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정교회 조한우 목사바야흐로 입시철에 접어들었다. 연년생으로 아들만 둘을 둔 필자도 요즘 덩달아 입시전쟁에 돌입해 있다. 이번에는 큰아들이. 내년에는 둘째 아들이 대학에 갈 차례가 되었기 때문이다. 큰아들이 지망하는 대학에서는 지난 18일까지 수시원서를 접수해야 한다고 공지가 되어 있었다. 수시전형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서류들을 준비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자기 소개서이다. 필자의 아들도 몇 주 동안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는데. 그리 쉬워 보이지 않았다. 자기 소개서에 들어갈 항목도 가지가지여서 수상 실적을 비롯한 온갖 스펙들을 기록해야만 했다. 우리 아이가 지원하는 대학교에서 원하는 자기 소개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지원동기와 진로계획을 중심으로 해서 그 대학교가 자기를 선발해야 하는 이유를 쓰라는 것이다. 두 번째. 고등학교 재학 중에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학업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기록하라는 것이다. 세 번째. 학내외 활동 중에서 가장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이 되는 것 세 가지를 소개해 보라고 했다. 네 번째. 주어진 몇 가지 주제 중에 자기 자신에게 맞는 주제를 선택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기술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읽었던 책 중에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책 세 권을 차례대로 소개해 보라는 것이었다.얼핏 보기에는 매우 간단해 보이는 것 같지만. 하나하나 써 나가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 온 신경이 다 쓰이고 침이 바짝 바짝 마르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장 안 되는 글을 보고서 합격과 불합격을 가른다고 하니 어찌 긴장이 되지 않았겠는가? 오죽하면 서울에서는 자기 소개서 한 장 써 주는데 3백만 원이라는 소리가 공공연한 비밀로 떠돌고 있지 않는가? 이제 갓 스무 살도 안 된 아이들에게 그동안의 자기 인생을 돌아보면서 자기를 소개하라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가혹한 주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입학 사정관들은 여지없이 정해진 잣대를 들이대면서 자기 학교에 입학시킬 학생들을 직접 고르겠다고 나섰으니 말이다. 부모들의 자괴감은 여기서부터 시작이 된다. ‘진즉 글쓰기 지도를 제대로 좀 해 줄 걸. 이왕이면 대학에서 요구하는 여러 가지 화려한 스펙들을 쌓을 수 있도록 자갈논이라도 팔아서 해외여행이라도 보내줄 걸’ 그러나 이미 버스는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솔직히 말해서 한국 사람치고서 누가 자신 있게 자기를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완벽하게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가 않을 것인데. 그런 면에서는 일괄적으로 정해진 형식을 따라 자기소개서를 요구하는 대학 당국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런 불편한 심기를 가지고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아들을 대학에 보내고 싶은 부모의 심정은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이 자기 소개서를 붙들고서 몇날 며칠을 씨름하더니 드디어 수시원서 마감을 하루 앞두고 자기 소개서를 내밀면서 검사(?)를 부탁했다. 아들이 쓴 자기 소개서 속에는 아버지보다도 훨씬 더 풍부한 생각과 지식을 가진 어엿한 청년 하나가 들어있었다. 그동안 학원에도 한번 못 보냈었는데. 아들은 어느 틈에 이렇게 성숙한 인격을 갖추게 되었을까? 아들 몰래 속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너무나 순하고 착했던 아들은 어렸을 때 이웃집에 사는 두서너 살 많은 아이의 꼬임에 넘어가서 그만 빙초산을 마시고 식도가 타 버리는 고통을 겪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욕을 할 줄 몰라서 ‘바보. 바보! 거지. 거지!’라며 분통을 터뜨렸던 아들이었다. 그때 나이가 네 살이었다. 아들은 아직도 많은 양의 음식을 삼키지 못하고 조금씩조금씩 음식을 꼭꼭 씹어서 넘기고 있다. 한 살 어린 동생과는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는 착한 형이다. 혹시라도 바빠서 신호를 위반하기라도 하면 아빠는 목사님이시기 때문에 절대로 신호를 어겨서는 안 된다고 충고하는 조금은 고지식한 아들이기도 하다.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나서 다시 신학을 공부해서 노인들을 위한 사역과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아들은 바쁜 와중에도 벌써 세 번씩이나 헌혈도 했단다. 아들은 중학교 때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어르신들을 찾아서 돌봐드리는 봉사활동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언젠가 아들이 사회복지를 뭐라고 정의하면 좋겠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필자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공동체의 따스한 연대의 손길’이 바로 사회복지라고 말해 주면서 아들에게 ‘그 따스한 손길’이 되어 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아들은 아버지처럼 목사가 되어서 사회복지 일을 해 보고 싶었었던 모양이다. 남들처럼 돈 잘 벌고 출세하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아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지만. 꾸밈없이 자기 소개서를 그렇게 마무리하고 있는 아들을 안아주면서 고맙다는 말을 해 주었다. 나는 나에 대해서 어떤 내용으로 자기 소개서를 채울 수 있을까? 자랑까지는 아니더라도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