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복주 시인의 안녕하세요 함양 18편H부인의 아름다운 中年(중년)안녕하세요 함양.내가 알고 있는 H부부는 함양에 살고 있는 결혼 7년차의 신세대 부부다. 신혼의 꿀맛은 맹물로 변해 가고 있었고 중년이라고 하기엔 너무 억울한 젊은 세대가 조금씩 뒤로 밀려가고 있는 시점에 서 있었다. 100점 만점에 120점이라고 평하는 1남1녀을 두었다. 그들에게도 연애의 시절이 있었고 신혼의 시절이 있었고 자녀를 탄생시켜 황홀한 기쁨을 맛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다. 인생기차가 정상적 궤도를 이탈해 달리기 시작한 것은 자녀가 태어나면서부터였다. 사실은 생활 난제의 첫 번째가 경제문제였는데 자녀문제가 대두되면서 후순위로 밀려났다. 그들은 결혼 전 나름대로 각각의 직장을 다니다 결혼을 했고 얼마간은 맞벌이를 했다. 보통의 소시민이 걸어가는 길이듯 그들도 젊었을 때 빨리 돈을 벌어 작은 집 한 채라도 마련해야 했고 약간의 부채도 갚아야 했고 적금도 부어야 했다. 그래서 첫딸을 날 때까지는 어찌어찌 버티며 생활을 해 나갔는데 덜컥 둘째 아이가 생긴 것이다. 계획출산이라던가 한 명만 잘 낳아 잘 키우자는 생각은 둘째 아이가 생기면서 허사가 되었다. 직장을 다니며 두 살 터울의 두 명의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급기야 오랜 숙고 끝에 여자로서는 괜찮다는 직장을 버려야했던 것은 오래도록 가슴에 상처로 미련을 남겼다. 처녀 때부터 자부심으로 가졌던 직장을 버린다는 것은 마치 젊음의 꿈을 버려야 하는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직장보다는 자식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직장을 버린 것까지는 그렇다 해도 두 명의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그야말로 투쟁이었다. 할 수 없이 친정어머니에게 손을 내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칠순 어머니의 조건은 딸의 집에 살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나도 나의 생활과 자유가 있어야 하니 꼭 필요할 때만 잠시잠깐 와 돌보아 주마’였다. 한 사람의 수입이 줄어들어 절반의 경제가 되고 두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고 어머니에게 갖은 뇌물공세로 비위를 맞춰야 하니 경제는 거덜났다. 그러니 자연 커다란 적금통장이 하나 깨져 나갔다. 기둥 하나가 잘려져 나간 것이다. 그러면 자립 단독주택은 저만치 한발 물러났다. 어쩌겠는가.결혼을 하면 그림 같은 집을 짓는다. 아침 남편이 출근을 하면 홈 클래식 음악을 틀어 놓는다. 피아노나 바이올린 아니면 저음의 첼로 소리를 틀어 놓고 들으며 슬슬 집안 청소를 한다. 그것이 끝나면 베란다에 앉아 핸드메이커로 커피를 간다. 은은한 아라비카 커피향으로 집안 가득 채워 놓고 에스프레소나 카푸치노 커피 맛을 음미하며 거리를 내려다본다. 베란다에 꾸며 놓은 작은 정원에 아름다운 꽃들에게 물을 준다. 세탁기를 돌려놓는다. 빨래를 널어놓고 평소 읽고 싶었던 좋아하는 책들을 읽는다. 저녁이면 자신 있는 갈치조림을 해놓고 퇴근한 남편과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는다. 그 날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주고받으며 웃고 웃으며 행복한 이야기를 나눈다. 소파에 기대어 같이 주말 연속극을 보고 괜찮다면 와인 한잔 마시고 춤도 추어 본다. 주말이면 호젓한 해변가나 아무도 없는 섬으로 여행을 가자고 남편을 꼬드겨 여행을 떠난다. 얼마나 황홀한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인가! 인생은 확실히 살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 그러나 H부인이여. 꿈에서 깨어나시라! H부인은 아침6시에 일어나 전기밥솥에 스위치를 넣고 국을 끓인다. 반찬은 어제 친정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것에 인스턴트 참치 캔을 더해 식탁에 차려 놓는다. 아이를 깨워 세수를 시키고 옷과 준비물을 챙겨주고 남편과 함께 밥을 먹인다. 작은 아이가 깨어나기 전에 5살 먹은 큰딸을 차에 태워 놀이방에 데려다 주고 온다. 이 아이에 대하여는 저녁 5시까지는 안심할 수 있다. 남은 3살짜리 작은 아들을 깨워 다시 밥을 먹이고 차에 태워 친정 엄마 집에 데려다 주거나 친정 엄마가 올 때까지 세탁을 한다. 청소를 서둘러 대충 해놓고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선다. 일주일에 두 번은 미래를 위하여 주민자치센터에서 하는 컴퓨터반에서 공부를 하고 점심때부터는 사설 학원 강사로 저녁5시까지 초등학생을 가르친다.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5시간에 월 80만원을 받으니 지금의 현실로는 황금직장이다. 목을 맬 수밖에 없다. 그래야 아이의 예쁜 옷이라도 한 벌 사 입히고 생활비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할 수 있다. 저녁 때 놀이방에서 딸을 어머니 집에 들려 둘째를 데려 함께 집에 온다. 저녁 준비를 하여 밥을 먹이고 첫째 애의 하루일과를 점검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을 차근차근 보충 해준다. 설상가상으로 건설회사 근무를 하던 남편이 타지방으로 발령이 나 주말에만 오는 기러기 생활이 되면서 H부인의 전투생활은 전쟁에 가까운 절정에 달한다. 내일이면 남편이 오는 날이다. 그래서 금요일 날은 더 바쁘다. 집안 대청소를 해 놓고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반찬에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 한 가지라도 더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일주일 내내 기숙사 직장 밥 아니면 식당에서 사 먹는 남편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남편은 남편대로 가장이란 이름으로 고생이다. “당신이 끓인 갈치조림은 정말 최고야. 이 시래기 된장국을 먹으니까 속이 확 풀리네” 괜히 미안해진다. 아이들이 아빠의 어깨와 팔과 몸에 매달려 떨어질 줄 모르고 함께 이불 위에서 짓뭉개고 있다. 언제 이 흔들리는 생활의 터널을 벗어날 것인가. 이만한 일이 다 애를 키우는 엄마면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그래야 견딜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애가 아플 때이다. 낮이고 한밤중이고 예고도 없이 갑자기 아이가 38도 39도가 되어 벌겋게 달아오른다. 식식거리고 기침을 끊임없이 해대고 코가 헐도록 콧물을 질질 흘리고 울다가 지쳐 끙끙댈 적엔 아이가 어찌되는 건 아닌가 덜컥 겁이 나고 안절부절못하는 것이다. “어쩌나... 어찌하면 좋으나... 나 혼자 이 한밤중에...” 밤1시 넘어 어머니를 부르고 남편에게 전화하고 제일 친한 친구에게 와 달라고 사정하고 119에 전화하고 응급실에 달려가고 링거를 맞추고 하다 보면 하얀 새벽이 오고 파김치가 되어 집에 오면 목을 놓고 엉엉 운다. “엄마... 엄마... 여보... 여보...” 엄마가 엄마를 부른다. 여보가 여보를 부른다.“하나님. 차라리 내가 아프게 해주세요. 제발 내가 대신 아프게 해주세요."그래. 삶이란 투쟁이 아니라 전투다. 보이지 않는 삶과의 전쟁이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삶의 전선에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책임을 지고 살지 않으면 안되는 독립투사다.두 명의 아이가 같이 다 아플 때도 있다. 직장 학원 강사를 빠지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염치가 없다. 원장이 친척이고 마음이 좋아서이지 벌써 잘렸을 것이다. 세월이 빨리 간 것인지 아이들이 빨리 큰 것인지 첫째 딸은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고 둘째 아들은 유치원 유아반에 다닌다. 첫째는 나를 닮아서인지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 듣는다. 둘째는 아빠를 닮아서인지 남자아이인데도 나긋나긋 여자의 성품이 많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참 많이 변해있는 것은 세상이 아니고 아이가 아니고 변해있는 것은 H부인 자신이었다. 그녀는 완전히 달라져버린 또 다른 타자의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니 놀란다. 처녀. 신혼부부라고만 생각하고 살고 있었는데 이젠 처녀가 아니었다. 신혼부부가 아니었다. 30 중반의 고갯길을 넘어가고 있었다. 길이 아니면 가지 않고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시덥잖은 일은 거들 떠 보지 않고 팅팅 튀기며 부모마저도 혀를 내두르게 하던 자신이었다. “누가 저년을 데리고 가 살아 줄고?” 새파랗게 일상을 맞서던 청춘의 푸른 색감이 벗겨져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젠 웬만한 생활사에 놀라지 않는다.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야. 식당에서 구역질나는 담배를 피고 있는 사내가 있으면 남자 근처에 가지도 않던 그녀가 ‘아이가 있으니 담뱃불 좀 꺼주시면 고맙겠습니다.’한다. 공공장소에서 부당한 대우나 새치기를 받으면 ‘이건 경우가 좀 다른 것 같아요.’한다. 남편과도 티격태격 말다툼에 이불 뒤집어쓰고 말도 않고 자던 그녀가 이제는 그녀가 먼저 아양을 떤다. 좋은 게 좋은 것이다. 나이 35세가 되어 뒤돌아보니 인생이 왠지 좀 억울한 것 같다. 이대로 청춘을 보낸다는 것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 둘의 엄마. 조금 여유가 생겼는지 자주 자신을 뒤돌아본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내 인생을 위해서 나 자신을 위해서 조금은 무엇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직 바쁘지만 컴퓨터를 배우기 위해 등록했고 여성바둑반에도 한번씩 가고 그로신키호테(인문학교양강좌반☎010-9425-3009)도 나간다. 아이들이 조금만 더 커준다면 아이들을 양손에 잡고 같이 과학교실도 가보고 나로우주센타도 가보고 독도도 가보리라. 같이 기차 타고 들녘을 달려보고 바둑도 같이 두어보리라. 그 동안 못했다고 생각하던 것들을 아이들과 함께 해보리라. 이제 생각해보니 그 꿈과 기쁨이 오히려 두 배 세 배가 될 것 같다. 그러면 그렇지. 억울한 일이 아니었구나! H부인이여! 아이를 키우느라고 남편과 함께 돈을 벌기 위해 힘들게 보냈던 지난날을 덧없는 날이었다고 후회하지 말라. 당신이 보냈던 안타까운 시간과 젊음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 어느 것보다도 가치가 있었다. 생명을 낳고 키운다는 것은 지상의 가장 아름다운 행위이다. 생명을 잉태하고 새끼를 키우는 것보다 더 훌륭한 일은 지상에 없다. 그 위대한 과업을 당신은 어머니의 이름으로 실천해 왔다. 그러므로 힘들고 안타까웠던 날들은 당신이 한국의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어머니와 아내가 되는 시간들이었다. 아름다운 중년이 시작하는 날들이었다. 한국의 아름다운 H부인들이여! 중년(中年)의 의미를 깨달으라. 중년이 되었을 때 당신은 비로소 아름다운 여자가 된다. 아름다운 아내가 된다. 아름다운 아이의 어머니가 된다. 인생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당신이야말로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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