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복주 시인의 안녕하세요 함양 - 10편안녕하세요 함양.오늘은 좀 으스스한 이야기군요.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죽음에 장사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만고의 진리이기에 누구도 거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죽음에 대한 경의를 표합니다.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초봄에 우리 마을에 초상이 있었습니다. 전 이장이었던 아저씨가 병원에서 6개월 투병하다 결국 하늘나라로 돌아가셨습니다. 현 이장을 중심으로 마을 상조회가 가동되고 동네 아줌마들은 음식을 준비하고 젊은이들은 장지를 정리하기 위해서 삽을 들고 동네 산으로 올라가고 상주와 친척들은 슬픔 속에서 차분하게 조문객들을 맞습니다. 몇 년 전 아내가 저녁밥을 먹으며 불쑥 물었습니다. “여보. 만약에 당신이 죽게 된다면 어디에다 묻어 줘요? 그리고 그냥 땅에 묻어 줘요. 화장해서 뿌려 줘요?” “뭐야! 아니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놓고 나 죽기를 바라며 노래까지 부르고 있구만! 뭐 돈 많은 남자 놈 하나 생겼어?” “아니요.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요. 그리고 정말 당신이 먼저 갑자기 죽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덜컥 겁나는 거예요. 내가 먼저 죽으면 상관없는데 당신이 먼저 죽으면 캄캄한 거예요. 그러니 만약을 대비해 미리미리 알아 놔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묻어요? 화장해요?” 어? 이거 정말... 나도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단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 어- 태우는 건 아무래도 그렇고... 묻는 게 좋지 않을까? 아냐. 묻는 건 그렇고 태우는 게 좋은 것 같은데...” 이제 나에게도 죽음의 산그림자가 서서히 길게 늘어서 나에게 가까이 다가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백년 천년 영원히 살 것 같았던 한 사람의 생. 산비탈을 다 오르고 이제는 돌아서서 산비탈을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이젠 죽음을 인정하고 죽음을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지만 죽는 것은 순서가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다시 일 이 년이 흘렀습니다.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가니 자연스럽게 노년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으레 나옵니다. 진지하게 대화를 합니다. “여보. 늙어가는 사람을 살펴보면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늙어가면서 추한 모습으로 늙어가는 사람. 늙어가면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늙어가는 사람. 우리는 제발 아름다운 모습으로 늙어가야 할텐데... 요즘 매일 곱게 늙게 해달라고 기도드려요.” “하하. 기도만으로 될 게 아니라 마음씨를 곱게 써야 하는 거요. 남을 위하여 베푸는 삶을 살아야 아름답게 늙어가는 거지 말로만 기도한다고 될 것 같아요?”그렇습니다. 늙어 갈수록 입은 다물고 귀와 지갑은 열라고 하였습니다. 오래 전부터 나는 거실에 시 하나를 걸어 두었습니다. 구질구질 추하게 늙지 않기를자연에의 회귀가 아름다움이라면스러지는 것 모두 꽃이 되겠지돌아오지 않는 죽음이 아름답기를푸른 잎 사철 화려하진 않았지만한 생으로 피어 낸 붉은 꽃 보고서야꽃이 왜 피었는지 아는 사람은 알겠지사는 것 소중했다면앉은자리 그대로 발 밑에 놓아통채로 지는 순절기쁨으로 가는 자연 그대로의 회귀였으면 좋겠어- 「동백꽃 진 자리」 전문. 문복주정말 구질구질한 생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죽음도 깨끗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곱게 늙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위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남을 아프게 하고 사기치고 욕하고 아등바등 살고... 나중에 무엇을 가지고 가겠습니까? 지상에 남는 흔적이 무엇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법정스님은 승복 한 벌도 많아 꿰매고 깁고 깁다가 그것마저 버리고 가셨음을 생각하면 나는 가진 게 너무 많아 죄스러움을 느꼈습니다. 다 버리고 가려면 고생께나 할 것 같습니다. 세상의 소유가 바로 집착이고 고통의 시작이이라고 했습니다. 수많은 주옥같은 글마저 세상에 부질없다 하시고 없애라 하시고 떠난 스님을 생각하며 나도 나의 죽음을 정리해 보아야겠습니다. 얼마 전부터 우리 동네 옥계. 원산으로 들어오는 입구는 완전 공사판으로 바뀌었습니다. 터널을 뚫고 88고속도로가 새로 생기는 모양입니다. 나는 흙먼지 길을 달리며 그 옆 산에 있는 무덤들을 봅니다. 옛날엔 명당이라 하여 평화롭게 자리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날벼락을 맞은 겁니다. 주변은 돌무더기가 산더미로 쌓이고 나무들은 다 잘려 나가고 거대한 고가 다리가 지나고 트럭들은 줄을 물고 정신없이 드나듭니다. 이젠 풍수지리로 찾는 명당자리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언제 공장이 들어서고 언제 주택단지로 변할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수목장(樹木葬)까지 생각했던 우리 부부는 그것도 부질없다 생각했습니다. 깨끗하게 화장을 하여 지상에 뿌리면 우리 몸은 산으로 바다로 강으로 대지로 하늘로 날아다니다가 다음 세상에 무엇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술먹는 자리에서 동네사람들과 이야기했더니 펄쩍 뜁니다. 아니 뭐하러 몸을 태우고 두 번씩 죽느냐는 겁니다. “내가 살던 고향땅에 묻히면 그보다 좋은 게 어딨나? 또 자식들도 성묘 오기 쉽고” “고향 싫어 도시로 떠난 자식이 누가 성묘하러 그 멀리서 찾아오겠나? 몰라. 자식은 그렇다 하고 그 후 손자에 손자 한 세대만 지나면 찾아 올 사람 아무도 없네. 무덤에 잡초만 가득하지. 그러니까 화장하면 가장 깨끗한 거라” 성묘날이 되면 읍내 곳곳엔 벌초대행이란 플래카드가 휘날립니다. 이젠 돈으로 모든 것을 대신하는 것을 보며 씁쓸합니다.화장에 대한 국민의식조사를 했더니 2005년 전 국민 52%였던 화장 선호가 올해는 전국민 80%가 화장을 선호했습니다. 그러나 경상도는 다른 도에 비해 화장 비율이 조금 낮습니다. 매장을 선호합니다. 나는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직은 가문이 중시되고 있고 일가친척 어른들의 생각이 유교의 영향에 가까이 있었습니다. 또 농촌이나 산골이 많아 장지를 쉽게 정할 수 있으니 매장을 선호하게 됩니다. 화장을 하던 매장을 하던 무엇이 좋고 무엇이 좋지 않다는 가름을 나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생각 끝에 마지막의 선택을 했는데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둘 다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으므로 둘 다 존중하며 자신과 가족들과 또 사회적 의견을 나누어 나가면 다양하고 좋은 장묘문화가 형성되리라 생각합니다. 함양에는 성심병원 장례식장과 고속도로 IC 근처에 함양장례식장이 있습니다. 이 두 군데가 다 입지에 문제가 있어 왈가왈부 된 것으로 압니다. 정말 읍내 번화가 한가운데에 성심병원장례식장이 있어 주변 상가 및 주민들이 성토했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만 예상대로 교통혼잡을 일으키고 번화가에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닙니다. 반대를 했는데도 왜 꼭 거기에 허가를 주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또한 IC 근처 장례식장도 하필 함양읍내에 들어오는 첫 입구에 장례식장이 세워져 함양을 찾는 사람들에게 좋은 첫인상을 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 꼭 그곳에 세워야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것을 이해가 잘 안됩니다. 지나고 나서 왈가왈부 해봐야 책임질 사람도 없고 무를 수도 없는 일이 되어버려 씁쓸합니다. 나는 오늘 안의에 갔다 오다 지곡에서 문득 차를 산 쪽으로 몰았습니다. 함양하늘공원을 향한 겁니다. 평소 그 곳을 지날 때마다 한번 올라가봐야지 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늘에 공원이 있다니. 하늘공원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 곳에서 차 한잔 마셔야지 하고 산 숲길을 올랐습니다. 정말 하늘공원으로 가는 숲길은 아름다웠습니다. 인적 없는 산길을 빙글빙글 돌아 오르는 길이 마치 내가 빙글빙글 돌아 올라간 인생길 같았습니다. 산 정상에 잘 꾸며 놓은 하늘공원. 멀리 문필봉과 대봉산이 보이고 개평분지를 구라천이 안고 흐르는 연꽃모양의 명당터에 햇볕이 따스하게 들고 있었습니다. 봉분들이 옹기종기 평화롭게 아름답게 마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진달래와 철쭉과 할미꽃 민들레 들꽃이 산들산들 피어 있어 그만 어느 무덤가 한 곁에 앉았습니다. 파란 하늘과 먼 산과 주위의 무덤과 내가 살고 있는 먼 지상의 마을을 바라봅니다. 가까이서 보니 무섭다고 생각했던 죽음이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죽음의 곳 까지 가기 위하여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의 생도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과 죽음이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죽음은 삶이 있어 아름답고 삶은 죽음이 있어 아름다운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쯤 함양하늘공원으로 드라이브 산책 가보십시오. 소중한 무엇을 느끼고 돌아올 겁니다. 귀천(歸天)-천상병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