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복주 시인의 안녕하세요 함양 26편추석명절 즐겁게 잘 보내세요! 안녕하세요 함양추석입니다. 며칠 있으면. TV에서는 연일 추석 특집 프로그램으로 스타들이 나와 안방 가득 웃음꽃 만 다발을 뿌리겠지요. 추석날은 우리 민족의 해방 다음 가는 가장 기쁜 날이지요. 오곡백과가 익고 추수로 햅쌀이 나오고 솔가지에 송편을 쪄 먹고 갈비찜에 각종 나물에 창자에 오장육부가 다 부어터지는 날이지요.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온갖 썰을 다 푸는 날입니다. 조상이나 부모님의 묘에도 찾아가 큰절 한번 해보는 날입니다. 그러니 어찌 즐겁지 않은 날이겠습니까! 그래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어야 할 진풍경이 펼쳐지는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이런 날 가장 슬픈 사람은 갈 곳이 없는 사람입니다. 부모친척이 없거나 사정이 있어 고향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슬픔은 한없이 큽니다. 그런 분들이 이웃에 있다면 떡과 음식 함께 나눠 먹어야 추석다운 추석이 되겠지요. 나의 부모님은 두 분 다 몇 년 전에 돌아 가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서울에 사는 형님 댁에 갑니다. 형님과 함께 부모님 묘를 찾아가 생전에 새겨진 그리움을 되새김합니다. 그런데 사실 추석날 서울 가는 게 장난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엑소더스지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차량에 차량. 고속도로는 거대한 용의 꼬리가 돼지요. 10시간은 보통이지요.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고향 가는 기쁨이 더 큰데. 황금 같은 4.5일의 연휴. 작은 효자가 전화합니다. “어무이요. 작은 애가 갑자기 열이 펄펄 나네요. 예. 이번 추석엔 아무래도 못 내려 갈 것 같습니더” “알긋다. 아들아. 병원에라도 가야지 가만있으면 쓰갔냐.”조금 더 효자가 어무이를 찾습니다. “어무이요. 추석 날 당직이라 아무래도 못 올 것 같아 미리 왔습니더. 건강하이소” “아이고. 그럼 전화하믄 되지 무하러 왔다냐” 추석 즈음 인천공항은 사람의 물결로 전쟁터입니다. 필리핀으로 태국으로 하와이로 호주로 떠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난리입니다. 공항은 대목 맞은 장터입니다. 촌철살인 하는 TV광고를 볼 때마다 나는 혀를 내두릅니다. 정말 저런 아이디어를 어찌 생각해내는지 혀를 끌끌 찹니다. 15초. 30초에 1-2억 광고비라니 어찌 그러지 않겠습니까. 혹시 세탁기인가 텔레비전 광고인가 가물가물하여 정확치 않습니다. 기억나시는지요?시골 사는 아버지가 툇마루에 앉아 도시의 자식과 전화통화 합니다. 그때 어머니는 뒤에서 빨랫감을 들고 지나가며 말합니다. “아가야. 여기는 아무 걱정 말아라. 세탁기 절대 필요 없다. 세탁기 절대 보내서는 안 된다.”며느리인지 딸인지 시골 부모에게 전화 왔습니다. “어머니 잘 계시지요. 여기도 잘 있어요. 요금이 많이 나오니 그만 끊어요. 뚝!” 한마디 말해 보지도 못하고 전화기만 들고 있던 어머니가 남편에게 말합니다. “여보. 며늘아기네에 OO인터넷 전화 한 대 놓아주어야겠어요” 이게 현대인의 아이러니 한 삶의 한 단편이지요. 도시에 사는 자식들 그리고 시골에 사는 부모님들. 떨어져 살면서 그래도 안부를 전하고 끈끈한 정을 끊기도 하고 붙이기도 하면서 사는 현대인의 모습이지요. 삶에서 만남과 보고픔은 무엇일까요? 조상과 부모와 자식이란 가족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추석은 그러한 머리 아픈 철학을 한순간에 다 풀어줍니다. 자식이 부모를 찾는 것이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습니까. 당연지사고 후손이 조상을 성묘하는 것이 무슨 설명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요? 어제는 비가 내렸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비가 내립니다. 비 오는 날은 공(空)치는 날이라고 해서 할 일 없이 슬슬 산골에서 내려와 읍내로 잠입했습니다. 점심이나 먹자고 윗집 총각을 꼬셔 동행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 아니라 가는 곳마다 공쳤습니다. 시골집도 문 닫고 낙곱집도 문 닫고 함바집도 문 닫고 제기랄. 점심 하나 제대로 먹을 수가 없다니- 시장통을 어슬렁거리다 분식집이 있길래 그래. 칼국수나 한 그릇 묵자 하고 들어갔습니다. 수제비 두 그릇 시켜 놓고 앉아 모기에 몸을 던지고 있는데 옆 상에서 혼자 식사를 다 하시고 앉아 있던 60대의 아저씨가 저편에 앉아 있는 할머니에게 말을 건넵니다. “이 집은 어무이 닮아 딸들도 다 건장하게 잘 생겼네” 딸 셋이 음식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딸부자인가 보아요? 어무이 돕는다고 다 나와 있으니 참 보기 좋으네요” 내가 한 수 건네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내는 이런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결국은 주제가 자식에 귀착됐는데 자식 믿을 것 하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제비도 불어 터져야 맛있으니까 기다릴 겸 그래서요. 그런데요. 왜요. 어떻게 됐는데요. 하고 묻자 그 분은 세상을 다 꿴 도인으로 줄줄 말합니다. "시골 할매들은 쐐빠지게 일할 수밖에 없어요. 쓰러져가면서도 밭일하는 게 그게 다 자기 몫이라. 돈 한 푼이라도 벌어야 자식이나 손자에게 돈 한푼이라도 쥐어 주니까” “아. 뭐 하러 그래요. 있는 돈으로 잘 먹고 잘 살다 가셔야지. 그러니까 재산 같은 것은 죽을 때 주어야 해요. 그래야 효도하지” 내가 말하자 “이 양반 아직 잘 모르는구만. 그걸 누가 모르나. 다 비상금을 남겨 두지. 그런데 그 돈이 일 이년 남아나는 줄 아나? 자식이 대처에서 사업한다 뭐 한다 다 들어먹고 집이 차압이다 뭐다 도망다닌다 감방 간다 안 간다 하는데 그 돈이 남아나겠는가? 돈 냄새 맡으면 자식이 와 어무이고 뭐고 집안 다 때려부수는데 남아나는가? 요즘 며느리는 손주 할매에게 보내 놓고 돈 안주면 이혼하겠다느니 술집 나가겠다느니 하며 바람피운다고 으름장 놓는데 파탄 나는 자식을 보며 무슨 재주로 그 돈 움켜질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은 그렇게 쉬운 게 아녀”나는 수제비를 넘기다 울컥 토해내고 말았습니다. “뙤약볕에서 허리 굽혀가며 키운 감자며. 고추며 마늘이며 된장 고추장 바리바리 싸줘 봐. 아무렴 갖고 가지. 요즘 신식 며느리 아파트 들어가기 전에 냄새난다고 다 버리고 들어 가. 마트가면 깎아놓고 다듬어 놓고 만들어 논 음식 가득한데 언제 깎고 언제 다듬고 만들 줄도 모르는 것을 언제 어찌 만들어. 그렇게 살 필요 없는 거지. 대신 돈 벌잖아” 이 아저씨 조금 너무 심합니다. 안 그런 며느리가 얼마나 많은데. 결국 나는 수제비를 버렸습니다. 실화.-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 라우더데일 해변으로 가는 가족 단위 혹은 연인들로 붐비는 장거리 버스 안. 주변의 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우 침울하면서도 기대어린 눈동자로 창밖을 바라보는. 허름한 옷차림의 사내가 있었습니다.그리고 그런 사내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한 여성이 다가가 말을 걸었고.그에 동조한 승객들 모두가 그 사내에게 호기심을 표하자. 사내는 한참 뒤에 말문을 엽니다. 자신의 이름을 빙고라 밝힌 사내는 4년간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석방되어 고향으로 귀가하던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석방이 결정되던 날.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만일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들인다면 마을 어귀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걸어 두라고... 손수건이 보이지 않는다면 자신은 그냥 그대로 버스에 탄 채 어디론가 가 버릴 거라고. 사연을 들은 승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창가로 몰려들어 그 참나무가 나타나기만 기다렸습니다. 노란 손수건이 걸려 있었을까요? 걸려 있지 않았을까요? 당신은 어느 쪽에 마음의 손수건을 걸어 두었습니까?- 차 안에 정적만이 감돌고 있던 차에. 버스 운전사가 갑자기 경적을 울리며 환호를 지릅니다. 그의 마을 어귀에 서있는 커다란 참나무는 온통 노란 손수건의 물결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Yellow 노랑색 리본! 참나무 가지를 진 노랗게 온통 덮은 Yellow 노랑색 리본! 이 감동! 이 환희! 살아있는 자의 귀환입니다. 돌아가는 자의 기쁨입니다. 추석. 민족의 대이동. 도대체 무엇이 이 나라의 이 민족을 누가 가라고 누가 가야한다고 법으로 명령한 바 지시한 바 없는데 이렇게 보이지 않은 길을 찾아 하루고 이틀이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것일까요? 자석에 끌리듯 가진 사람도 가지지 못한 사람도 바쁜 사람도 바쁘지 않은 사람도 행복한 사람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도 아픈 사람도 아프지 않은 사람도 높은 사람도 높지 않은 사람도 이 날은 다 사연을 가지고 어디론가 돌아갑니다.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리움으로 머언 먼 길이라도 서슴지 않고 고향을 찾아갑니다. 설레면서 기쁨으로 환희로 그리움으로 꿈의 동산을 달려갑니다. 동네 어귓가 당산목 나무 그늘 아래 늙으신 어무이는 늙으신 아부지는 벌써 나와 Yellow 노랑색 손수건을 온통 가지마다 한가득 매달아 놓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니지요. 집이란 집에 모든 등불을 다 켜놓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혹시나 캄캄한 밤길을 더듬어오다 넘어지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세상에 모든 불을 켜놓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돌아가야 할 고향이 있으므로 행복합니다. 당신은 그리워해야 할 부모와 친척이 있으므로 행복합니다. 당신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으므로 외롭지 않습니다. 추석이 있으므로 그 다음 날의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 함양의 모든 가족분들 추석 즐겁게 잘 보내십시오! 행복한 가족의 날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