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복주 논설위원어느 언론보도를 보니 요즘 많은 초중등학생들이 현충일이 무슨 날인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저 학교 안가는 날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충일이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애국 선열들에게 고마움과 감사를 바치는 숭고한 날이라는 것을 모른다. 현충일 오전10시 전국적으로 사이렌이 1분간 울린다. 이때 전 국민은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호국영령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감사의 묵념을 드린다. 그런데 사이렌이 울려 봤자다. 한 TV에서 현충일 사이렌이 울리는 그 시간의 도시 광경을 카메라에 담아 보도했는데 그야말로 현충일은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는 날이었다. 누구하나 서서 묵념하는 사람도 없고 운행을 중지한 차량도 없고 버스를 타러 달려나가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호국영령들이 한국의 지상을 내려다보면 하늘나라에서도 통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이런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내 젊은 목숨을 초개같이 버렸단 말인가. 실제로 함양에서도 그 날 집에 태극기를 달아 현충일을 기린 집은 손가락 몇 개로 센다. 연평도 천안함 사태 이후로 우리나라는 북한과 냉전을 해오고 있다. 금강산 관광교류도 끊기고 식량지원도 끊기고 6자회담도 멈췄다. 얼마 전 북한은 또다시 일방적으로 군 통신전화도 끊었다. 진실 게임의 사정이나 시시비비를 차치해 놓고라도 북한은 참 이해하기 힘들다. 정부간 외교로 오고간 정상회담에 관한 예비접촉을 놓고 비밀리 오고간 이야기를 녹음해 두었다가 만방에 공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국가간에 비밀리 오고 간 이야기를 공개하겠다고 하니 이는 세계 정치 외교사에 찾아볼 수 없는 사례다. 이처럼 국가간에 이루어지는 사항이 하루아침의 기분에 따라 발표된다면 무엇을 믿고 서로의 약속으로 통일을 이루자고 정상회담을 할 수 있겠는가. 통일은 신뢰와 믿음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루어 낼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전쟁과 평화. 이제 한민족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통일을 실천할 때이다. 이 평화를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슬처럼 목숨을 던졌다. 이만우. 이천우 국군 형제가 이 날 죽어서 60년 만에 한 자리에 만나 현충묘지에 나란히 묻혔다. 19세 어린 나이로 6·25전쟁에 형을 뒤따라 입대한 뒤 전사하여 당시 전투현장에 묻혀있던 국군 용사가 60년이 지나 형 곁에 돌아와 나란히 안장되었다. 이런 수호천사에 의해서 이 나라가 꿋꿋이 서 온 것이다. 함양의 호국열사에는 백용성 선생이 있다. 일본제국에 맞서 3.1운동 33인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민족 독립에 앞장서다 돌아가신 분. 또 의병항전의 영웅으로서 전설같은 문태서 의병장이 있다. 어찌 그뿐이랴. 함양 현충탑에 새겨진 수많은 무명용사들. 이등병 목숨 바쳐 고향 찾은 이름 없는 호국영령들. 애국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애국은 마음에 있고 작은 것에 있고 실천에 있다. 고마움과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쉽게 부모도 버린다. 쉽게 나라도 버린다. 그러므로 현충일이 무슨 날인지 조차 모르는 어린이들에게 청소년에게 학교는 시험부터 가르칠 것이 아니라 나라를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이다. 먼저 부모를 가르쳐야 할 것이다. 작은 도덕을 가르치고 작은 예의를 가르치고 작은 공중도덕을 가르쳐 서로 살아가는 존중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나라를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도 먼저 작은 질서를 보여 주어야 한다. 작은 사랑을 작은 약속을 지켜 보여 주어야 한다. 부정한 정치가나 행정가는 작은 부정부패부터 버리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애국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가까운 내 마음 속에 있다. 작은 사랑이 큰사랑이 된다. 호국선열 호국영령님께 감사하는 현충일과 6·25가 되어야 한다. 애국은 말이 아니다. 작은 실천이다. 북한에게도 사랑을 보내고 북한도 우리에게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보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