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면 금천리에 위치한 법인사法印寺에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뿐만 아니라 보물이 하나 더 있다. ‘감로왕도甘露王圖’이다. 흔히 ‘감로탱甘露幀’이라고 한다. 처음 이곳에서 감로왕도를 봤을 때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그 이름표는 한참의 세월이 흐르고 2011년 12월 23일 보물 1731호로 변경이 되었다. 현존하는 감로왕도 중에서 제작 시기가 비교적 이르고. 당시의 화풍을 잘 전해주는 작품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감로왕도는 조선시대에 탄생한 새로운 장르의 불화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만 볼 수 있다. 옛 조상은 정성껏 천도재를 열어 부처님을 감동시키면. 방황하고 있는 혼령을 비롯해 지옥 혹은 아귀도에 떨어진 영혼이 천상의 영액인 ‘감로(甘露)’를 받아 새 생명을 얻거나 극락에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바로 감로왕도이다. 유리 액자 속의 감로왕도는 색감이 퇴색되어 전체적으로 온화한 느낌이었다. 색채의 농담을 달리하거나 명암을 주고 있어 회화적인 느낌이 강했다. 불화의 하단에는 사람들의 여러 생활상이 그려져 있었다. 특히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저승에서 겪는 지옥의 모습을 극적으로 대비시켜 놓았다. 부처님만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일반 불화와 구별되는 부분이다. 나는 경외감을 주는 한 폭의 그림 앞에서 무엇인지 모를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커다랗게 그려진 아귀. 아마 그 아귀 때문일 것이다. 이 불화의 중앙에는 항상 아귀가 그려졌다. 목마름과 배고픔. 추위 등으로 고통 받는 외로운 영혼의 대표인 아귀가 부처님께 감로를 내려 달라며 간절히 합창하고 있었다. 저 그림 속의 아귀는 이승에서 어떻게 살았기에 저런 모습으로 부처님께 자비를 호소하는 것일까. 불가에서는 현재의 삶이 다하면 또 다른 삶이 기다린다고 했다. 모든 생물은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한다고 여겼다. 이것을 ‘윤회’라 불렀다. 우리는 가끔 시간을 되돌리면 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과연 똑같은 삶을 복습하면 잘해 낼 수 있을까. 하지만 사람의 습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M은 학창시절로 돌아가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다 했다. 현재의 M을 보면 열심히 하는 것이 없었다. 이것은 성격에 맞지 않고. 저것은 하고는 싶지만 시간이 없고. 또 다른 것은 같이 할 사람이 없어 못한다고 했다. 항상 핑계가 동행했다. 고향산천을 함께 뛰어 놀았던 K가 문득 떠오른다. 어느 모임에서 잠시 K를 만났을 때 그는 호남好男이 되어 있었다. 따뜻한 마음을 가졌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자원봉사를 다닌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헤어졌다. K를 잊은 채 몇 년이 흘러갔다. 어느 날. 지방 뉴스에서 K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또 몇 년 뒤. 전국 뉴스에서 K의 소식을 들었다. 그는 아주 큰 사건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K는 삶을 반복하고 있었다. 죄를 짓고 용서를 받고. 또 죄를 짓고 용서받고……. 모두들 현재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어했지만 결국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간절함. 절실함이 없었다. 세상은 간절히 생각하면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마음먹은 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부처님께 기도를 올렸다. `나의 내면이 진흙 속에 핀 연꽃의 아름다움을 닮고 싶다` 했다. 나는 간절함으로 연꽃의 단아함과 아름다움을 꿈꾸리라. 비록 세상사의 질퍽거림에 비틀거리지만 간절함은 나를 일으켜 세워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아귀에게 감로가 내려지기를 기도했다. 아미타불과 감로왕도를 뒤로하고 극락보전의 검은 문고리를 당겼다. 하얀 햇살이 기다렸다는 듯이 성큼 법당 안으로 들어왔다. 천지간이 봄 햇살로 가득했다.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법인사의 산문을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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