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복주 시인의 안녕하세요 함양 - 17편함양에 영화관이 있다면 좋겠다 내게 감명 깊었던 영화가 무어냐고 물어 본다면 <시네마 천국>이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감명 받았던 영화가 어디 한 편 두 편에 그치랴. 내가 제주도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있었을 때 나를 따르던 여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공부도 잘했지만 이성도 감성도 풍부하여 많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세상에 의문이 드는 것을 모조리 질문 해왔다. 예를 들면 “왜 세상은 슬퍼요?” “세상 저 끝엔 무엇이 있나요?” “꼭 대학을 가야 하나요? 나는 계약 결혼을 할 거예요.” 그때마다 나는 책 속에 길이 있음을 말했고 꿈을 가져야 이루어진다고 그리고 저 넓은 세상을 가기 위해서는 날개가 필요한데 그것이 언어라고 말했었다. 그녀는 제주도를 떠났고 서강대학교를 나오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나왔다. 영어 전공을 살려 「뜯어먹는 영어」 「씹어먹는 영어」 라는 시리즈 수능 참고서를 발간하여 초중고 학생들에게 영어의 왕도를 가르쳐 주는 베스트셀러의 저자가 되었다. 그녀는 젊은 나이에 일찍이 책이 된 것이다. 그때 고등학교 선생과 그 여학생이 서귀포 극장에서 영화 한편 본 적 있다.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천국>이었다. 세월이 지나 생각해 보니 그녀는 영화의 주인공 토토처럼 자신의 꿈을 찾아 대도시로 갔고 그 꿈을 이룬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암울한 시대. 이탈리아의 작은 시골마을 사람들의 유일한 낙은 하나밖에 없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배우의 연기에 따라 마치 그 주인공처럼 기쁨과 슬픔에 울고 웃었다. 어느 감정 많은 아저씨는 눈물을 흘리며 아예 다음 장면의 슬픈 대사를 미리 줄줄 외며 그대로 흉내내어 관중의 흥미를 더했다. 어린 초등학생의 토토와 늙은 알프레도와의 평생에 걸친 사랑과 우정이 이 영화의 주제다. 잠시 줄거리를 살펴보자.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영화 속에서 꿈을 키웠던 토토의 회상으로 전개된다. 로마에서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토토는 스승 알프레도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30년 만에 고향을 찾는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영화를 매우 좋아하는 소년 토토는 학교수업이 끝나면 영화를 볼 욕심에 성당으로 달려가 신부님을 돕는다. 영화를 가장 먼저 시사하는 신부님은 키스 장면이 나올 때마다 종을 흔들어 삭제시킨다.토토는 마을 광장에 있는 '시네마천국'이라는 낡은 극장에서 영사실 기사로 일하는 알프레도와 친구처럼 지내며 어깨 너머로 영사기술을 배운다. 어느 날 극장에 불이나 알프레도가 실명하자 토토가 대신 영사기사로 일하고. 알프레도는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토토에게 정신적 스승이 된다.청년으로 성장한 토토(마르코 레오나디 분)는 마을의 엘레나(아그네스 나노 분)를 사랑하지만 엘레나 부모님의 반대로 헤어지게 되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서 더 많은 것을 배우라는 알프레도의 권유로 고향을 떠나 로마에서 유명한 영화감독이 된다. 알프레도의 장례식에 참석한 후 토토는 이제는 중년이 된 엘레나와 재회하여 지난날을 이야기한다. 3류 극장으로 전락한 '시네마천국'은 도시개발로 철거된다.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 한 상자를 가지고 돌아온 토토는 자신의 극장에서 지난 날 신부에 의해 커트된 영화 속 키스 장면들을 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1989년 칸영화제 심사위원특별대상. 일본비평가협회 선정 세계영화음악 베스트. 1990년 골든글러브 최우수 외국영화작품상.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영화작품상. 세자르영화제 외국영화상 수상 등 발표 당시 대부분의 국제영화상을 휩쓸었다. 내가 함양에 살면서 가장 갑갑해 하는 것 중에 하나는 함양엔 영화관이 없다는 것이다. 21세기 현대에 살면서 영화관이 없는 마을에서 산다는 것은 큰 불행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TV나 컴퓨터에서 보면 된다고 말 할 사람도 있다. TV가 있는데 영화관이 왜 필요하냐는 식이다. 하지만 그건 문화가 아니다. 대도시에 왜 영화관이 더 많이 있을까. 영화산업이 더 많이 번창할까. 영화는 예술이며 문화다. 그만한 분위기 속에서 추억과 낭만과 함께 영화를 즐겨야 예술이 되고 문화가 된다. “오빠 영화 보러 갈까?” “그래. 오늘 비가 오니까 ‘비오는 날의 수채화’ 어때?” 우산 쓰고 비오는 거리를 걸어 영화관 앞에 선다. 남학생이 표 두 장을 두근거리며 사고 손을 잡고 극장에 들어선다. 이번 주 부모님으로부터 탄 용돈의 부피를 생각하며 팝콘과 콜라 한 병도 사서 여학생에게 준다. 실내 불이 꺼지고 마침내 둘 만의 세상이 펼쳐진다. 둘이서 이 세상 끝까지 달려가고 있었다. 얼마나 멋진가? 함양에서는 바로 이런 토토와 같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가질 수 없다. 함양의 청소년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영화에 관한 한 자녀나 아내와 아무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 왜냐면 어떤 추억도 사건도 사랑도 가진 게 없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들에게 함양에 제일 먼저 극장이 생겨야 한다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그랬더니 채산성이 없어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한다. 인구 4만의 고장에서 누가 영화관을 세우고 세웠다 해도 7∼8천원의 돈을 내며 구경하러 오겠느냐 한다.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생각이라고 말한다. 백번 맞는 말씀이다. 그러면 할 수 없다. 영원히 영화를 보지말고 살면 되겠다. 영화관 하나 없다고 무엇이 그렇게 달라지겠는가. 영화를 못 본다고 설사 문화병이 생겨 병원 가는 일이 생기겠는가? 그러나 나는 그게 아니다 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나는 옛날에 소주 한잔 걸치며 아내에게 말했었다. “여보. 우리 뒷산 숲 있잖아. 그곳에 스크린을 세우고 작은 영사기 돌려 매일 밤 8시쯤에 영화 1편씩 감상하도록 하면 어떨까? 마을 사람들이 보러 오기도 하고 읍내에서 산책 삼아 와서 영화 보며 차 한 잔 마시고 가고 “산골 숲속 영화 카페” 멋있지 않아? 공기 좋고 깊은 산골 숲 속에서 영화를 본다. 그거 전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대 히트작이지” “하여간 당신의 엉뚱함이란 말릴 수가 없어요. 누가 이 산골까지 와요?”그런가? 다 내 생각 같지가 않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것 같다. 아니면 때려 치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도 못하나? 상상해보자. 여름이다. 자연생태학습 여름캠프를 산골 우리 집에서 또는 상림에서 1박2일 실시한다. 50여명의 초중학생들이 숲속생활을 하며 자연을 익힌다. 저녁때 마침내 생각했던 것을 실천에 옮겨 산골 숲속에서 영사기를 돌린다. 노사카 아키유키 원작의 「반딧불의 묘」. 산골 숲속에 스크린을 세우고 야외에서 캄캄한 여름날 밤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잔디에 앉아 영화를 보는 어린이들. 그야말로 그 기분은 상쾌하고 즐겁기 한이 없다. 영화 장면에 따라 아이들은 함성을 지르기도 하고 웃음을 통쾌히 질러대기도 하고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함성이 골짜기를 타고 메아리친다. 이 얼마나 생생하고 멋진 영화 관람인가. 10년 20년 후 영화 이야기가 나오면 아이들은 자신 있게 말하리라. 이곳 산속에서 보았던 누구도 맛보지 못했던 한 여름밤의 영화의 추억을- 영화관에 관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말할까 한다. 인사동 들어가는 길에 있는 낙원상가가 있다. 낙원상가 4층에 있는 헐리우드 클래식 극장. 헐리우드 극장 하면 옛날 어른들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우리나라 초기의 영화관. 영화의 1번지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은 딸은 마침내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오던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이 영화관 내에 실버 영화관을 개설하여 노인을 위한 영화관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극장 안에는 추억 더하기라는 옛날 다방도 있다. - 55세 이상의 어르신들은 365일 2000원에 영화를 보실 수 있는 영화관입니다. 단돈 2000원에 그것도 서울 번화가에서 영화를 매일 볼 수 있다니 어찌된 일인가? MBC라디오 ‘세상사는 이야기’ 오늘의 이 사람에서 사장인 그녀의 말을 우연히 나는 들을 수 있었다. “서울의 노인들은 돈도 없고 갈 곳도 없고 아주 외로워요. 매일 거리에 쪼그려 앉아 하루 종일 지나가는 사람들만 쳐다보아요. 그 분들을 보며 편히 쉴만한 곳은 없는가? 노인들이 즐겁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자신의 영화관을 노인들의 쉼터로 제공하기로 했다. 단돈 2000원에 옛날 영화를 마음껏 보고 싼값으로 식사도 하고 얼마든지 쉴 수도 있다. 누적되어 가는 이 재정 적자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뜻있는 곳에 길이 있다. 좋은 뜻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자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왔다. 매달 후원자가 나타나고 영화배우들이 도와주고 영화감독들이 도와주고 서울시에서 도와주어 지금 낙원상가 영화관은 말 그대로 노인들의 낙원이 되었다. 누구도 감히 할 수 없는 정말 훌륭한 일을 한 것이다. 함양도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영화관 하나 세우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1관은 청소년을 위한 영화관. 2관은 성인을 위한 영화관. 3관은 어르신들을 위한 영화관을 만들면 거창 산청 인월에서도 차 타고 오지 않을까? 3000원 받으면 비싼가? 서울처럼 2000원해야 하나? 아예 무료로 할까? 그 재정적자는 어떡하지? 후원자를 찾고 뜻 있은 독지가를 찾고 군도 부담하고 어찌어찌 잘 생각하여 영화 1편쯤 볼 수 있는 영화관이 있는 함양이 되면 참 좋겠다. 자라나는 청소년을 위해. 문화향수를 누리고 싶은 중년을 위해. 행복을 추억하고픈 노인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