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읍 1970. 6. 1847년전 봄누에 공판장의 모습으로 필자가 아끼는 사진중 하나다. 잠업은 1970 ~ 80년대 함양지역의 주요 농업소득 이였으나 중국산 누에고치 수입과 인력난으로 쇠퇴해 지금은 그 명맥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함양군 통계연보에 1970년 춘잠농가는 8,977농가로 거의 대부분의 농가에서 누에를..
함양읍 상림 1977. 5. 13꼭 40년전인 1977년 제23회 천령제 모습이다. 축제는 지역민이 신명나게 참여하는 데에서 출발 하는 것 같다. 요즘같이 휘황찬란한 불빛, 음악이 없어도 주민은 신명이 났고 사람들은 일을 뒤로 미루고 참여 했었다. 사진은 40년전 천령제(지금의 물레방아축제)의 풍물놀이패 공연 모습..
서하면 웅곡 1995년 5월농사일 중간에 새참을 먹는 새참시간의 기록 사진이다. 예나 지금이나 새참시간은 농사일 하는 농업인에게는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사진은 당시 서하면 웅곡에 고랭지 채소가 많이 재배되었는데 고랭지 채소 이식중간에 새참을 하는 모습이다. 주인 아주머니의 바쁜손놀림과 아이..
함양읍 1987. 7. 16 1987년 7월 15일 오후 함양지역에 태풍 셀마가 닥쳤다. 태풍 셀마는 짧은 시간에 함양지역에 300mm가 넘는 집중호우와 초속 65m가 넘는 바람으로 함양지역에 큰 피해를 입힌 태풍이다. 당시 태풍 셀마의 중심기압은 911hpa로 기록되어 있다. 태풍 셀마는 천년을 견디어온 상림제방을 앗..
함양군 수동면 1985년 9월태풍으로 쓰러진 벼를 공무무원들이 벼 세우기 노력지원을 하는 모습이다. 1980년대는 다수확을 위해 모를 빼곡히 심는 밀식재배와 비료를 많이 주는 다비재배로 모가 무성히 자라 태풍에 잘 쓰러져 피해가 컸었다. 특히, 수확직전의 태풍은 벼를 많이 쓰러트려 피해가 컸는데 그럴 때..
병곡면 등구정 1985. 7. 31새마을청소년 야영교육 봉화식 모습이다. 새마을 청소년은 4-H회의 새로운 이름으로 농촌청소년들이 “빛나는 흙의 문화 우리 손으로 만든다”는 취지로 활발하게 활동을 한 농업인 교육단체다. 청소년 야영교육은 7~8월 야영을 하면서 호연지기를 키우는 교육프로그램으로 그때 그 ..
수동면 서평 1976. 8. 14꼭, 40년 전의 모습이다. 당시에는 농촌지도소(현, 농업기술센터)담당 선생님들이 여름철에 영농현장교육을 실시했었다. 7 ~ 8월 점심식사 후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해 영농현장에서 당면한 영농사항을 설명하고 실천할 것을 전달하는 여름철 영농현장교육 모습이다. 이렇게 당면한 영..
함양읍 뇌산 1969년 5월48년전의 기록 사진이다. 병해충 방제용 수동식 분부기가 처음 보급된 시기로 여겨진다. 삼배적삼에 핫바지, 검정고무신을 신은 주민들 앞에서 농촌지도소(현, 농업기술센터)직원이 수동식 분부기와 농약 안전사용에 대한 교육을 하는 모습이다. 우리의 농업은 이렇게 한걸음 한걸음 발..
함양읍 중촌 1980년 7월 식량증산이 최고의 과제였던 시절 벼 병충해 방제는 중요한 작업이었다. 벼농사에 큰 피해를 주는 도열병과 벼멸구는 해마다 기승을 부렸다. 1980년대 동력분부기가 막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에 동력분부기를 이용한 병충해 방제 연시회를 가져 적기에 병해충을 방제하도록 하는 행정지..
마천면 추성리 1984. 7. 5 1984년 7월 5일 300mm가 넘는 집중호우로 마천면 추성마을 입구에 있는 다리가 유실되었다. 당시 마천 추성다리는 현수교로 일설에 의하면 남해대교를 건설하기 전 추성다리에 먼저 공법을 시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과 같은 건축기술이 발전하기 전의 일이..
함양읍 1981년35년 전 함양읍 입구인 시외버스 정류장 모습이 지금과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시간은 알게 모르게 많은 변화를 주는가 보다. 아치에는 “활기찬 함양 화합하는 군민”으로 큰 타이틀을 넣었고, 좌우측에 “사회를 풍요롭게 자연을 아름답게” “번영의 80년대 안정으로 다져가자”하고 쓰여 ..
함양군 1982년 6월물이 없는 논에 여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운동화를 신고 벼를 한 포기 한 포기 호미로 심고 있다. 1980년대만 해도 저수지가 부족해 수리불완전 논이 많았다. 그래서 비가 오지 않을 때는 모내기를 포기하거나 다른 작물을 심었다. 하늘만 바라보고 농사일을 해야 했던 그 시절 절박한 ..
함양읍 한들 1977. 6. 36월은 보리수확과 모내기 시기로 송장도 움직인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일손이 부족한 시기다. 그때 그 시절에는 학생들이 농번기 일손돕기 노력지원이나 가정실습이라는 명목으로 농가에 일손 돕는 방학을 3 ~ 4일씩 했었다. 사진은 함양여자중학교 학생들이 한들에서 모내기 노력지원..
수동면 남계천 1982년 6월한 방울의 물도 소중하다. 올해도 가뭄으로 힘든 영농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1980년대 초에는 봄 가뭄이 심했었던 것 같다. 남계천 넓은 냇물에 실같이 흐르는 물을 한데모아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초등학교 고사리 손으로 물길을 내는 작업에 참여했다. “논에 물을 대는 것은 아기가 ..
안의면 1980. 3. 23안의면 소도읍 가꾸기 사업 추진 모습이다. 좁은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 집을 허물고 2층 콘크리트 집을 짓는 모습으로 이때 이 사업으로 오늘날 안의소재지모습의 틀이 잡혀진 것 같다. 2층 콘크리트집에 “삼일상회” 간판이 있고, 오른쪽에 “밀림식당” 간판도 보인다. 이런 소도읍 가꾸..
병곡면 도천 1981. 6. 5 경찰공무원이 보리베기 일손돕기를 하는 모습이다. 보리베기와 모내기가 겹친 6월은 죽은 송장도 일을 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일손이 부족한 시기에 경찰공무원도 일손을 도왔다. 이곳은 월암삼거리 지역으로 지금은 논이 도로로 편입되어 없으나 뒤편 버드나무가 아스라한 추억을 ..
마천면 추정 1980년 4월 하순물버들이 피고 논둑에 풀이 파릇하게 자란 것으로 보아 4월 하순으로 짐작된다. 1980년대부터 대나무 활죽을 이용한 보온못자리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시기로 이때부터 식량의 자급화가 이루어진 시기다. 중년으로 보이는 두 부부가 장화도 신지 않은 맨발로 볍씨를 뿌리는 모습에..
함양읍 상림 1981. 3. 7요즘은 참여하지 않지만 30여년 전에는 학생들이 각종행사에 많이 참여 했었다. 사진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봄철 범군민 자연보호운동 촉진대회」행사에 참여하고 상림에서 쓰레기를 줍는 모습이다. 어린 학생들이 쓰레기 수거용 집게를 들고 쓰레기를 줍고 일부는 어울려 다..
안의면 화림동 계곡 1981년 5월농월정이 있는 화림동 계곡의 봄 야유회 모습이다 화림동계곡은 남덕유산에서 발원해 멋진 풍광을 이루어 유명한 정자가 있는 곳으로 봄이면 야유회를 많이 한곳이다. 30여년 전만해도 모내기 전인 5월초에 마을단위 또는 계모임 단위로 회치라는 야유회를 많이 했..
함양읍 죽장마을 1982년상림공원인근의 죽장마을에 있었던 35년전의 물레방아모습이다. 그러니까 지금 상림 물레방아가 있는 곳에서 죽장마을방향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물레방아를 돌리기 위해 주섬주섬 쌓은 돌담위에 나무수로를 만들어 물의 낙차로 방아를 돌리는 모습과 송판이라 부르는 나무껍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