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복주 시인의 안녕하세요 함양 - 14고향과 모교는 하나님도 못바꾸는기라 끼륵끼륵안녕하세요 함양. - 타향도 정이 들면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말을 했던가 바보처럼 바보처럼 아니야 아니야 그것은 거짓말 향수를 달래려고 달래려고 하는 말이야 아아아아 타향은 싫어 고향이 좋아. <고향이 좋아> 김상진의 노래이지요. 제가 왜 김상진의 ‘고향이 좋아’를 이야기하느냐 하면 나의 17번이 ‘고향이 좋아’이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은 술만 취했다면 술좌석에서 말합니다. “친구야. 큭. 니 고향이 어디라고 했제?. 핵교가 함양초등학교 맞제? 니캉내캉 경상도 문디 부산갈매기 아잉겨. 큭. 부산갈매기 외로운 기라. 억수로 외로운 기라. 끼륵끼륵. 세상에 모든 것은 다 바꿀 수 있어도 태어난 고향과 자기가 다닌 모교는 절대 바꿀 수 없는 기라. 끼륵끼륵. 하나님도 못 바꾸는 기라. 니 알갔제. 그러니까 하늘같은 선배 잘 모시라. 친구야. 알갔제?”알긴 뭘 압니까? 술 취해 오버 잇 하던 어제. 그러나 그게 다 지나고 나면 아름답고 소중하고 인간같이 살았던 아름다웠던 시간들이었던 것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됩니다. 함양에서 4월 한식날하고 8월 추석 명절 전날은 그야말로 인생사주요지대사(人生事主要之大事)의 날입니다. 4월. 5월 주말은 총동창회 날이고 8월 광복절 또는 추석날은 동기동창회 날이기 때문입니다. 일 년에 한두 번. 그 날은 세상이 뻐개져도 고향으로 고향역으로 달려가야 하는 날입니다. (이제부터의 글은 가상적 현실로 꾸민 이야기이므로 가볍게 읽어가 주시기 바랍니다.)이번 5월21일은 함양초 개교 100주년 되는 기념 날입니다. 어마어마한 행사가 준비되고 함양초 출신 동창들이 인산인해로 모이는 날입니다. 100주년 행사에 빠졌다가는 누대에 거쳐 동창들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먹게 됩니다. 그래서 꼭 참석해야 합니다. 일이 잘 풀리기 위해서는 2주전부터 마누라에게 작업을 걸어 놔 두어야 합니다. “숙아. 숙아. 니 알제? 그 함양에서 전에 우리 집에 와 술 쳐 먹고 한번 자고 간 그 놈아 말이다. 아. 니 예쁘다고. 세상에서 니처럼 예쁜 여자 생전 처음 본다고 말한 그놈아 말이다. 아. 5월 첫 주가 우리 초등핵교 총동창회 아이가. 그놈아가 니 데리고 나오라코 벌써부터 개지랄 난리법석이다. 니 데리고 오라코!” 이렇게 작업을 미리미리 안 해 두면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합니다. “뭐라코? 그 니 좋아했던 가시나 만나러 간다코? 비 오는 날이든 눈오는 날이든 눈물 콧물 흘리며 졸졸 따라 다니며 첫사랑인지 개나발인지 사랑했다던 춘자 년 만나러 간다코? 니 오늘 잘 말했다카이. 그라찮아도 니 요즘 하는 것이 시원찮아 한번 붙어보려 기다렸던 참이다. 잘 만났다. 한번 해부자! 붙어보자!” “아. 이 경상도 가시나가 미쳐버렸냐?”▲ 함양중2010년 동창회 장면세상에 고향에 한번 그것도 징검다리 연휴 날에 동창회 한번 간다는 허락받는 것이 국무총리 청문회 허락 받는 것 보다 더 힘들 줄이야. 전날부터 부산떨며 준비하여 직장에 잠시 들렸다가 점심 먹자마자 부리나케 고향으로 달립니다. “이번에 가면 아 거 뭐시냐 모교 노래자랑에 나가서 냉장고 1대는 빼앗아 와야 하는 근데. 승용차까지 경품으로 걸었다카더라. 이 참에 나 차 바꿀란다. 노래 끝발이 잘 받아야 할텐데. 뭐로 부르코? 고향이 좋아? 그건 너무 써먹은 노래고 한물 같지. 그러면 최신곡 동방신기의 ‘왜’를 불러 봐?” “노래자랑? 그만 집어치우소! 저번에도 같이 나갔는데 사회자가 뭐 뽀뽀해보라 안아보라 춤춰보라 아이고 남세스러워라. 집에서도 안하던 뽀뽀? 남들은 10분 이상을 안고 있는데 2분도 나를 못 안고 비실비실하다 쓰러져 무슨 개망신이라! 야. 느그 남편 밤에 힘쓰겠나? 묻는 바람에 창피해서 얼굴도 못 들고 도망나왔다” “치워 불라. 니네 기수놈들은 하나같이 매가리가 없노? 여자가 없으면 얼마나 없길래 니가 운영위원이고?”동창회에 가기도 전에 차안에서 사단이 납니다. 뭐 다 그러고 그러고 사는 거 아입니꺼. 5월 함양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 총동창회. 먼저 부모님들에게 인사하고 선물보따리 플러스 금전공세 하고 “오메여. 동창회 있어 친구들 좀 만나고 올라카니 기두리지 말고 주무시소” “그래. 알긋다. 몸 생각해 술 많이 먹지 말고 오래이∼” 초등학교 모교 운동장에 들어서면 벌써 인산인해. 쿵쾅쿵쾅 밴드소리에 왕왕 떠들어대는 마이크 소리에 흥취가 벌써 오른다. 올해는 어떤 놈들이 왔노? 어디 한번 얼굴 좀 보자. 그리고 또 다 한물 간 가시나들은 누가 왔노? 춘자.(이 글에 나온 이름은 전부 지어 낸 가명임을 참고하시라) 그래 니 얼굴 한번 보자. 하이고. 옛날에 내 뒤꿈치 발발 밟고 따라다니던 가시나가 종배 놈하고 결혼하더니 뭐 서울서 무슨 가든 여사장? 돈 좀 긁어모았다고 나를 쳐다보지도 안 해? 오늘 한번 보래이. 너 정말 후회할끼다. 나를 붙잡지 못한 거 정말 후회할끼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함양초등학교 총동창생 여러분! 오늘은 우리 모교 함양초등학교가 100주년을 맞는 아주 뜻 깊은 역사 깊은 날입니다. 백살 먹었습니다. 백살!”“와아! 와아! 함양초! 함양초!” “먼저 함양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인사 말씀이 있겠습니다.”“우리 함양초등학교 총동창 여러분. 감개무량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으로 학교가 창립된 지 100년이 되는 ...” 기억이 안납니다. 함양초 함양중 함양고 오직 함양에 이 한 몸 바친 김구라는 동창회날의 저녁 밤을 기억용량의 한계가 넘었기에 기억을 할 수 없지요. 식순대로 군수 군의장 총동창회장 무슨 무슨 장 장 장님들의 치사를 듣고 100주년 기념공원 준공식과 백돌이합창단의 공연. 그리고 유명 카수가 나타나 노래를 불렀고 구라도 무대에 나가서 정신없이 엉덩이를 흔들었고 노래 한곡 끝발로 밀어 부처 간신히 노래 불렀고 어찌어찌하다 2차 회기별 동창회 모임 장소 산장까지 간 것은 간간이 기억나기는 합니다. ▲ 안의중 2010년 동창회 장면그래. 춘자의 노래가 발단이었습니다.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다며 큰소리치는 마당발 병팔이 놈이나 제 이모 금배지 달고 뻣뻣이 고개 세우는 봉칠이나 의사한다는 복주도 다 좋았습니다. 춘자가 ‘사랑은 아무나 하나’를 부를 때 내가 나가 조금 흔들었더니 돈깨나 벌었다던 소문이 들리던 덕만이 놈이 나를 밀어내고 지가 춘자 앞에 서지 않겠습니까! 이런. 단박에 밀려버린 내가 술좌석에서 ‘너 그러지 말레이’ 하자 시비가 붙었고 술판은 주먹다짐 직전까지 가 판 깨지고 맙니다. “꼴 좋데이. 무슨 놈의 동창회가 쌈박질 동창회고? “남자들은 다 그렇다. 니는 끼들지 말그라.”그러나 곧 노래판 춤판이 다시 이어지고 매미처럼 한 여름철을 외치다가 목이 쉬어버리고 맙니다. 동창회가 좋은 것은 그래도 동문들의 소식을 다 들을 수 있다는 겁니다. 누구는 과장이 됐고 대리가 댔고 누구는 아들이 사법고시를 패스했고 딸이 시집갈 나이가 되었는데 좋은 신랑감 하나 소개해달라고 하고 잘 나가던 누구는 사업에 실패하여 빚더미에 도망갔고 동창회엔 얼굴도 내밀지 못한다는 둥 갖가지 소문과 실체가 이야기에서 이야기로 노래에서 노래로 마구 뒤섞여 흘러갑니다.도시에서는 매일 상하관계와 일에 관련된 사람하고 이것저것 머릿속 다 굴리며 술을 먹습니다. 예.예 할 사람에게는 쓸개까지 빼주고 이 사람 이 사람 할 만한 사람에겐 허풍도 떨어가며 거드름 잡으며 술 먹지요. 하지만 고향에 와 동창을 만나면 너무 좋습니다. 너나 내나 불알친구로 지내오고 공부도 일등에서 꼴등까지 다 알고 같이 놀고 같이 벌받고 했기 때문에 무엇을 자랑할 것도 숨길 것도 없습니다. 옛날 장난치며 놀던 추억만이 아름답게 기억될 뿐입니다. 밤 두시까지 고래고래 노래부르고 춤추자 산 속이 신물난다고 도망갑니다. 한쪽 구석에 구겨져 쓰러지고 눈뜨니 아침입니다. 간신히 해장국 한 그릇으로 속 달래고 집에 오니 아내의 눈썹이 저팔계 눈썹이 되었습니다. 어찌합니까. 손발 들고 빌어야지. 운전하면서 “아. 니 예쁘다고. 세상에서 니처럼 예쁜 여자 생전 처음 본다고 말한 그놈아 말이다. 그 놈아 자슥이 얼마나 술을 멕이는지 나 죽을 뻔했다. 언제 니랑 같이 저녁 한번 사겠다고 부산에 온다카더라.”“치워삘라! 말도 하기 싫다. 니 잠자코 있으래이-” 이상한 일입니다. 동창회로 고향에 다녀온 이후엔 웬일인지 생활이 안정되고 직장도 편안하게 다닙니다. 마음이 편안하고 만사가 순조롭습니다. 아무 일도 없이 정상적으로 아침에 출근하고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고 아이들과 놀고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티비보고 아내도 아무 일 없이 잘 나갑니다. 왜 이렇게 생활이 편안한가? 동창회는 나에게 알지 못할 힘과 용기를 준다는 것을 깨eke게 되었습니다. 아. 사람들은 다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는구나. 너 나 할 것 없이 바쁘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구나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친구들 앞에서 다들 어깨에 힘주며 뻥을 까기는 했지만 우리는 다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다 잘 살려고 열심히 일하다 와서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위안을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동창회에서 돌아오면 조금은 허망하지만 더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각오를 다짐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다 가끔씩 타향에서 외로울 때면 고향 동창을 불러냅니다. “친구야. 오늘 시간 있나? 한잔할까?”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입니다. 그러나 고향친구와 한잔하며 고향의 추억을 나누면 마음은 어머니 품에 있는 것처럼 푸근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아. 아. 고향이 좋아. 나훈아의 노래가 가끔씩 귓전에 들려옵니다. 100년이란 숫자는 함부로 들먹일 숫자가 아닙니다. 한 학교가 100년 동안 함양의 인재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길러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진심으로 함양초등학교 개교100주년을 축하합니다. 또 행사를 한 여러 동창 관계자 분들에게 수고하셨음을 전합니다. (모교와 동창회는 우리의 어머니 같은 꿈의 동산이며 추억의 동산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