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앤딩을 꿈꾸며마릴린 몬로의 ‘돌아오지 않는 강’▲전영순 논설위원누구나 좋아하는 영화나 배우가 있을 것이다. 난 유독 마릴린 몬로를 좋아한다. 반 쯤 벌린 듯 유혹하는 두툼한 입술과 몽환적인 눈빛은 사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남성들의 애간장을 녹이고 있다. 유교적 사상이 강한 탓인지 우리나라에서는 백치미로 통하지만 서양의 눈에는 상당히 매력적인 여성으로 자리 잡고 많은 현대예술인들이 새롭게 창조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나는 미국의 팝아트 제왕 앤디워홀이 몬로의 얼굴을 실크스크린 판화로 옮긴 모조품을 가지고 있는데 진품이 아니기에 몬로의 얼굴을 오리고 몸체는 한지로 치마를 만들어 입혀 생뚱맞은 모습으로 만들었다. 미니 액자속에 들어있는 몬로는 나의 소중한 애장품이기도 하다.추억의 영화를 방영하는 채널에서 1954년에 몬로가 찍은 ‘돌아오지 않는 강’을 여유있게 보았다. 골드 러시가 한창인 캐나다 근처가 영화의 배경으로 몬로는 댄스홀 가수 케이로 살인죄로 옥살이를 하고 나온 캘더와 그의 아들 마크가 도박사 웨스턴과 얽히고 설키는 과정을 그린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강이라 이름이 붙은 격류가 심한 강을 뗏목에 의지해 나아가는데 이들은 인디언의 습격이라는 커다란 위험과도 마주해야 한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몬로의 음성으로 듣는 주제곡도 상당히 인상적이고 무엇보다 켈더 부자와 케이가 새로운 미래를 향해 떠나는 해피앤딩이라 고전영화의 공식대로 진행되는 안도감이 충만하다.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를 남긴 개그프로가 있었다. 우리사회의 무한경쟁과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서야만 인정되는 야박함을 표현한 고발형 웃음으로 소수약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 시원함도 있었다. 그러나 고전영화의 공식은 간단하다. 선과 악이 혼동되지 않으며 분명하게 결정이 되고 악행에 해당되는 만큼 결과가 뒤따랐기에 가슴 졸이는 장면이 나와도 마지막엔 다 잘 될 것이라는 편안함이 아슬함을 뛰어 넘었다. 세상살이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연결고리다. 인연을 맺고 부대끼며 살다보면 보이지 않던 허물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며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엔 원수로 돌변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린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크고 작은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영화처럼 선과 악이 결정이 나면 좋지만 도저히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그럴 때 사람들은 막연히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해피앤딩을 기대한다.우리사회의 승자독식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물론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질타할 이유는 없다. 분명 남이 하지 않은 그만큼의 노력을 끊임없이 해왔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오죽하면 TV오락프로그램도 경쟁중심의 구도로 가고 있다. 오페라를. 노래를. 춤을. 연기를 온통 경연중심으로 시청자들의 경쟁심리를 부추기는 서바이벌게임이 주말 황금시간대를 장식하고 있다.사회구조가 경쟁을 유발했다 하지만 내 스스로가 원치 않는 환경에서 경쟁을 부추기지는 않았는지 옛날의 편안한 사고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알게 모르게 지은 죄가 있는가하면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고 후회하거나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타인에게 주지 않았는지 차분히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무한경쟁은 유발되지 않을 것이다.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 주인공 케이와 캘더 부자는 자신들을 위험에 빠뜨린 자를 결국 용서하고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나는데. 용서란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사랑보다 분노가 앞서는 게 인간의 속성이다. 심리학자 딕 티비츠는 <용서의 기술>에서 이렇게 얘기한다.용서란 현재의 평온을 회복하고 미래의 희망과 삶의 목적을 되살리기 위해 과거에 받은 분노와 상처에 새로운 틀을 씌우는 작업이라고 정의를 내렸다.세상은 급변하게 움직인다. 내일 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생각의 틀을 바꾸고 겸손과 공감의 기술을 터득하는 것이 용서로 가는 지름길이라면 용서하지 않고는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경쟁은 여전히 진행되고 당연시되지만 고전영화에서 바라는 해피앤딩이 현실에서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용서라고 말하는 고전영화가 아직도 우리들 마음을 움직이는 걸 보면 모든 일에 해피앤딩을 꿈꾸는 것이 현실도피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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