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설위원 강덕오일인가구가 늘어나는 추세에 따라 정부나 지자체가 복지정책을 그와 관련되게 시행한다고 하니 일인가구 문제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독사하는 인구가 연간 1000명이 넘어 서고 있고 고독사 예비인구가 10만이 넘는다고 하니 친구 없는 외톨이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일전에 미국 네바다주 카슨씨티에서 고독사한 노인의 집에 98억원이 넘는 금괴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좋은 이웃과 친구가 있다는 것은 98억원의 가치보다는 값을 더 쳐주어야 할 것 같다.좋은 이웃과 친구가 있었다면 그 노인도 좀더 행복한 모습으로 삶을 마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친구를 통념상의 친구뿐 아니라 좋은 이웃도 포함 시켜야 할 것 같다. 항간에 대선관련 문제로 화제가 되었던 박근혜 후보 캠프의 정준길 변호사와 안철수 후보 캠프의 금태섭 변호사가 서로 통화한 내용이 협박이다 아니다 하는 것으로 문제가 되었지만 그보다 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친구다 아니다 하는 내용이었다. 협박 여부는 사법부에서 시비를 가리겠지만 친구다 아니다 하는 것은 규정지을 수 없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가장 흔한 일상임에도 불구하고 친구관계를 정확히구분지어 정의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동서양의 친구문화를 비교해보면 수평적인 평등문화가 발달된 서양에서는 친구의 폭이 넓어 나이와 관계없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유교 문화권인 우리는 종적인 수직문화이기 때문에 친구의 개념이 또래나 동갑정도에 국한되어 있다. 친구와 관련된 이야기와 속담 사자성어는 참으로 많다 “그 사람을 알려거든 그 친구를 보라”. “친구따라 강남간다”. “부모팔아 친구산다” 등 속담이 있고 지란지교(芝蘭之交) 담수지교(淡水之交)처럼 품격이 묻어나는 향내 나는 친구 관계와 문경지우(刎頸之友)처럼 목숨을 내놓을 만큼 의리를 강하게 숭상하는 친구. 관중과 포숙아처럼 이해와 믿음으로 일관된 좋은 친구가 있는가 하면 백아절현(伯牙絶絃)처럼 자기의 재능을 알아주는 친구 등 이 모든 친구관계가 아름답게 핀 우정의 꽃이라 하겠다.또 시도지교(市道之交)처럼 이익만 쫓아 친구를 이용하려는 바람직하지 못한 친구관계가 너무 많은 것 같다. 돈 관계나 일시적인작은 어려움 때문에 친구를 배신하는 것을 손바닥 뒤집는 일보다 쉽게 하는 세태가 되었으니 우리가 행복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것 같다. 좋은 친구가 많은 세상이 행복한 세상이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높여 주는 일임에도 좋은 친구 만들기에 너무 소홀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일이다. 우리는 지금 좋은 친구를 가질 수 없는 토양에서 아이들을 기르고 있다. 출세 지향적인 교육관 때문에 부모들이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싫어하고 학원이나 과외다 해서 놀 시간 없이 아이들을 혹사시키고 있다. 입시위주의 지식 쌓기에만 매진하고 있으니 성장기 어린시절부터 어울림이 없는 환경에서 자람으로서 좋은 친구관계가 형성될리 만무하지 않은가.그 결과 나만 아는 편향적인 인격체로 성장하여 자기보다 약한 친구를 괴롭히고 따돌림 시켜 피동적인 외톨이를 만들고 극단적인 불행한 사태를 유발하는 것이다. 요즈음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묻지마 범죄 폭주노인범죄 대부분이 친구가 없는 소외감에 기인한 것이 많은 것 같다.친구는 어느시대 어느사회에서도 있어 왔고 또 있어야 할 인간관계의 필요조건이다.맹인잔치에 참석하러 가는 심봉사도 동행하는 길동무가 있었고 구도하는 스님들도 좋은 도반이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친구 없는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불행한 사회로 나가기 전에 좋은 이웃 좋은 친구 만들기에 노력하여야 할 것 같다. 좋은 친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밝고 행복한 사회가 아니겠는가 외부와 단절되기 쉬운 일인 가구 수가 늘어가는 때에 우리 모두 안전하고 행복한 어울림의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 아닌가.스스로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는 것이 행복지수를 높히는 작은 촛불이고 이 촛불이 모여 세상을 더 건강하고 환하게 할 것이다.이런 촛불시위는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