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리 교회 목사 김정형월요일이라 시간을 내어 거창에 다니러갔다. 이것저것 구입할 것도 있고 해서... 맛있는 굴밥을 먹으면서.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어서 전화를 걸었더니. 오라고 하셨다. 필자가 찾아 간곳은 거창의 J 교회. 거기에서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만남을 가졌다. 그런데 그곳에는 많은 어린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놀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다소 소란스러웠다. 처음에 교회에 들어오면서 본 것은 어른들의 연령대는 분명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정도의 자녀들이 있음직한 5. 60대 나이의 중년에 들어선 분들이 거의 대부분 이었는데 아이들이 이렇게 많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궁금함을 참지 못하여 목사님께 물어 봤더니 모두가 임신과 출산을 통해서 얻어진 아이들 이라는 것이다. 목사님은 먹음직스러운 현미떡을 내놓으시면서 직접 만드셨다고 하셨다. 진지한 대화 후에 목사님께서 보여준 것은 지난 TV영상물로서 자신이 나온 가족 출연 다큐였다. 벌써 여러 차례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분이었다. 목사님뿐만 아니라 그곳은 한 가정 당 최소 4~5명의 아이들을 가족으로 만들었고. 목사님 또한 여러 명의 아이들을 입양해서 키우고 계셨다. 그중에 걷지 못하는 아이를 데려와서 목사님의 헌신적인 정성과 사랑으로 돌보며 여러 번의 수술로 걷게 만들기도 하셨다. 목사님은 입양 홍보대사이시다. 목사님을 알게 된 것은 장애우를 돌보던 중 알게 되었다. 우리도 입양 의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쉽게 결정 못하고 있었는데. 목사님과 이야기하는 중에 원하는 아이가 있다 해서. 전화를 걸었더니 마침 오라고해서 입양 센터에 달려갔다. 차를 마시면서 기다리던 중 한 아이가 들어왔다. 눈 꼬리가 내려앉아 너무도 착하게 보이는 조그맣고 깡마른 아이였다. 살포시 웃을 때는 살인미소 그 자체였다. 행복한 웃음 뒤에 있는 장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원장님께서 “태권도 잘하면 해봐”하고 말씀하시자 아이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든다. 다시 한 번 원장님께서 “발차기 한번 보여주면 이 분이 아빠 할텐데...” 했을 때 벌떡 일어나 발차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내는 울컥하는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얼마나 부모가 그리웠으면. 부끄럽고 하기 싫은 행동을 거침없이 하는 걸까? 정말 예뻤다. 그래서 바로 딸을 삼기로 마음먹고. 점심시간이 되어 아이와 같이 첫 외출을 허락받았다. 점심을 먹기 위해 아이에게 “뭐 먹을래” 물어봤더니 삼겹살이 먹고 싶다고 해서 식당을 찾아 삼겹살을 맛있게 먹고 원에 다시 데려다 주었다. 원을 나오면서 사무국장이 하는 말이 걸리긴 했다. 엄마가 있는데 행방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잘 되겠지 하고 일주일 후 집으로 데려와 이틀을 함께 지냈다. 새로운 우리 딸은 아빠와 엄마란 단어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우리는 딸 때문에 너무도 행복하고. 집안에 활기가 가득 찼다. 원에서도 이렇게 빨리 진행되고.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은 처음이라며 장애아를 맡으려는 우리를 감사히 여기기까지 했다. 이틀이 지나 원에 아이를 데려다 주었다. 올 때와 갈 때의 아이의 표정이 너무도 달라서 가슴이 아팠다. 올 때는 신이 나서 시끄럽게 조잘대었는데. 갈 때는 말이 없고 살포시 미소만 짓는 것이 헤어지기 싫은 슬픈 마음을 보였다. 더 빨리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에 종종 전화를 하던 중 황당한 말을 들었다. 엄마를 찾았는데 엄마뿐만 아니라 오빠까지 어느 시설에 있었고 두 분 다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은 지금은 데려가지 않고 보육원에서 퇴소할 나이에 데려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뭔가? 지금까지 아이가 보육원에서 자라기까지 한 번도 부모의 자격으로 방문도 안하셨던 부모가 지금은 권리를 행하겠다는 것인가? 별 마음이 다 들었다. 그러면 우리 아이는 어떡하라고... 화가 치밀었다. 보육원 측에서도 친권을 가지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분노가 치미는 것은 부모가 나서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와 같이 있는 시설 원장에 의해서 부모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아무 주장을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답답할 수가 없다. 지금도 토요일이면 나를 기다릴 새로운 딸아이가 어른들의 이기심에 큰 상처를 받지 않았는지 걱정이 된다. 좋은 결과만 기다릴 뿐이다. 잠시 본 나의 딸이지만. 우리 가족의 영원한 딸이 될 것을 기다리면서...아이의 미래에 대해서 나 또한 보장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사랑으로 잘 길러서 건강한 사회인으로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만들고 싶다. 이것만큼은 꼭 이루어 주고 싶다. 아이는 사랑받을 자격을 가지고 이 땅에 보내졌는데 나부터 시작해서 어른들이 방해로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보육원의 아이들을 보면서. 모든 것이 풍족하여 넘치고 활기차게 채워 주고는 있었지만. 단 하나. 버팀이 될 수 있는 기댐의 사랑이 없어서 가여워보였던 모습 속에서 다짐했다. 여건이 더 나아진다면. 둘이라도 셋이라도 계속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고 또한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도록 권면할 것이다. 새로운 우리 딸과의 맺어짐이 이루어진다면 정말 그 사랑스러운 살인미소의 공주가 나의 딸이 되어주기를 이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기도 부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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