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깊어지는 5월입니다.곳곳에 행사 현수막이 나부끼는 이달은 어쩌면 ‘사람을 기억하는 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기억한다는 건 마음을 쓰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이 좋은 계절, 떡집에서도 마음을 담은 전시 하나를 열었습니다.‘여유자작(餘裕自作)’.서울에서 활동하는 네 명의 판화 작가 김미화, 박재숙, 안병임, 이은숙이 함께하는 전시입니다. 지난 석 달간 생태사진 작가 최상두의 렌즈에 담긴 엄천강의 숨결이 머물렀던 자리에, 이번에는 나무결을 따라 걷는 듯한 판화의 고요한 울림이 찾아들었습니다.이번 전시는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호평받았던 전시를 함양으로 그대로 옮겨온 것입니다.조각칼로 새기고 목재 위에 색을 나누어 찍어내는 다색 목판화(woodcut) 기법. 나무의 물성을 이해하고, 그것과 조율하며 삶의 감각을 새겨넣는 고된 작업 끝에 한 장의 판화가 태어납니다.작품 속에는 개구리가 연잎 위에 앉아 있는 풍경도 있고, 웃고 있는 채소의 표정도 있습니다.단순한 유머를 넘은 생명에 대한 애정, 유년의 기억, 도시의 풍경, 그리고 농부의 손등처럼 투박한 나무결의 질감이 관람객의 마음을 조용히 두드립니다.
오래전, 황규백 화백의 판화를 한 점 구입했던 기억이 납니다.돌 위에 앉은 새, 그 단순하고도 기묘한 세계가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어쩌면 지금 이 작은 떡집 안 갤러리의 출발점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떡집에서 그림 전시를 한다고 하면 생소해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막상 들러 판화를 감상하시고는 “이런 공간이 있어 참 좋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십니다. 떡과 차 한 잔, 그리고 한 점의 판화가 만나 주는 여유. 좋은 재료로 만든 떡처럼, 좋은 마음으로 만든 판화가 이 봄날, 누군가의 하루에 따뜻한 여운이 되기를 소망합니다.아울러, 이 전시가 단지 감상의 차원을 넘어서,일상 속 ‘쉼’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바쁜 하루의 틈새에 마주한 한 점의 판화가 누군가의 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고, 그 멈춤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조용한 대화를 시작하게 될지도 모르지요.떡집이라는 일상의 공간, 그 안에서 피어난 예술의 숨결은우리 삶의 경계들을 허물고, 평범한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렇게 판화는 단지 종이에 찍힌 그림이 아니라, 나무와 사람, 도시와 시골, 일상과 예술을 잇는 다리가 됩니다.함떡 갤러리가 그런 다리 위에 놓인 쉼표 같은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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