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영순 논설위원우리나라엔 문학관이 33개 정도가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이육사문학관. 정지용문학관. 청마문학관이 있고 가까운 이웃 동네의 평사리문학관과 혼불의 작가가 주인공인 최명희문학관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문학이 전시라는 행위와 맞물려 기념관이나 전시관. 혹은 문학관 형태로 세상에 드러난 건 19세기 중반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져나가 마침내 우리나라도 지역의 특징이 드러나거나. 지역을 대표하는 작가의 문학관이 비슷한 시기에 여기저기 세워지게 된 것이다.과연 문학이라는 예술을 대중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논의는 찬반으로 나뉘어 여전히 만만치 않지만 대중의 관점에서 보면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작가들의 평생에 걸친 피나는 창작과정을 살펴볼 수가 있고. 작가들이 고민한 인간적인 고뇌와 아픔을 방문객 스스로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에 문학관을 나서면 ‘잘 보고 잘 왔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일반적인 문학관 감상이다. 문학은 한 나라의 혹은 한 지역의 문화수준과 사회적 성장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래서 문학은 문인들만의 것이 아니라 그 나라와 그 지역민들의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역사로 기록되는 것이라 문학은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예술이라 평가받는다.함양엔 함양문학을 대표하는 30년 역사의 지리산문학회와 20년 역사의 함양문인협회가 있다. 양 쪽 단체는 다양한 구성원들로 회원이 겹치는 경우도 있지만 문학을 사랑한다는 공동의 뜻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개 군에 불과한 작은 동네 함양에서 2007년도엔 신춘문예에 3명씩이나 등단하는 기록적인 결과로 자부심을 고취시키기도 했다. 참으로 대단한 지리산문학과 함양문협의 승리라고 얘기해도 부끄럽지 않은 일이다.지리산문학관이 함양에 있다. 많은 사람들은 지리산문학관은 당연히 함양문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문학관이라 생각하고 있다. 지리산문학제와 지리산문학상을 지리산문학회 주최로 해마다 개최하기 때문에 있기 때문에 지리산문학관도 지리산문학인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리지 않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다르다. 한 사람의 의논과 협조없이 이루어진 문학관이 문인들도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졌고. 전국적으로 이름을 확장시키며 지리산문학인들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가끔씩 연예면을 장식하는 가요표절에 대한 얘기처럼 문학표절이 문학인도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다. 지리산문학관은 2009년 9월에 지리산제일문을 오르는 오도재 고갯길에 입간판을 세웠다. 많은 일들을 지리산문학관에선 몇 년 사이에 해내고 있다. 지리산문학관 카페개설과 홈페이지를 만들고 학술토론회를 하고 지리산인산문학상과 인산&죽염문학상을 개최했고. 올해는 지리산문학연구대상공모와 지리산인산시낭송가상공모를 한다고 대문짝만하게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전국의 유명작가와 시인들은 오해를 하고 있다. 함양문인들이 지리산문학관을 건립했는데 어찌 연락이 없으며 행사에 초대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오랜 시간동안 문학에 애정을 가지고 창작활동에만 매진한 회원들은 황당하기 그지없는 소식이다. 한 개인이 지리산문학관이라는 거대한 간판을 정립도 잘 안 된 건물에다 붙이고 문학관장이라는 이름으로 알만한 문학잡지에 광고까지 내며 마치 함양을 대표하는 지리산문학을 부르짖고 있으니. 30년 역사 지리산문학의 위상이 마구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지리산문학은 함양문인들의 한걸음 한걸음이 담긴 역사로 전국의 기라성같은 거장들이 지리산문학상을 받았다. 정병근. 유종인. 김왕노. 정호승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숙여지는 문인들이다. 열정만 가슴에 담고 행동이 빠르지 못한 함양문인들이 분노만 삭히고 있을 때 지리산문학관은 지리산문학관 법인등록을 마쳤다.돈 안 되는 문학에 함양문인들이 고뇌하며 가슴을 칠 때 상금 천만원이 걸린 공모가 지리산문학관 이름으로 진정한 문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문학에도 도가 있는 것이다. 뿌리없이 돈으로 현혹하는 문학공모를 문학계에선 인정하지 않고 당선되었다 하더라도 떳떳이 밝히기가 쉽지 않은 것이 문학계의 현실이다. 문학은 문인들만의 것이 아니라 지역을 대표하기도 한다.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문학관이지만 그 안엔 진정성과 고귀성이 포함되어 있다. ‘얼마나 많이 뿌렸는가’ 로 판단되는 문학관이 아닌 ‘얼마나 알차게 꾸려졌는가’ 하는 문학관이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내달리기만 하는 한 사람의 문학사업독주는 말하지 않고 지켜만 보는 문학인을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한다. 혼돈을 주는 유사명칭 속에 함양문인들의 설자리가 없어지지 않을까 염려를 해 보지만 시간이 걸릴 뿐 진정성은 사라지지 않고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해 주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