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평교회 김지영 목사제가 살고 있는 집 앞마당에는 두 평 남짓한 텃밭이 있습니다. 농사를 전문적으로 짓는 분들은 웃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저는 손바닥만한 이 텃밭에서 농사짓는 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작물들이 병은 들지 않았는지. 간밤에 바람에 넘어지지는 않았는지. 나도 모르게 살피게 됩니다. 고춧잎이 시들해서 축 처져 있으면 얼른 물을 주고. 아침에 다시 싱싱하게 일어나 있는 모습을 보면. 제 마음도 안심이 되고 행복합니다. 그런데 다른 고랑에는 가지니 상추니 싹이 나고 잘 자라고 있는데 밭 한 고랑은 여전히 그냥 흙으로만 덮여 있습니다. 그 고랑에는 들깨 씨를 심고 이제나저제나 싹이 나올까 기다렸는데. 아직도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씨앗이 아예 발아가 안 된 것 같습니다.가물 때 조리개로 물을 뿌려 주고 기다렸는데. 결국 싹이 돋아나지 않아 섭섭한 마음으로 갈아엎고 다시 다른 작물을 심었습니다. 그러면서 고마운 것은 바로 옆 고랑에서 하루가 다르게 잘 자라고 있는 어린 상추와 가지가 사뭇 대견스럽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신비로움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시장에서 돈을 주고 샀다면. 이런 과정을 모르고 그저 돈으로만 환산하고 상추쌈이 내 입으로 들어갔겠지만. 봄부터 하루하루 심고 자라나는 과정을 보면서. 그 열매를 먹을 때 저는 생명을 먹고 있고. 그 속에 담긴 하늘의 비와 햇빛과 공기를 같이 먹고 있는데서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여 생각합니다. 얼마짜리 집. 얼마짜리 땅. 얼마짜리 옷. 얼마짜리 신발... 그것으로 모든 가치를 상하로 매깁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많은 생명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문득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어리석고 욕심 많은 왕 마이다스가 생각납니다. 어느 날 디오니소스 신이 마이다스에게. 무엇이든 네 소원을 말하면 들어 주겠다고 합니다. 그 때 마이다스는 어리석게도 자기의 손이 닿는 모든 것이 황금이 되게 해달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그저 신기하고 놀랍기만 했습니다. 만지는 모든 것이 금덩어리가 되었으니까요. 나뭇가지도. 돌맹이도 모두가 금덩어리로 변했습니다.그러나 사과를 먹으려고 손을 대자 사과도 금으로 변하고. 음식을 먹으려고 손으로 집어들자 금으로 변합니다. 더 경악할 일은 마이다스가 사랑하는 딸을 안아주자. 사랑하는 딸의 뽀얀 얼굴과 탄력있는 피부는 그만 누런 금덩어리로 변해버리고 맙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황금이 축복이 아니라 재앙과 저주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이제 우리는 모두가 마이다스의 손이 얼마나 끔찍한 공포로 우리를 몰아넣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생명 그 자체인 산에 손을 대서 무한한 황금을 얻으려고 합니다. 강 물길을 막고 손을 대서 고치면 쾌적한 삶과 함께 관광효과로 경제적 이득이 있다고 계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극도의 어리석음이고. 교만입니다.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생명을 주는 우리의 고향을 무자비하게 해치는 폭력입니다. 우리는 지금 내가 얼마나 일상의 은총을 받고 사는 존재인지 깊이 알아야 합니다.지금 제가 사는 집 마당 텃밭에는 가지모종이 자라서 보랏빛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가지를 따서 반찬이 되어 우리 식탁에 놓이겠지요. 생각만 해도 기쁨입니다. 가지줄기에서 황금이 열리지 않고. 가지가 열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은총입니다. 그것을 기뻐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는 것 - 이것이야말로 우리에게 늘 생명을 주시는 그 분과 함께 거닐고. 내 옆에 그분이 존재함을 경험하고 사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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