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TalkTalk 109회 수분이 필요한 계절에 만나는 참나리약선식생활연구센터 고은정 ▲ 참나리집에서 나와 계곡을 돌면 지나치는 길 여기저기서 참나리란 이름을 가진 강렬한 주홍빛 꽃들이 나의 발길을 잡는다. 짙은 초록의 풀들에 파묻혀 자신을 들어내기 쉽지 않은 계절이니 그렇듯 유난스레 짙고 아름다운 색깔의 꽃을 피워 벌과 나비를 부르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야생의 식물들도 사람들과 같이 살아남기 위한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사는가 보다. 참나무. 참마. 참죽. 참취. 참나물. 참꽃 등 이름 앞에 ‘개’가 아닌 ‘참’이란 글자가 들어가는 것들은 인간에게 더 많은 쓸모를 제공하는 고마운 식물들일 텐데 참나리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땅속의 비늘줄기인 알뿌리를 쪄서 단자라는 떡으로 만들어 먹고. 가루로 만들어서는 국수의 재료로 이용하기도 하니 말이다. ▲ 참나리 뿌리를 이용한 국수참나리는 우리가 흔히 부르는 흰 백합꽃의 원종이다. 우리나라 전역에 자생하는데 우리의 토종식물 수수꽃다리가 해방직후 한 미군에 의해 미국으로 건너가 비서의 성을 딴 ‘미스킴라일락’이라는 원예용 품종으로 상품화 된 것처럼 참나리도 해외로 유출되어 원예용 백합으로 상품화 된 대표적인 식물이다. 종의 다양성이 한 국가의 큰 자원이 되는 시대가 아니라도 참나리나 수수꽃다리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참나리는 백합이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원예용으로 흔한 흰색꽃 백합 덕분에 사람들은 백합이 이런 백합(白合)일 것이라 착각하지만 그 뿌리에 백(百)개나 되는 비늘 조각이 모여(合) 붙어 있어 백합(百合)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꽃 자체를 백합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한방에서는 훌륭한 약성을 가지고 있는 참나리의 뿌리만을 백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백합(참나리의 뿌리)은 맛이 달고 성질이 서늘하며 그 효능이 폐와 심장에 작용한다. 폐에 생긴 열을 내려주고 건조한 몸에 진액을 만들어 내는 효능이 있어 마른기침이나 오래된 기침. 가래를 치료하는 약재로 쓰이고 있다. 실제로 몽골 등의 사막지역에서는 백합을 돼지고기와 볶아 먹는 요리가 아주 흔하다고 한다. 돼지고기나 백합 모두 몸 안에 음을 기르며 진액을 만드는 힘이 크기 때문이다. ▲ 참나리 뿌리를 이용한 마들렌백합은 열이 있는 병을 앓고 난 뒤 가슴이 답답하거나 두근거리는 증상. 잠을 못 이루고 꿈이 많은 등 정서적인 안정이 필요한 증세에 아주 유용하다. 고서인 <금계요략>에는 백가지 병이 합쳐진 것 같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신불안과 신경증을 특별히 ‘백합병(百合病)’이라고 하였다는데 이 병의 모든 처방에는 백합이 꼭 들어간다고 하니 백합의 신경을 안정시키는 효능이 그야말로 최고라는 이야기다. 뿌리로도 번식을 하지만 잎겨드랑이에 난 참나리의 살눈인 흑진주 모양의 주아를 땅에 떨어뜨려 번식을 하기도 하니 그 생명력이 대단하여 인간의 병든 몸을 치료하기도 하는가 보다. 겨울에도 땅속에서 싱싱하니 달고 부드러운 뿌리를 캐어 죽을 끓이면 좋다. 마나 둥굴레를 같이 이용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면 폐의 기운을 좋게 하니 건조한 가을과 겨울에 적극 추천할 만한 음식의 재료이며 약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백합은 폐에 있는 열을 내릴 만큼 그 성질이 차므로 속이 차서 설사를 자주 하는 사람이나 오한과 함께 기침을 하는 사람들은 신중하게 먹어야 한다. ▲ 백합당하관 이상의 벼슬아치를 이르는 말에 ‘나리’ 혹은 “나으리”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참나리는 자주 벼슬아치를 상징하는 꽃으로 민화 등에 등장을 하기도 한다. 재미있게는 우리의 선조들이 탐관오리를 일러 ‘개나리’로 청렴결백한 선비나 벼슬아치를 ‘참나리’로 부르기도 하였다 하니 요즘의 정치하는 사람들이 개나리로 불리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