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TalkTalk 111회빈자(貧者)들의 떡 빈대(賓待)떡 약선식생활연구센터 고은정 ▲ 녹두 빈대떡명절 전날의 기억 속 풍경에는 언제나 장작불 때는 아궁이와 함께 바깥마당 화덕에서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놓고 부치던 수많은 전들의 향기로 가득하다. 가마솥뚜껑을 엎어놓고 부치던 전들 중에 가장 으뜸은 누가 뭐래도 녹두를 갈아 부치는 빈대떡이다. 할머니는 차례용을 얼른 부쳐 얌전히 담아두고는 대나무로 만든 채반에 담아 아이들마다 한 소당씩 안겨주셨다. 물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술상에도 한 접시 올라가서 술안주가 되고. 그쯤에는 전과 빈대떡을 부치시던 할머니도 한 점 입에 넣으시며 그 고소함에 빙그레 웃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이들은 물론 동네 개들도 행복한 뜀박질을 하던 시끌시끌하고 왁자지껄하니 풍요롭던 명절 풍경을 이제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어 아쉽기만 하다.▲ 녹두<동의보감>에서는 녹두를 성질이 차고 맛이 달며 독이 없어 열을 내리고 부은 것을 가라앉게 만들고 소갈증을 멎게 한다고 했다. 피부를 깨끗하게 하며 피로를 없애주고 입술이 마르고 입안에 헐었을 때도 좋으며 위장을 튼튼하게 해주고 눈을 밝게 해주는 곡물이다. 그래서 어쩌면 녹두로 만드는 빈대떡을 명절마다 빼놓지 않고 부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헤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만나 흥겹게 노느라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온갖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고 혹여 탈이 날지 모르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녹두로 조리하는 빈대떡이며. 빈대떡에 꼭 넣는 숙주나물도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녹두가 고혈압이나 숙취에도 좋아 명절에 마시는 술을 해독시키기도 하지만 속이 찬 사람들은 조심해서 먹어야 하는 곡물이기도 하다.▲ 녹두꽃<음식디미방>에서는 ‘빈쟈’라 부르는 빈대떡을 ‘녹두를 뉘 업시 거피하여 되게 갈아 기름 잠기지 아니케 부어 끓이고 적게 떠놓고 거피한 팥 꿀에 말아 소 넣고 그 위에 녹두 가루로 덮어 빛이 유자빛 같이 자져야 좋으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규합총서>에도 비슷한 기록이 나오는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빈대떡과는 사뭇 다른 형태의 전이었다.하지만 <조선무쌍신식조리제법>에서 빈대떡 조리법을 언급하면서 ‘이 떡 일흠이 빈자병인데 가난한 자이 먹는다 하야 빈자병이라 하나 나라 제향에도 쓰고 또 누른적이나 전유어에 밀가루를 대신으로 만이 쓰니리라.’고 적혀있다. 빈자라 불리는 빈대떡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떡이기도 하지만 조선시대 궁중에서 각종 연회에 쓰던 전유어에 밀가루가 없을 때 녹두가루를 사용하여 만든 음식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위의 기록들을 보면 현재의 빈대떡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그리 오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근대에 이르러 작부와 바람이 나서 도망간 남편을 대신해서 거리로 나와 빈대떡을 구워 팔게 되며 자식을 키우는 여인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빈대떡이 거리의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추석이 돌아오면 이번에는 꼭 돼지기름을 솥에 녹여 두르고 부치는 빈대떡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이 손님처럼 귀하게 대접받으면 먹는 빈자(貧者)의 빈대(賓待)떡을 부쳐 이웃들과 함께 그 고소함을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