을 것이다. 내가 함양에 터를 잡은 지 삼년이 지났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산자락에 자그마한 자리를 얻어 우리부부는 집을 지었다. 낯설지만 물 좋다고 소문난 함양 땅에 뿌리를 내릴 작정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새로 만나는 이웃들에게는 따스한 정(情)이 있었다. 정은 모든 두려움을 잊게 해 주었다. 나무에게 샘물이 필요하듯이 사람들에게도 ‘정’이라는 샘물이 필요하다. 정이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정이라는 샘은 어느 곳이나 있기는 하지만 또 아무 곳에나 있는 것은 아니다. 함양 상림에는 시원하고 맑은 샘이 있다. 그리고 그 샘을 마시며 또 다른 샘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훈훈한 정이 고여 드는 맑은 샘. 정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러기에 정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 아마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힘의 원천은 서로를 보듬어 주는 따사로운 정 때문일 것이다. 맑은 샘이 있는 함양에서 사람이라는 군락에.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러운 존재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심장도 찌꺼기 가득한 이기심을 흘려버리며 맑은 샘을 일구어야 할 것이다. 사람도 나무와 마찬가지로 한곳에 오래 살면 뿌리가 튼튼해진다. 나는 상림의 맑은 샘물을 마시며 함양에 뿌리를 내리고 싶다. 천년의 뿌리를 가진 상림의 나무처럼. 가을바람 속에 아름다운 황금빛을 흩날리는 나무처럼. 그렇게 변하지 않는 정을 품고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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