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진 못해도 작년 여름이었습니다. 제가 열여덟 해를 함양에 살면서 위천이 범람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던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엄청난 강수량으로 인해 우리 아이들을 대피시켜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재난 상황실에 문의 전화도 해보았습니다. 혹시 범람 등의 위험한 사태가 생기면 연락을 주겠노라는 답변이었지만 안심이 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피하기도 적절한 장소가 없고. 시간적으로도 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라 우선은 1층의 모든 아이들을 2층으로 대피시키고 행여 2층에도 물이 차거든 옥상으로 대피하도록 직원들과 아이들에게 일러두었던 기억이 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태풍의 계절은 돌아왔고 15호 태풍 볼라벤에 이어 14호 태풍 덴빈이 함양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나마 강수량이 적은 편이어서 다행이었지만 강풍으로 인한 피해는 많은 농민들과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4계절이 뚜렷했던 우리나라의 기후가 동남아시아의 아열대성 기후로 변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저만이 아닐 듯 합니다.얼마 전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전 나라를 대상으로 선교 사역을 하고 있는 목사님 가족이 여름 휴가차 귀국하여 저희 집에 며칠을 머물렀습니다. 이제는 한국의 여름도 동남아시아의 날씨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이야기에 수긍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형태로 자연을 이용하기도 하고 보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호하는 자연보다는 이용하고 손상시키는 자연이 더 많은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은 스스로도 통제되지 않는 기상현상으로 우리에게 고통을 호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후의 변화로 인한 현재의 기상 상황은 자연이 고통스럽다고 발버둥치는 모습의 표현은 아닐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자연의 몸부림에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물론 기후의 변화가 한 개인. 한 국가가 원인이 되어서 발생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한 개인과 한 국가가 노력한다고 예방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매년 되풀이 되는 자연재해를 막을 수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기다릴 수 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매년 반복적으로 되풀이 되는 자연재해로 인한 이웃들과 농민들의 고통과 눈물을. 어쩌면 나 자신의 고통과 눈물이 될지도 모르는 예측 가능한 미래 상황을 수수방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현재의 기상 상황을 저는 이상기후라고 치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뿌려놓은 씨앗을 수확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현재의 지구 온난화 등과 같은 여러 기후 현상에 영향을 끼친 많은 요인들이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화석연료 즉. 이산화탄소의 과다 배출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소비하는 화석연료들로 인한 우리들의 생활환경이 결국은 우리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오고 있다고 많은 학자들이 지적을 합니다. 우리에게 풍요와 번영을 가져다 준 화석연료의 과다한 사용이 우리 생명을 위협하는 흉기가 되어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는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생활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2012”라는 영화와. “투모로우”라는 자연재해를 주제로 다룬 영화를 의미심장하게 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수방방재시스템도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노력하지도 준비하지도 않는다면 그 결과는 더 절망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어떠한 자연재해도 인간이. 사람이 힘을 합쳐 노력한다면 예방할 수도 있고 극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는 것이 영화가 우리에게 보여 주고자 하는 메시지 같았습니다. 자동차 적게 타기. 쓰레기 분리 및 재활용. 불필요한 전등 끄기. 빨래는 모아서 하기 등등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수 많은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생활 습관은 비록 나 한사람의 작은 실천이라고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수많은 이들의 생명과 재산과 삶의 희망을 송두리째 뽑아가는 자연재해로 부터 지켜내는 가장 좋은 비결임을 늘 기억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비록 노력의 결과물이 미미한 것일지라도. 그 효과가 더디 나타날지라도. 다음이나 내일이 아닌 지금부터. 너와 우리가 아닌 나부터 시작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