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도의원 문정섭행정의 씨알이요. 뿌리며. 기둥은 뭐니뭐니해도 “알아야 한다”는 읍면장이 아닌가 싶다. 지금부터 17년전 당시 내무부에서 최일선 읍면장은 민원실에서 근무하라는 지침이 내렸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 11개 읍면장 중 어느 누구도 민원실 근무를 하신 분은 없었는데 유일하게 지금은 고인이 되신 서하의 L 면장이 이를 실천한다는 기사를 접한 기억이 생소하다.그 후 95년도 별정직이 아닌 일반직 면장으로 필자가 모면에 부임을 하게 되었다. 필자는 부임과 동시에 민원실에 책상을 놓게 하고 근무를 시작하였더니 당시 부면장이며 직원들이 내심 불편한 심기로 껄끄럽게 생각하였지만 이장이나 각급 단체 뜻 있는 유지나 주민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 들여졌다고 한다.면은 좁았다. 자녀의 취업서류 준비를 위해 호적등본을 발급 받고 손자손녀의 출생신고나 읍내 초상이 났을 때 부고의 작성. 밀가루 배급을 타서 오후 내내 막차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면 차량으로 태워주었던 일! 술 취한 농민의 마음을 달래주던 일! 아들의 편지를 읽어주고 답장을 써 주던 일이야말로 가장 흐뭇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어느 리장이 어떤 일로. 무슨 단체가 무슨 일로. 어떤 향우가 어떤 일로. 고향을 방문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고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생소했던 주민들의 얼굴을 하나씩 읽을 수가 있었다. 경운기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한 환자를 방문격려하고 잉여모를 모아서 모가 부족한 농가에 공급해 주기도하였다. 통리민방위 대장교육이나 새마을 지도자대회 노인의 날 등 읍내에서 행사가 있을 때는 상림과 운동장이 가까운 필자의 집에 중식을 준비했더니 집을 알게된 주민들이 쌀이며 양파. 고구마. 감자. 단감. 사과. 배 등을 가져와 이웃의 친지들과 나눠 먹기도 했다.주민들은 읍면을 방문해 읍면장과 얼굴을 접하고 반갑다고 악수하고 대화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마을에 가서 자랑을 하기도 하였다.필자가 첫 읍면장을 경험한지는 벌써 16년이 지났다. 하지만 지금도 만나는 사람마다 면장이요! 읍장이다. 그리고 서기 때 만난 사람은 지금도 문서기라고 호칭할 때가 제일 정감이 간다.지루한 장마가 계속되고 물가가 오르고 우리군이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이다. 일선 읍면장님들과 전체 공무원들이 환한 얼굴로 한 사람 더 군민들을 만나 격려해주고 희망을 북돋아 줘야 할 때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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