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는 좋죠. 그러나 주민들에게는 애물단지예요. 한여름에 배설물 악취와 울음소리를 계속 듣고 있어야 하니..."희고 깨끗해서 청렴(淸廉)의 상징으로. 예로부터 길조로 여겨 왔던 백로가 주민들의 눈총의 대상이 되고 있다.함양읍 이은리 명진빌라 인근 야산과 인당마을 대나무 숲 등지에 수년 전부터 수 백마리의 백로 등이 둥지를 틀면서 이 마을의 골칫거리로 자리잡았다. 지난 17일 오후 어스름에 찾은 명진빌라 인근은 온통 새들의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멀리서 보기에는 수 백마리의 하얀 새떼들이 대나무 등 나무 위에 모여 앉은 모습이 보기에도 평화로워 보였다. 그러나 감흥도 잠시 가까이 다가갈수록 시끄러워지는 새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악취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명진 빌라 주민은 "새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태 참았지만 이제는 생활하는데 너무도 힘들다"며 "배설물들로 인해 날마다 물 청소하는 것은 다반사고 차도 새의 배설물로 뒤덮이고 지붕도. 마당도. 빨래에도 그리고 마당 한 켠에 채소밭에도 어느 한 곳도 배설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며 힘겨워했다.새들은 아침이 되면 먹이활동을 하러 많이 떠나고 저녁에 둥지로 돌아온다. 어스름이 짖어지면 마을은 둥지를 찾는 새들의 울음소리로 가득하다. 또한 배설물로 인해 마을 뒷산의 대나무들은 성한 것이 드물다. 앙상한 대만 남은 대나무 사이를 새들이 촘촘하게 앉아 있다. 인당마을 뒤 대나무 숲도 새들이 점령했다. 지난해까지 2쌍 4마리가 날아들어 운치 있어 좋아했던 주민들은 올해 들어 수백마리로 새떼들이 증가하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평화롭던 마을도 시끄러운 새 소리와 배설물 냄새로 가득 찼다.마을 주민은 "곳곳에 배설물로 인해 대나무가 앙상하게 변했다. 소음도 심각하고 특히 심각한 것은 배설물이다. 집이 엉망으로 변해버렸다"고 하소연했다. 인당마을에서는 새떼들을 쫓기 위해 밤마다 대나무 숲 아래에 연기를 피워 새들을 쫓고 있다. 그러나 이도 잠시 뿐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주민들은 무더운 여름 울음소리와 악취로 인해 창문도 열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처럼 새떼들로 인해 생활의 불편이 계속되자 주민들은 군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이 같은 민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년전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하백마을의 새떼로 인한 민원이 끊이지 않자 대나무 등을 베어내 서식지를 제거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쫓겨난 백로들이 그대로 인당마을로 장소를 옮겨 또 다른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이다. 포획 등을 할 수 없는 이상 또 다른 곳으로 쫓아내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며 아니면 상생의 길을 택하는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함양지역에서 새들로 인해 민원이 발생하는 반면 함께 살아가는 것을 택해 상생하는 곳도 있다. 인근의 거창군 사동마을이 그곳이다. 이 마을은 예전부터 수백마리 새들이 마을 뒷산을 차지했다. 냄새와 새소리 등으로 인해 민원도 많았지만 주민들이 뜻을 모아 함께 '상생'을 도모하면서 이제는 새와 사람이 공존하는 '학마을'이라는 새로운 이름까지 얻어 유명세를 타고 있다.이곳에는 관광객들과 사진작가들이 새들을 더욱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조망대를 설치하는 등 골칫거리 새떼를 새로운 관광 상품화하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사동마을 김근형 이장은 "쫓아내려고 적극적으로 달려들면 못 쫓아낼 것은 없지만 그럴 필요까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예로부터 수백년 동안 마을과 함께 살아온 새들을 쫓을 필요가 뭐가 있느냐. 냄새 등 불편함은 있겠지만 함께 살아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