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의 달 6월, 함양군에 거주하는 독립운동가 후손 이종원 씨의 삶이 알려지며 지역사회에 울림을 주고 있다. 만주에 신흥무관학교 설립을 주도하며 전 재산을 기꺼이 바친 우당 이회영 선생의 종손, 이종원(73) 씨가 그 주인공이다.이 씨는 이회영 선생의 바로 윗형이자, 독립운동에 함께 헌신했던 이철영 선생의 친손자다. 이회영을 포함한 6형제는 1910년, 국권을 빼앗긴 그해 말 가족 60 여 명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향했다. 서울의 고택과 수많은 전답을 급히 처분해 마련한 독립운동 자금은 약 40만 원.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600억 원 이상에 달하는 거액이다. 그 재산은 모두 독립운동을 위한 기반 조성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에 사용됐다.“어릴 적엔 우리 집이 그런 집안인지 몰랐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할아버지들께서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이야기만 했고요. 훗날 이종찬 형님(제23대 광복회장)이 활동하시면서 그제서야 우리 집안의 내력을 알게 됐죠”이 씨는 지금 수동면 농촌 마을에서 조용한 일상을 살고 있다. 누군가는 ‘그만한 가문의 후손이라면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는 선조의 선택을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는다.“할아버지들이 독립운동을 하지 않고, 가지고 있던 막대한 재산이 남아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그런 결단을 내려주셨기에 제가 지금 존재할 수 있는 거죠. 만약 제가 그 시대에 태어났어도 똑같이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이종원 씨는 부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어려운 형편 탓에 학창 시절을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 10대 중반부터는 금세공 기술을 배워 생계를 이어갔고, 이후에는 경비원으로 일하며 삶을 꾸려왔다.“저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어요. 그래도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왔습니다. 남들이 저를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습니다”우당 일가는 조선 중기의 명재상 이항복의 후손이며, 부친 이유승은 이조판서, 공조판서, 우찬성, 궁내부 특진관 등 조선 말기 고위 관직을 지냈다. 만약 이회영 일가가 일제에 협력했다면 권세와 부를 누릴 수 있었지만, 이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독립운동을 위해 망명길에 올랐다.그러나 그 선택의 대가는 혹독했다. 형제 중 다수가 타국에서 병사하거나 곤궁 속에 숨을 거뒀다. 이회영 선생은 1932년 중국 다롄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고 순국했다.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해 광복을 맞은 이는 막내 이시영 선생뿐이었다. 그는 해방 후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냈다.이들의 희생은 196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으로 추서됐으며,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중국 정부 또한 항일 혁명의 영웅으로 이들을 기리고 있다.하지만 후손들의 삶은 선조의 위업에 비해 무척이나 소박하다. 이종원 씨는 현재 국가유공자 연금 수급 대상이 아니며, 많은 독립운동가 자손들도 마찬가지 처지다. (유족 1인에게만 지급됨)“연금이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훗날 또 다른 국가적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누군가는 다시 희생해야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상황을 대비하려면 지금이라도 희생자와 그 후손에게 그에 걸맞는 예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진짜 나라를 위한 준비 아닐까요?”이 씨는 언론 노출에도 상당히 조심스러워 했다. 후손들이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는 인식이 선조의 이름에 누가 될까 우려됐기 때문이다.“저는 지금도 잘 살고 있습니다. 다만 조국을 위해 모든 걸 바쳤던 선조들의 자취가 잊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분들의 삶은 제 일생의 자부심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이 씨와 함께 인터뷰에 동석한 곽선미 금호마을 이장은 그를 “참 바른 사람”이라고 소개했다.“마을의 궂은일을 마다 않고, 항상 웃는 얼굴로 이웃을 도와줍니다. 업적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매일같이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 ‘역시 대단한 집안이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듭니다”한편 이종원 씨는 독립후손으로 받은 혜택은 전무하고, 유일하게 막내동생이 고등학교 마지막 학기 학비를 면제받은 것과, 우당이회영기념사업회가 보내준 쌀이 전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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