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마천면 추성리로 간다. 그곳에는 400년 전에 중건된 벽송사가 있다. 벽송사는 우리나라 선종의 종가라고 일컬어지는 곳이다. 그만큼 많은 스님들이 그곳에서 수행을 하였고 선풍仙風을 일으켰다. 벽송사에는 슬픈 역사가 하나 있다. 한국 전쟁 당시 절집은 빨치산의 야전 병원으로 사용되고 있어 국군은 불을 질렀다. 거리를 두고 타오르는 큰 산불은 장엄했을 법하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아픔을 먹으며 생겨난 불꽃은 커다란 불두화로 피어올라 하늘을 밝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동족간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바라보며 타닥타닥 울음을 내 질렀을 것이다. 소리는 ‘타다닥 탁탁탁’ 장음으로 길게 이어지기도 하고. ‘톡. 톡. 톡’ 단음이 되어 토막토막 끊어지기도 했을 것이다. 마침내 파란 허공에서 산산이 부셔지며 조각조각 잿빛으로 흩어졌을 것이다. 그 슬픈 소리가 가랑잎이 되어 지나간다. 귀를 곧추세워 보니 그것은 바람소리다. 아니다. 어쩌면 그 날의 비극을 아파하며 내 마음이 울고 있는 소리인가 보다. 어느덧 꼬부랑하던 산길이 사라지고 검은 기와지붕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산골 깊은 절집은 아직도 하얀 눈 속에 있다. 검은 지붕과 그 위를 덮고 있는 하얀 눈. 그리고 푸른 소나무. 그것은 마치 오래된 흑백 사진의 한 장면 같다. 시나브로 바람이 풍경을 두드린다. 풍경소리를 찾아 고개를 돌리니 나무 밑에 서 있는 삼층석탑이 보인다. ‘보물 제474호’이다. 대부분 석탑은 법당 앞에 위치한다. 하지만 벽송사의 삼층석탑은 그렇지 않다. 절집 가장 높은 터인 뒷면의 평지 위에 서있다. 또한 선승들의 부도 탑도 그곳에 있다. 탑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졌으나 신라시대 석탑의 기본양식을 충실히 이어받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석탑 곁에는 천년 묵은 소나무 도인송道人松이 하늘을 향해 시원스레 굵은 가지를 뻗었다. 어느 노승이 주장자를 심어 지금의 소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500년 뒤 다시 돌아오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열반했다고 한다. 미인송美人松도 보인다. 비스듬히 구부러진 소나무는 환성지안 선사의 죽음과 부연낭자의 짝사랑의 전설이 서려 있다. 스승이자 흠모의 정을 주었던 선사가 죽음을 맞이하자 그녀도 ‘천년학’이 되어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며 떠났다고 한다. 허나 삭풍이 휘몰아치는 산사에는 학은커녕 한 마리의 작은 새도 보이지 않는다. 그 흔한 참새도. 까마귀도. 까치도 모습을 감추어 버린 모양이다. 하얗게 텅 빈 공간에 소나무 가지를 흔들며 겨울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이 남긴 소리일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숫타니파타 한 구절이 이명처럼 울려 퍼진다.   ‘이 세상에서 믿음이 으뜸가는 재산이다. 덕행이 두터우면 안락을 가져오고 진실이야말로 맛 중의 맛이며 지혜롭게 사는 것이 최상의 삶이라 할 수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일정한 공식이 없다. 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덕행을 실천하며 살아가라 한다. 진실하게. 지혜롭게 살아가라 한다. 바람이. 마음이 그렇게 속삭인다. 나는 타박타박 걸음을 걷는다. 꼬부랑한 산길을 휘돌아 산문을 내려간다. 벽송사를 벗어나면 바람의 속삭임을 까맣게 잊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문득문득 혼자만의 시간이 생길 때 오래 전 벽송사 선승들의 전설을 더듬으며 바람의 속삭임을 기억하려 애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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