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길 수 없는 봄봉평교회 김희수목사▲ 봉평교회 김희수목사새봄이 왔다. 봄이 올 것 같지 않던 깊은 산골 우리 마을에도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렸다. 누런 풀숲에 새파란 쑥도 돋아 나온다. 들녘엔 벌써 부지런한 농부들이 거름을 펼치고 있다. 벌써 양파 밭을 손질하여 겨우내 힘없던 양파 싹이 기운차게 일어나 밭은 잔디밭처럼 파랗다. 이렇게 찬란하게 다가오는 봄 앞에서 나는 더욱 간절한 맘으로 봄을 사모한다. 시인 이상화는 1926년에 개벽 6월호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실었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말을 해 다오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든 고운 비로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나비 제비야 깝치지마라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발목이 시도록 밟어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강가에 나온 아해같이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은 내 혼아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전문> 시인은 국권을 상실한 땅에도 여전히 봄이 찾아오는 것을 보며 처절한 아픔을 느낀다. 가르마 같은 논두렁을 걸으며 살진 젖가슴 같은 보드라운 흙을 밟고. 귀에 속삭이는 듯한 봄바람을 맞으며. 봄 신령에 지펴 들길을 누비며 시인은 통곡한다. 땅은 빼앗겼다해도 민족혼을 불러일으키는 봄마저 빼앗길 수 없다는 시인의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오늘 우리 군은 미군과 함께 ‘키 리졸부’훈련에 돌입하고 북한은 정전협정을 전면 백지화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핵 찜질을 시키겠다는 등 협박으로 전쟁의 위협을 고조시켰다. 가장 가까이에서 또한 이미 당해본 경험이 있는 연평도 주민들은 불안에 떨며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잔다고 한다. 이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분단국가로서 한 민족이 서로 총칼을 겨누고.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대치하고 있는 이 땅! 땅을 빼앗긴 아픔만큼 큰 아픔 속에 있는 이 나라! 오늘 우리는 사소한 불장난으로 포항의 온 산을 태워 상상도 못할 피해를 일으킨 한 중학생처럼 한 순간의 실수나. 오판으로 이 땅이 또다시 전쟁의 도가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새롭게 시작한 새 정부는 아직도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있다. 군 장성들은 가장 경계태세를 갖추어야 할 시점에 한가로이 골프채를 들고 봄을 즐기러 나갔다고 한다. 1920년대처럼 희뿌연 안개 속을 걸어가는 듯한 이러한 정국 속에서도 봄은 오고 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안타까운 현실 앞에서도 봄은 희망처럼 환하게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오늘도 농부들은 호미를 들고 들로 나간다.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해도 우리네 농부는 결코 봄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오늘 가슴 끝이 무겁고 시린 나는 평화를 간절히 소망하는 농심(農心)으로 두 팔 벌여 봄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