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영순 논설위원계절의 여왕 5월 상림 숲은 하루가 다르게 싱그럽다. 느낌 없이 숲에 들어섰다가도 이팝나무 꽃이 흩날려 머리 위에라도 떨어지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산책을 하다 백 년이 넘은 나무 밑둥 사이로 무섭게 올라오는 풀을 바라보며 이름이 뭘까를 고민하고 있는데. 할머니 두 분이 한참을 뭐라고 하는데 영 알아 듣기가 어렵다. “지섬이 항거석 푸지니 호메이를 가꼬와 꼴까 내야 되겠다” 하신다. 정확히는 몰라도 풀이 많으니 뽑아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지만 지섬이 풀을 뜻하는지는 의문이었다. 나중 알아보니 함양사투리 중에 지섬은 풀을 나타내고. 항거석은 많이를 말하고. 호메이는 호미를 뜻하는 것이었다.관광안내를 하면서 외부인을 대할 때 가끔씩 언어의 소통이 잠간씩 끊기는 경우가 있다. 함양이 고향이 아닌 나로서는 억양의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구지방의 독톡한 문장끝이 올라가거나 호들갑스럽게 들리는 높낮이 때문에 부산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아 차분함을 갖추려 애쓴 경우도 있었다. 함양이 고향인 관광해설사 한 분은 참으로 구수하고 다정한 어휘력을 갖고 있다. 같은 설명을 하면서도 함양에서 사용하는 단어를 섞어하는 지역설명은 정겨움을 선사해 함양사투리를 배우고 싶은 맘이 생길 정도다. 따라하는 함양사투리 무다이-아무 이유없이는 내가 자주하는 말로 어떤 상황을 순조롭게 넘겨준 위트있는 단어로 내 몸에 체득이 되었다.조선어학회가 1933년 제정한 표준어 규정을 보면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 고 되어 있다. 1988년 개정안 역시 ‘표준어는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 고 해서 변함없이 서울말을 표준말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시대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표준어 규정을 처음 만들 당시의 서울 인구는 20만 명에 불과했지만 지금 인구 1000만 명의 서울은 많은 지방 사람이 상주하고 왕래를 하면서 생활 속에 사투리가 자연스레 융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경상도 사투리는 무뚝뚝하고 전라도 사투리는 구수하고 살갑다. 말꼬리를 살짝 감아 올리는 강원도 사투리는 감칠맛이 있다. 또한 충청도 사투리는 정감이 묻어 난다. 함양사투리는 일상에서 변형된 어휘가 상당히 많다. 그래서인지 뜻은 정확히는 모르지만 말하는 분위기나 상황에서 대부분 의미를 알아낼 수 있다. 고향인 함양을 떠나 생활하면서도 동창회나 향우회에 모이면 스스럼없이 함양 사투리를 구사하는 걸 보면 동질성과 친근감이 묻어난다.사투리를 소재로 한 TV오락프로가 인기를 끄는 것도 동질성에 따른 공감의 폭이 넓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대중문화 속의 사투리는 문화적 다양성 확보라는 긍정적인 요인도 있지만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다. 특정지역 사투리를 조폭의 전유물로 각인시켜 거부반응을 불러 일으키고. 시대물을 다루는 드라마에서 양가집 규수는 반드시 표준어를 쓰고 하인들은 사투리를 구사하게 해 신분차별까지 드러내는 사투리의 잘못된 사용이 굳어지는 것은 정말위험천만하다.함양문화원에서 펴 낸 <함양문화총람>에 보면 사투리 부분만 모아 우리 지방의 방언이라 하여 사투리와 표준어를 예시해 놓고 있다.표준어와 비슷한 발음으로 연결되는 함양사투리가 많으나 그 중에는 전혀 다른 말로 표현되는 것도 있다. 반주깨미-소꿉장난. 서답-빨래. 쌔기쇄기-부지런히. 지릉장-간장. 정때-오후 씬내이-냉이 등 읽어 내리다 보면 함양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이 눈에 그려지고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번진다. 국어순화라는 이름으로 표준어를 배우고 사투리를 사용하게 되면 인품이나 소양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가급적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예의라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또한 지방의 말과 억양을 무디게 만들어 표준어로 무장하는 것이 경쟁력이라 여기게도 했다. 그러나 이젠 많이 달라져 지방의 축제에서 사투리 경연대회가 열리고 방언의 정확성과 유창성을 주제로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함양사람들의 생활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사투리가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향수를 일으키고 지속적으로 쓰이기 위해서는 함양 사투리를 알고 찾아볼 수 있는 사투리 모음집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함양 사투리의 여러 단어들은 옛말의 흔적이 남아 있어 기억하기도 쉽고 표현력을 풍부하게 만들어 정감을 자아낸다. 오래전부터 사용해 오던 함양만의 말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 교감을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무다이 한 번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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