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7편 ‘스승’과 '교사' 그리고 '노동자' ▲ 손현숙(함양제일고 교사)본교에서는 8월말. 두 분이 정년퇴임을 하셨습니다. 정성용 교장선생님과 박헌국 농과 선생님이 건강하게 정년을 맞이하셔서 참으로 축하드리고. 앞으로의 생활이 현직에 있을 때 못지않게 보람있고 알찬 나날이기를 바랍니다. 사실 요즘 학교현장에서 정년까지 현직을 유지하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교직에서 중도하차 하는 데는 여러 가지 개인적 사유들이 있을 것입니다.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거나 급격한 시대변화 속의 학생들을 감당하기에 역량이 부족해서. 자녀세대인 젊은이들이 교사자격을 갖춘 상태에서 300-400: 1의 경쟁을 치러야 하는 임용고시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등등...'담배 피우던 고교생 나무란 교사 학부모에게 폭행 당해' '수업 중 화장하는 여학생 지도하던 여교사 학생에게 뺨 맞아' 등 언론에서 자주 접하는 학생과 교사간 혹은 교사와 학부모간 폭력이 사회문제화 되는 우리의 교육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급기야 ‘교권 보호차원에서 교사에게 폭행 협박할 경우 학생과 학부모가 의무적으로 특별교육 받도록 법률개정추진’ 하는 기사(8.28일)까지 접하게 됩니다. 물론 그 이슈의 중심에 선 교사는 당연히 자신의 교사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그런 문제를 대하는 학부모. 사회 일반의 반응이나. 언론의 보도내용에서 우선적으로 ‘교사’라는 용어에 대한 인식이 잘 못되어 있거나 편견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당연히 교사의 역할에 대한 오해나 곡해도 있게 되는데 일반인은 그렇다 쳐도 독자를 계도해야 할 입장에 있는 언론이 그 의미를 왜곡하게 되면 안타깝기도 하고 우려스럽기도 합니다.‘스승’과 '교사' '노동자'는 교사에 대한 용어가 시대변화와 사회의 요구에 따라 달라졌을 뿐 사실은 같은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전의 ‘스승’이 오늘날 ‘교사’ 라는 점에서는 별 이의가 없이 합의가 가능한데 ‘스승’이 ‘노동자’로 건너가면 동의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심한 거부감을 갖는 분들이 있어 그 의미를 한번 되 새겨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일반적으로 교사를 보는 관점은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성직자'관 입니다. 교직을 '성직'이라 보는 전통적인 관점은 교사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직'이기에 '스승'이라 높여 부르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교육자는 세속적 이익보다 정신적 이상과 가치를 추구해야 하고 청빈해야 하며 모든 면에서 도덕적 윤리적이어야 하며 매사에 존경받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중세가 무너지고 근대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시기엔 모든 세속적인 직업생활이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소명) 주어진 것이기에 천직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그러나 학식과 덕망이 높으면 교육자가 되던 전통시대에 비해 사회가 분업화되고 산업화되면서 막연한 사명감만 가진 성직으로서보다는 고도의 지적 능력을 지니고 교과를 지도하고 학생의 생활을 지도해야 하는 '전문직'이라는 관점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면서 지식을 전달하는 의미의 ‘직업인으로서 교사’ 라는 의미가 자리 잡게 됩니다. 그러다가 학업의 기회가 확대되면서 학부모 교육수준이 교사 못지않게 높아졌고 학문적인 배움의 제공자가 교사만이 아니라 여러 경로를 통해 학습 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면서 전문직으로 인정받는 것도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물질이 앞서 발달한 서양에서 중세 이래로 교사를 (정신)노동자로서의 직업이라는 의미가 강한 '노동직'이라는 관점이 크게 지배 해 왔습니다. 중세 때 발달하기 시작한 서양의 대학은 처음 교수와 학생들의 조합에서 비롯되었고. 학생은 돈을 내고 배웠고. 교수(교사)는 가르친 대가로 봉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현대사회가 서양 중심으로 발전되면서 교직이 노동직이라는 관점이 세계적으로 확산된 것입니다.그러나 조선시대 선비를 이상으로 하는 유교적 가치관이 일정부분 지배해온 우리사회는 시대적 변화와 상관없이 교사에게만큼은 전통사회의 '스승'상을 요구하는 측면이 강하여 학부모는 물론 교사들 중에도 노동자라는 관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뿐 아니라 개인 혹은 집단의 성격에 따라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입니다.산업사회에서 '노동(정신적. 육체적)을 제공하고 임금(월급)을 받아서 생활하는 사람이 노동자'라는 용어의 정의는 중학교 3학년이면 배우고 학생들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는 것과 실제 체감하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을 때 학생들은 교과서 보다 사회일반의 인식을 따릅니다. 땀 흘리고 일하는 육체노동만 노동이며 공부 못하고 가방 끈 짧은 사람이 곧 ‘노동자’ 라는 인식이 은연중 배게 되고 동시에 ‘노동자’는 천하다는 그릇된 공식이 성립을 하게 됩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교사를 노동자라 하면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 한 부분입니다. 사실 제대로 된 자본주의 사회라면 ‘직업에 귀천은 없고’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않고 자신의 노력으로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 충분히 존경받고 당당해야함에도 현실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우리사회는 직업에 귀천을 매기는 풍토가 엄연히 존재하고 그 사람의 인격이나 품성이 아니라 외형적 직업이나 지위에 따라 사람대우가 달라지는 것을 학생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야 할 학생들이 근육을 움직여 노동하지 않고 지식으로. 그럴 듯한 말로 땀 흘리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나 요령을 배우려고 하는 것은 다 기성사회가 좋은 모범을 보여주지 못한 책임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