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산골에서 태어나 산채 먹고 자라난 내게 있어 가장 친근한 나물은 고사리다. 잔칫상이나 제사상에 빠져서는 안 되는 나물이 고사리나물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고사리는 프라이팬에 기름 두르고 부치는 전이나 녹두빈대떡. 비빔밥의 재료로는 물론이고 매콤한 육개장이나 고사리국의 주재료가 되어 밥상에 올라 우리를 즐겁게 하고 건강을 지켜주고 있어서다. 그러나 맛도 좋고 쓰임새도 많은 고사리지만 유독성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본초강목>에는 오래 먹으면 눈이 어두워지고 코가 막히며 머리가 빠지고 발이 약해져 잘 걷지 못하게 된다고 한 기록이 있으며 영국의 학자는 발암 성분인 브라켄톡신(brackentoxin)과 비타민 B1의 파괴효소인 아네우리나아제(aneurinase)가 극미량 들어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물질은 자라면서 더 많이 생기므로 어린순만을 채취해 먹는 것이 좋으며 삶아서 햇빛에 말리는 과정을 거치면서 유해물질은 감소되어 식용에 문제가 없어진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는 조리하기 전에 쌀뜨물에 담가두거나 여러 번 우려내어 음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안전하므로 걱정할 것은 없다. 다시 말하면 고사리 생나물은 조심해야 하지만 고사리 묵나물은 식용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방에서는 고사리를 궐채(蕨菜)라 부르는데 이 궐채는 단맛을 가지고 있으며 성질이 서늘하고 약간의 독이 있다고 하였다. 간. 위. 대장을 이롭게 하며 열을 내려주고 수분대사에 이로우며 지혈작용이 있어 식용은 물론. 감기로 인한 열이나 이질. 대하. 폐결핵 등에 약재로도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다. <동의보감>에도 고사리는 맛이 달고 성질이 차며 매끄러우므로 폭열(暴熱)을 제거하며 소변을 잘 나가게 하고 잠을 자게하며. 나물로 만들어 먹기도 하는데 뱀에 물리거나 벌레에 물렸을 때 뿌리를 태운 재를 기름에 개어 바르면 도움이 되고 치질로 인한 출혈과 열독에 효과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봄에 비가 그치고 집 근처의 산이나 들에 나가면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고사리가 올라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사리의 어린 순을 꺾어다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재빨리 삶아 데쳐 햇빛에 말려두고 묵나물로 먹어온 조상들에게는 흔하고 흔한 고사리가 흉년에 먹던 도토리 등과 함께 구황식품으로 큰 역할을 했다. 고사리에도 많은 양의 녹말이 있어 떡으로도 만들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생각한다면 고사리는 너무 흔해서 쉽게 채취해 갈무리 해두고는 너무 자주. 혹은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에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일 터인데 그것이 고사리가 가지고 있는 독성 때문이라는 오명을 쓴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고사리를 너무 많이 먹어서 건강을 상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므로 고사리를 묵나물로 만들어 가끔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해 먹는다면. 고사리는 오히려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가벼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고마운 식물이 될 것이다. 중국의 고사에 나오는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 칩거하며 고사리로 연명하고 살다가 그것마저 끊고 굶어죽었다는 이야기만 보더라도 고사리 성분의 유해성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생들깨 잔뜩 갈아 넣고 끓이는 고사리국이 맛있는 때다. 내일 아침 국으로 끓여 밥상에 올리려면 고사리를 한 줌 불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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