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던 날  서소희  하늘이 하얗게 열렸다. 창문을 열고 마당을 바라보니 마을이 온통 두터운 눈으로 덮혀 있다. 마치 새해인사를 전하는 연하장의 한 장면 같다.남편은 집 앞 거리에 쌓인 눈을 치우러 나간다. 아파트에 살면 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그러나 마당이 있는 주택에 사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나는 남편 옆에서 응원이라도 할 요량으로 마당을 나선다.천왕봉이 있을 법한 곳으로 눈동자를 옮겨놓는다. 천왕봉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회색빛 산들이. 하얀 들판이 펼쳐져 있다. 그 모습이 너무도 편안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저절로 입이 벌어지고 팔이 벌어져진다. 벌어진 입속으로 차가운 함박눈이 들어온다. 그때 한 마리 작은 새가 포르르 소리를 내며 나무 사이로 숨어든다. 저 작은 짐승은 어디서 길을 잃은 것일까. 둥지는 어디 두고 이 눈 속을 헤매다 주목나무 사이로 깃드는 것일까. 아마 이 엄동에 새끼를 위한 먹이를 구하러 둥지를 나선 것인지도 모른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이 엄동에도 길을 나서게 만드는 힘이 있는 모양이다.작은 어미 새를 닮은 친정아버지가 생각난다. 며칠 전 잠깐 뵈었던 아버지는 몸피가 많이 줄어있었다. 아버지가 계신 곳에도 눈이 쌓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늙은 아버지는 힘없는 다리로 동생 공장의 눈을 치우고 계실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누리는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아버지는 눈이 많이 온다는 일기예보라도 있으면 동생 공장에서 주무신다. 이른 새벽부터 눈을 치우기 위해서다. 자식에 대한 당신의 사랑. 아들을 위한 일이라면 매운 겨울 날씨에도 따뜻한 방에 있지 못하게 만들었다. 늙은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는데. 당신의 기력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아마 부모라는 이름을 지닌 당신의 삶은 저 눈 내린 고즈넉한 풍경의 한 장면처럼 그렇게 가슴에 남겨질 것이다.어느새 남편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혀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도 슬그머니 머리가 젖고. 옷이 젖더니 다 젖어버렸다. 눈은 하염없이 쌓이기에 남편은 눈 치우기를 포기한다. 남부지방은 폭설주의보가 내렸다고 한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산길은 우리를 어디에도 갈수 없이 고립 시킬지도 모른다. 오늘 같이 눈이 푹푹 내리는 날은 집안 청소도 미뤄두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게으름을 즐길 생각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고요를 마음껏 즐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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