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정교회 조한우 목사우리 조상들은 뚜렷한 사계절을 보내면서 계절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여유와 풍류를 즐기면서 살아왔다. 그 중에 한 가지가 삼복더위를 보내는 방식이다. 냉장고나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조차도 없었던 시절에는 시원한 모시나 삼베옷 하나로 여름 더위를 이겨낼 수밖에 없었다. 기껏 해봐야 부채와 죽부인. 아니면 등등거리라고 불리는 등토시 같은 것으로 끈적거리는 여름을 피해 보다가 마당 앞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등목을 하는 것이 최고의 피서였다. 거기에 하나를 덧붙이자면 유달리 민간요법이 발달했던 우리 조상들은 체질이나 계절에 따라서 다양한 음식들로 영양을 보충해 왔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주인의 허약한 체질을 개선해 주기 위해서 해마다 이 맘 때가 되면 전국에서 수많은 멍멍이들이 희생을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두고서 서양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을 야만인으로 취급해 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그러나 어찌하랴? 그렇다고 소를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돼지를 잡는 것도 그렇고. 그나마 서민들에게는 가장 쉽게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는 짐승이 바로 개가 아니었겠는가? 사실 필자도 개인적으로는 개를 무지무지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내와 두 아들은 물론이고 교인들조차도 교회에서 개를 키운다는 것을 탐탁치않게 여겨왔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교회에서 개를 키우는 것을 한사코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오랜 투쟁 끝에 결국 개를 기르게 되었다. 언젠가 한번은 아주 멋진 세파트를 한 마리 얻어다 놓고서 애지중지 키우고 있었는데. 외출을 하고 돌아와서 보니 개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휘파람을 불고 개 이름을 크게 소리쳐서 불러봐도 묵묵부답이었다. 한참을 애타게 찾아다니다가 아내에게 개를 못 봤느냐고 물어봤더니 돈도 안 받고 개장사에게 가져가라고 줬다는 것이다. 너무나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서 싸움도 못하고 다만 며칠을 냉전으로 일관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기를 몇 번. 이제는 10년째 칠정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있다 보니까 나름대로 배짱(?)이 생기게 되었다. 교인들도 어지간한 일로는 목사가 하는 일에 반대하는 사람도 없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도 이제는 아주 순하고 착한 진돗개 한 마리를 기르고 있다. 이름도 교회 개답게 ‘시온’이라고 지어 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복날이 되면 몇몇이 어울려 다니면서 보신탕집을 들락거리는 속물 중에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를 끔찍이도 사랑한다.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일도 다 있다. 한 번은 필자가 어린 시절에 집에서 기르던 개가 없어진 것을 알고는 눈이 퉁퉁 붓도록 엉엉 울면서 한나절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아버지께서 누린내가 나는 이상한 국그릇을 들고 들어오셔서 울고 있는 나를 달래면서 먹으라고 하시면 그게 우리 집 개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어느새 나도 모르게 맛있게 먹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이제는 나도 어른이 되어서 나이 오십이 되고 말았다. 시인이랍시고 등단을 해서 시를 끌쩍거리다가 요즘에는 시낭송에 매력을 느껴서 진주시내에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그림내 시낭송회’라는 곳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주 토요일에 그림내 시낭송회 주최로 전국 어린이 시낭송대회를 개최한 일이 있었다. 그 대회에서 영예의 대상을 받은 어린이가 낭송했던 시가 생각이 나서 소개해 보고자 한다. 손택수라는 젊은 시인이 지은 ‘흰둥이 생각’이라는 시인데. 함께 감상해 보기로 하자! 손을 내밀면 연하고 보드라운 혀로 / 손등이며 볼을 쓰윽 쓱 핥아주며 / 간지럼을 태우던 흰둥이 / 보신탕 감으로 내다 팔아야겠다고 어머니가 / 앓아누우신 아버지의 약봉지를 세던 밤 / 나는 아무도 몰래 대문을 열고 나가 / 흰둥이 목에 걸린 쇠줄을 풀어주고 말았다 // 어서 도망가라 멀리 멀리 / 자꾸 되돌아보는 녀석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며 / 아버지의 약값 때문에 밤새 가슴이 무거웠다 / 다음날 아침 멀리 달아났으리라 믿었던 흰둥이가 /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와서 / 그 날 따라 푸짐하게 나온 밥그릇을 / 바닥까지 달디달게 핥고 있는 걸 보았을 때 / 어린 나는 그예 꾹 참고 있던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는데 / 흰둥이는 그런 나를 / 다만 젖은 눈빛으로 핥아주는 것이었다 // 개장수의 오토바이에 끌려가면서 / 쓰윽 쓱 혀보다 더 축축이 젖은 눈빛으로 / 핥아주고만 있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의 시낭송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주루룩 흘리고 말았다. 이제 초복이 지나고 중복과 말복을 앞두고 있는데. 한자로 복이라는 단어는 복 복(福)자가 아니고. 사람 인(人)자 옆에 개 견(犬)자가 붙어있는 복(伏)자이다. 아무쪼록 개가 사람 옆에 마음놓고 붙어 있을 수 있는 그런 복(伏)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침 태풍이 불어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던 터라 개집에 커다란 우산을 하나 씌워 놓고서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단단히 눌러 놓고 들어왔다. 우리 집 시온이가 주인을 잘 만난 덕에 올 여름을 무사하게 보내길 바란다. 그럼 아마 나도 덩달아 행복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