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벼랑 속으로 열린 別天地에 들다신록(新綠)의 푸르름이 날로 짙어 가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고 그 묘미를 만끽하는 한편 서로간의 우의(友誼)를 다지기 위한 2박3일의 등반 팀이 20여명의 대원들로 구성되어 지난 5월 26일부터 28일까지 설악산으로의 특별한 등반 산행이 시작되었다. 본디 네파(NEPA) 김형섭 사장의 제안에 따라 임원 워크숍으로 기획된 산행이지만 설악산 산악구조대장. 북한산 산악구조대장. 구조대 요원. 탤런트 박신양씨. 김용기 등산학교 교장. 이혜연 교무. 필자 등 동행한 다양한 계층의 등반가들이 동참함으로써 자연스레 합동산행이 되었다.첫 밤을 보내고 난 이튿날 즉 27일 오전 9시경 일행은 가랑비가 소리 없이 옷을 적시는 가운데 당초의 예정지를 변경하여 울산바위 릿지로 코스를 잡고 자일과 암벽등반 장비. 비박에 필요한 침낭 비박섹 등의 다양한 장비들을 담은 커다란 배낭을 지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옛말 그대로 한걸음. 한걸음 웅장한 울산바위 군(群)을 향해 발길을 옮겨 첫 번째 매점을 지나고 두 번째 매점에서 잠시 쉰 다음 울산바위군의 중심부인 철계단을 힘겹게 올라 종착지에 도착하였다.릿지 등반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동서로 뻗은 바위능선 중간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안전벨트. 하강기 .미니트렉션. 등강기 등의 암벽등반 장비들을 착용한 다음 팀별로 조를 짜서 첩석(疊石). 칼바위능선. 침봉(針峰) 등 각양각색의 기이한 모양으로 이뤄진 ‘바위 길’로의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하였다. 물론 ‘바위 길’은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일상적 안목으로 볼 경우 전혀 찾을 수도. 갈 수도 없는 그런 길이다. 소위 암벽등반에 도(道)가 통한 사람들의 눈에만 잡히는 길이어서 선등자(先登者) 들이 먼저 등반하여 줄을 깔아주면 그 줄을 이용해 등강기. 미니트렉션 등의 장비를 활용해 스스로의 안전을 확보하면서 정신을 집중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대체로 암벽등반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의 경우 “와! 저런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어떻게 오른단 말인가”라는 탄성을 지르게 마련이고 두려움 속에 후들거리는 다리를 조심스레 옮기며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온 몸에 힘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이마에는 어느덧 생땀이 흐르고 점점 더 어려워 보이는 코스로 접어들 때마다 탄식과 비명소리는 각양각색으로 터져 나온다. 천만다행으로 모든 암봉 들이 모두 10여 미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은 안개 속에 휩싸여 발밑으로 보이는 천길 벼랑 끝에 발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산행을 이어갔다. 앞 팀이 등반할 때 순서를 기다리던 모 회사의 임원은 “우리 임원들이 무슨 죄가 그리 크다고 평일에는 업무로 조지고 토 일요일에는 암벽등반으로 조지나?”라는 푸념조의 이야기를 던져 곁에 있던 이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였다.오후 4시를 넘기며 등반 행렬이 워낙 길어서 앞 팀들은 하산을 준비하고 천 길 벼랑들을 하강기를 이용해 한 사람씩. 한 구간씩 하강시켜 해가 서산에 기울 무렵 계조암 밑 매점에 당도하였다. 행동식으로 틈틈이 때운 점심 탓에 저녁식사를 맛나게 하고 각자 가져온 곡차들을 나누어먹으며 산행소감들을 이야기하고는 이튿날 산행을 위해 일부 젊은이들만 술자리에 남고 각자 흩어져 텐트와 비박섹을 설치하여 잠자리에 들었다. 김형섭 사장 일행과 김용기 교장 팀. 그리고 필자는 매장에서 20여 미터 떨어진 곳. 바위들이 삥 둘러선 자리에 텐트와 비박섹을 설치한 뒤 각자 하늘을 보고 누워 곁에서 흐르는 계곡물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했다. 이튿날 아침 7시쯤 잠에서 깬 뒤 김용기 교장을 따라 계곡 건너편의 한 산봉우리에 올라 구름이 해일(海溢) 밀려오듯 산 고개를 넘는 장관(壯觀)들을 카메라에 담고 내려와 잔치국수로 아침을 해결한 뒤 산행을 시작하였다. 파아란 하늘이 마치 지상으로 내려온 듯한 아름다운 설악동을 지나 청운장 휴게소 건너편으로 난 계곡을 따라 경사가 심한 물길을 오르고 비탈길을 지나 봉화대 뒤편에 당도하여 또다시 암벽을 오르기 시작한다. 올려다보니 현기증이 날정도의 벼랑이 약 3백여 미터 이어진다.일행들 중 상당수는 이미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지칠 대로 지쳤는데 다시 절벽을 오른다 생각하니 “완전히 사람 잡는구먼”이라는 표정들이 역력하다. 그러나 어쩌랴! 돌아간다는 것은 더욱 끔찍한 일이고 죽으나 사나 앞으로 가야만 할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무거운 발길을 옮겨 다시 암벽을 오르기 시작한다. 중간쯤 올라서 사방을 둘러보니 “천하에 이런 절경(絶景)이 또 있겠는가!”라는 감탄사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온다. 한 사람은 이런 데를 와보지 못했으니 골프장 잔디밭에 서서 ‘와 경치가 끝내주네’ 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웃음을 짓는다.그렇다. 이런 절경은 이러한 등반을 통해 이곳에 오지 않을 경우 절대로 만나지 못할 절경이요. 또한 설악산 속의 또 하나의 별천지임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지만 온 힘을 다해 간절한 염원을 담아 마음의 눈으로 찾을 경우 우리는 비록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라 해도 그 너머에 있는 별천지로의 특별한 여행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깨달은 산행으로 기억될 듯싶다.해발 850미터의 봉화대 정상에 오르니 한 외국인 여성이 포즈를 잡아달라며 나의 사진을 찍었고 잠시 숨을 고른 뒤 장비들을 벗은 다음 하산 길에 올라 권금성 케이블카를 타고 설악동 출발점으로 회귀하였다. <김윤세/본지 발행인. 전주대학교 대체의학대학 객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