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66편호박이 넝쿨째로 굴러들어온다▲ 늙어가는 호박요즘에는 호박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서 좀 달라졌지만 예전의 선조들은 따로 땅을 내어 호박농사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밭둑이나 담벼락 아래에 심고. 때로는 사립 건너 뒷간 지붕을 타고 올라가도록 하는 것이 호박의 넝쿨이었다. 어쩌면 뒷간 지붕을 타고 올라가는 호박에는 별도의 거름을 하지 않아도 달덩이만한 호박이 지붕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라앉아 있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에야 일부러 퇴비나 여타의 비료를 주고 키우지만 과거에는 삭혀두었던 똥?오줌을 파놓은 구덩이에 넣고 호박씨 하나를 심어두면 그만이었으니 뒷간 근처에 심어놓은 호박은 절로 잘 자랐을 것임에 틀림없을 터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버려둔 듯 그렇게 키운 호박을 유난스레 좋아한다고 짐작되는데 그 이유는 호박으로 만드는 다양한 이름의 음식들이 있기 때문이다. 애호박은 애호박대로 늙은 호박은 늙은 호박대로 그 모양과 조리 방법을 달리하여 호박잎쌈을 시작으로 애호박나물. 애호박전. 애호박찌개. 호박순국. 호박범벅. 호박만두. 호박잎감자국. 늙은호박죽. 늙은호박나물. 늙은호박고지. 호박고지. 호박떡. 호박엿. 단호박찜. 단호박샐러드. 단호박커리 ...... 등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음식들이 그 예이다. ▲ 단호박죽하지만 처음에는 승려들이 먹는 채소라 하여 승소(僧蔬)라 불리기도 했고.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는 채소라 천시되어 양반들은 먹지 않았다 하였는데. 19세기 중반에 나온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는 점점 호박 먹는 것이 유행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먹는 채소가 되었고 산해진미에 견줄 수 있는 채소라고도 하였으니 이후 호박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채소가 되었음이 확실하다. 이렇듯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호박은 월과(越瓜)로 불리는 애호박과 남과(南瓜)로 불리는 늙은 호박으로 분류하여 이야기해야 한다. 월과는 단맛을 가지고 있으며 성질이 차서 우리 몸의 번열을 없애주고 진액을 만들며 소변을 잘 보게 해준다. 하지만 남과는 달지만 애호박과는 달리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소화기를 건강하게 해주며 기운을 나게 해준다. 또한 해독하는 작용이 있으며 살충의 효능도 함께 가지고 있다. 호박을 약용으로 쓸 때는 늙은 호박을 쓴다. 맛이 달지만 당분이나 지방. 염분의 함량이 적어 당뇨환자의 식이에 중요한 식재료가 될 수 있다. 실제로 호박을 주식으로 하는 일본 북해도의 어떤 마을에는 당뇨나 고혈압 환자가 없었다고 하니 당뇨나 고혈압을 치료하는 천연의 약재이면서 식재료가 바로 호박임을 부인할 수 없다. 남과자(南瓜子)로 불리는 호박씨 또한 맛이 달며 성질은 평화롭고 독이 없지만 구충의 효능이 뛰어난 식재료이다. 소화기를 튼튼하게 할 뿐 아니라 대소변을 잘 보게 하고 당뇨에 좋으며 젖 분비를 돕고 산후부종을 치료하는 효능도 있다. ▲ 호박꽃선특별히 자리를 차지하고서라야 잘 자라는 식물도 아니고 아무 곳에서나 뿌리를 내리고 저 혼자 넝쿨을 뻗으며 넓적한 잎들 속에 수많은 열매를 숨겨 맺는 호박이야말로 잎과 순부터 시작해 애호박. 늙은호박. 씨앗까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효자 식재료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담 넘어 호박이 넝쿨째로 굴러 떨어지는 것은 소리만이 아니라 우리의 건강도 함께 굴러들어오는 것임을 깨닫고 또한 호박이 아주 귀한 식물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며칠 후 늙은호박 한 덩이 잘 갈무리 해둔다면 추운 겨울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먹을 호박죽 한 그릇이 맛날 것이니 그 또한 기쁠 것이다. 약선식생활연구센터 고은정 (ggum234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