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체포된 뒤 가족들이 면회 가서 찍은 사진. 좌로부터 생질녀. 막내동생. 남도부. 남동생 은수.구본갑의 지리산 여행기 93편6·25 특집 제2탄빨치산 두령 하준수 삶과 죽음 심층취재함양에 남도부 생가 복원하자!“(아들 하상영씨의 말) 부친은 외세가 우리나라에 침투하는 걸 온 몸으로 항거한 분잉기라. 백분지 일 그렇지가 않았다 해도 동족상잔 현장 복원 차원에서 기념관이 세워져야 마땅합니다. 부친에 관련된 몇 가지 유품을 보관하고 있소. 남부군 시절 지휘봉. 부친의 일본유학 시절 문방구와 빛 바랜 사진…이런 류의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물건을 전시해 놓으몬 안 좋겠소?”삼일여관 며느리. 맏딸 인자두 동생 힘겹게 키웠다“찔레꽃이 한 잎 두 잎 물 위에 날으면 내 고향에 봄은 가고 서리도 찬데 이 바닥에 정든 사람 어디로 가고 전해오던 흙냄새를 잊었단 말인가”# 나이 지긋한 분은 이 노래를 기억하리라. 1950대 유행가 <고향초>. 70년말. 가수 홍민이 이 노래를 리메이크. 뭇사람의 심금을 울렸었다. 홍민은 많고 많은 옛노래 중 하필이면 이 노래를 선택했을까? 가수 홍민에겐 슬픈 가족사가 있었다. 한국동란 전. 부친은 남한 땅에서 공산주의 이론가로 맹활약을 한 바 있다. 그러다 아버지는 종전 후 가족을 남겨두고 북으로 넘어갔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로 근무하다 퇴직. 평강도 외딴 마을에서 별세했다고 한다. 다음은 가수 홍민의 육성고백이다. “어릴 적 빨갱이 자식이라고 많은 놀림을 받았어요. 북에 가신 아버지가 너무 보고파. 휴전선 한탄강으로 달려가 바람결에 아버지에 대한 안부 편지를 써 북쪽하늘로 날려보냈지만 아무런 답장이 없었어요. 무정한 아버지. 보고 싶은 아버지… 이런 가족사 탓인지 제 노래는 죄다 울적하고 암울하고 서글픕니다”가수 홍민 말고도 영화감독 임권택. 소설가 이문열. 빨치산 남부군 두령 남도부(본명:하준수) 자제들도 좌익분자 자식이라 해서 고단한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다. #1954년 10월 14일. 중앙고등군법회의는 피고 남도부에게 사형을 구형했다.남도부는 최후진술을 통해 자신을 인민군 중장으로서 포로로서 대우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군법회의는 이를 묵살했다. 사형 당하기 며칠 전. 남도부는 맏딸 인자를 감방면회실로 불러 마지막 유언을 한다. “인자야… 아버지가 없어도 절대로 기죽고 살아서는 안 된다. 동생(경자. 상영)들을 잘 데리고 살아다오”1955년 8월 어느 날. 민족주의 사상에 입각한 공산주의를 남한땅에 접목시키려 했던 풍운아 남도부는 마침내 총살형에 처해지고 만다. 그 후 맏딸 인자씨는 함양 삼일여관(지금 삼일탕 자리) 며느리로 들어갔다. 시댁 배려로 경자. 상영 두 남매는 사돈집에서 더부살이를 할 수 있었다. 2주전 본지는 상영씨가 서울 경희고등학교 재학 중 청와대에서 맨몸으로 시위. 대통령 딸을 어떻게… 라는 내용을 보도했다. 이 기사를 본 상영씨. “그 보도는 잘못된 것”이라며 당시 비하인드스토리를 차분히 밝혔다.“연좌제에 걸려. 나는 군입대를 할 수 없었다. 입대를 못하면 취업을 할 수 없고 공직에 나설 수 없다. 나는 연좌제를 부당함을 만천하에 알리고자 시위를 했다. 그러나 끝내 나는 입대할 수 없었다. 이런 까닭에 나는 박정희 반대편에 설 수밖에 없었다”연좌제… 범죄인과 특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연대책임을 지게하고 처벌하는 제도를 말한다. 박정희 정권 시절. 많은 사람들이 이. 연좌제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 가묘5공 설계자 허화평(전두환 정권 청와대 보좌관 역임) 경우. 공산주의자 친동생을 둔 탓에 박정희 시절. 여러 번 강제퇴역 당할 처지였는데 보스 전두환이 펼친 구명운동 때문에 군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다.상영씨는 경희대학교 체육과를 졸업한 후. 친지 도움으로 가방 제작업을 했다. 상영씨 고향친구 K(함양 거주)의 말이다.“상영이? 그렇게 서울 생활 하다가 어느 날 고향 함양서 국회의원 출마한다며 낙향 항거라. 내가 극구 말렸지. 니가 아무리 용을 써도 어떻게 권익현(당시 민정당 대표최고위원)같은 거물을 이겨낼 수 있겠노. 참아라(출마하지 마라). 말려도 상영이는 한사코 출마를 강행하대? 저그 아부지 남도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선 정치판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케사몬서! 상영이 (국회의원 출마) 득표수. 함양보다 거창 산청 쪽에서 표가 많이 나왔다 아이가. 아마 거창 산청에 좌익 후손들이 많아서 였을끼라”#상영씨는 현재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서 산다. 기자가 몇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정중히 고사했다. “아버지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역사가 해줘야 될낀데. 아버지를 좌익분자라고 하지말고 민족주의자라고 하소. 그기 맞소. 외세개입을 온 몸으로 막은 분을 함부로 매도하면 쓰겠소?”- 만일 함양군이 남도부 생가복원 및 기념관 건립을 추진한다면 아들로서 어떤 입장입니까.“대환영이지. 부친은 외세가 우리나라에 침투하는 걸 온 몸으로 항거한 분잉기라. 백분지 일 그렇지가 않았다 해도 동족상잔 현장 복원 차원에서 기념관이 세워져야 마땅합니다. 부친에 관련된 몇 가지 유품을 보관하고 있소. 남부군 시절 지휘봉. 부친의 일본유학 시절 문방구와 빛 바랜 사진… 이런 류의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물건을 전시해 놓으몬 안 좋겠소?”<함양문화 제7집> 114. 118 페이지를 보면▲ 제각# 함양군은 남도부 기념관 건립계획에 어떻게 생각하나? 남도부 생가는 병곡면에 있다. 강성갑 병곡면장에게 병곡면에 기념관 세울 계획이 없느냐고 묻자 “생가 복원의 필요성은 직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가가 많이 훼손되어 있어 문화재로 지정하기에는 곤란하므로 일정 보수 후 역사적 배경을 무대로 인물과 건물을 통합하여 문화재로 지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병곡면에 한국동란 관련 테마길을 만든다면 주요 코스는?“병곡면은 지리산 백운산 덕유산을 오고 가며 활동해 온 루트로서 대봉산(구 계관산)과 생태숲과 연계 가능하면 좋은 테마길이 되겠습니다”- 이 길에 볼 만하고 쉴 만한 명승지가 있나요?“마평의 대봉산 생태숲과 자연휴양림. 원산의 산림경영 모델 숲과 심마니 체험장. 그리고 병곡의 명소인 등구정과 여름에도 추울 정도로 시원하다고 해서 붙여진 솔숲 하한정(夏寒亭) 등이 있지요”# 김성진 함양문화원장을 만났다. 원장은 남도부 기념관이 건립되면 함양이 일약 주목받는 목적별 여행 테마 현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빛 바랜 휴천면지<面誌>를 보여주며) “이 책에 함양 공비 전투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네. 금반전투. 송전리 세동전투. 동호전투. 노장대 전투가 어떻게 치러졌는지 현실감 있게 그려놓고 있다네. 이 전투사? 휴천사람 정성화 옹(사망)이 정리한 건데 사료적 가치가 대단하네”휴천면지에 소개된 여러 전투 중 금반 전투가 최대 하이라이트다. 내용은 이렇다.“함양에 있던 법화산에 머물러 있던 수백여명의 빨치산들이 국군 토벌대에 의해 몰살당했다. 여자 빨치산 정순덕은 <전투가 치러진 몇 년 후 법화산에 갔더니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허연 해골이 산무더기처럼 쌓여 가꼬. 막 굴러다니더라>고 회상한다”또. 이 책자에 눈길 끌만한 사진이 여럿 있다. 그 중. 공비 토벌을 비는 경찰국장과 스님 사진이 있다. 훌륭한 영화소재도 있다. 여자통비분자들의 활약상. 공비들 자녀를 위한 고아원이 바로 그것이다. 통비분자(通匪分子) 란 공비와 내통한 사람을 말한다.관심 있는 독자는 함양문화원이 발간한 <함양문화 제7집> 114. 118 페이지를 참조하길. ▲ 김성진 문화원장이제 남도부 르포 마무리를 해야겠다. # 최근 들어 남도부에 관해 재조명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강정구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도부를 가리켜 “반공과 냉전 때문에 희생된 자로써 특히 미국외세를 온몸으로 거부한 민족주의자였다”고 말했다. 소설가 이호철 선생은 “우리 현대사 속에서 60여년 전 꽃다운 나이로 숨져간 남도부 같은 유격대원들이 우리 역사의 제자리에 자리 잡혀야 한다. 아직은 제대로 그때가 아닐는지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렇게 (제 자리를 찾아야 하고) 되어야 하고 반드시 그렇게 될 날이 와야 할 것이다"▲ 강성갑 병곡면장Q는 익명을 요구하며 하준수를 이렇게 평한다. “그는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 보다 더 불꽃같은 혁명가 삶을 살다간 걸물이다. 이제 그의 삶을 재평가할 때가 되지 않았나?”함양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남도부 재조명 운동이 일고 있다. 이 운동이 단초가 되어 함양이 분단문학의 메카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아울러. 소설 <태백산맥> 기념관이 전남 보성군 벌교에 세워 졌듯이. 함양 병곡면에도 남도부 하준수 기념관이 설립되어 함양레저분야에 신기원이 일어났으면 한다.사족=보성군 벌교면에 소설 <태백산맥 기념관>이 건립된다는 소식에 보성 사람 꺼멍이는 친구들에게 사발통문을 돌렸다.“기념관이 곧 착공하게 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2005. 3. 29일자 경향신문에서 보면서 벌교가 머지않아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자리 잡아 날로 피폐해 가는 고향이 활기 넘치는 곳으로 변모할 날이 멀지 않겠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네! 아무쪼록 빠른 시일 내 태백산맥 기념관이 차질 없이 완공되어. 매일매일 우리 벌교가 수많은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면 하는 꿈을 한번 꾸어 본다네!구본갑|본지칼럼니스트busan70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