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문을 여니, 현관에 감자 한 바구니가 놓여 있었습니다. 전날 저녁, 현관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잠시 신경이 쓰였지만, 이내 조용해지길래 길고양이가 다녀갔나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그 감자를 보고서야 깨달았습니다. 어제 그 인기척은 고양이가 아니었구나, 누군가 조용히 다녀간 것이었구나.감자는 막 캔 듯 흙이 묻어있었습니다. 누굴까. 시골에선 대부분 감자를 심고 있지만, 대충 짐작은 갑니다. 하지만 확신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혹시 어제 저희 집에 감자 한 바구니 놓고 가셨습니까?” 하고 묻기도 조심스럽습니다. 혹여 상대가 아니라면, 감자를 달라는 말로 들릴 수도 있으니까요. 시골 사람들은 그저 묻기만 해도 기꺼이 나눠줄 정도로 정이 많지만, 그래도 예의는 지켜야합니다. 그래서 짐작이 가는 이웃에게 가서 너스레를 떨어야겠습니다. “요즘 날씨가 너무 뜨겁네요. 감자는 다 캐셨습니까?” 지나가는 말처럼, 무심한 듯. 마음은 진심이지만, 말투는 조심스럽게.시골에서 감자 한 바구니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밭에 감자를 심어 팔고 먹고, 남으면 나누고, 못 먹으면 버리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 바구니 안에 감자만 들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압니다. 한 조각의 씨감자가 흙을 뚫고 올라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과 마음이 필요한지. 비 오기 전날을 골라 땅을 일구고, 잡초를 뽑고, 햇살과 바람을 맞추며 키우는 시간. 그렇게 자란 감자를, 말없이 건넸다면 그건 단지 여유의 나눔이 아니라, 마음의 조용한 표현입니다.생각해보면, 지난봄 제빵 기능사 실습을 하며 매주 굽던 빵들을 이웃과 나누었습니다. 빵을 받고 좋아하던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그중 누군가가 감자로 고마움을 돌려준 건지도 모르지요. 이름도, 말도 없이. 하지만 마음은, 이름이 없어도 전해지는 법입니다.
시골에 내려온 지 이십 몇년이 지났습니다. 논농사, 감농사, 토봉, 블루베리까지 흙을 만지며 살아왔습니다. 지금은 직접 농사짓기보다는 좋은 원료를 찾아다니며 곶감을 만듭니다. 그렇지만 농사의 본질은 여전히 기억합니다. 그것은 땀과 기다림입니다. 자연의 시간을 읽고, 사람의 마음을 얹을 줄 알아야 맺히는 결실. 감자 한 바구니가 그것을 다시 일깨워줍니다.시골의 나눔은 이렇듯 조용합니다. 인사도, 명함도 없습니다. 다만 문 앞에 놓인 감자처럼, 한 사람의 마음이 조용히 다른 사람의 삶에 내려앉는 방식입니다. 문득 감자 한 바구니가 계절의 편지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낸 이의 이름은 없지만, 받는 이의 마음엔 오래 남는 그런 편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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