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김성률 목사어린이 날을 맞아 가족과 함께 노고단에 올랐다. 지척에 지리산이 있어서 참 좋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이런 날에 놀이공원 같은 신나는 곳을 원할만도 한데 지리산을 간다니 군말없이 따라나선다. 지리산은 처음에는 잘 몰라도 보면 볼수록 은근히 사람을 끄는 뭔가가 있는데 아이들도 그 맛을 아나보다.지금 지리산은 신록 사이로 벚꽃. 진달래. 야생화들이 만발하여 형형색색 풍성한 아름다움을 더해가고 있다.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은 길이 편안하여 천천히 올라도 한 시간이면 노고단 산장에 도착한다. 산장에 마련된 취사장에서 라면을 끓여먹었다. 산에서는 라면만한 것이 없다.오늘은 작정하고 일찍 출발한 덕분에 노고단 정상에서 오래 머물 수 있었다. 양말을 벗고 한참을 가만히 누워 있었다. 곁에는 아내와 고2 큰딸이 가만히 앉아 산의 정취에 취해 있고. 중3 아들과 초3 막내딸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고 있다. 살갗에 닿는 햇살과 바람의 느낌이 참 좋다. 어디에서 이만큼 맑고 싱그러운 바람과 햇살을 만날 수 있을까. 오늘은 시야가 좋은 편이어서 멀리 천왕봉까지 주봉(主峰)들이 보이고 산과 들판 사이를 흐르는 섬진강이 보인다. 한참을 쉰 후 보이는 곳과 가려진 곳의 봉우리와 계곡. 마을들 위치와 이름을 아이들과 함께 짚어보고 산에서 내려왔다.크게 힘들이지 않고. 큰 돈 들지 않고 라면 다섯 개로 가족이 함께 평화롭고 넉넉한 하루를 보냈다. 가까이 지리산이 있어서 참 고맙다. 지리산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고 이만큼이라도 보존되어서 수려하고 정감어린 계곡과 마을들을 자손대대 보면서 그 넉넉한 품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람의 행복이 소유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희랍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삶이란 관조(觀照)하는 삶이라고 했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삶인가를 생각하고. 삶의 순간들을 깊이 느끼며 살아있음을 자각하는 삶이 관조의 삶일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삶을 느낄 겨를도 없이 살고 있다.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람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할 교육 현장까지도 세계화와 무한경쟁의 광풍(狂風)이 몰아쳐서 입시와 취업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가고 있다. 율법주의의 광풍에 병들어가던 유대사회를 향하여 예수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고 설파했는데 예수께서 우리시대를 보셨다면 “공부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공부를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돈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탄식하셨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시대는 어른이나 아이나 할 것 없이 행복의 우선순위가 뒤집혀 있다. 고려대 교수이면서 조치원의 마을 이장인 강수돌 선생은 우리사회를 가리켜서 “행복을 유보시키는 사회”라고 한다. 학창시절에는 좋은 대학을 위해. 대학에서는 좋은 직장을 잡기 위해. 취직을 해서는 승진과 자녀교육에 대한 부를 쌓기 위해 자신의 행복을 자꾸 늦춰야 하는 그런 사회가 21세기 대한민국이다. 단 한번뿐인 짧은 생을 그렇게 휘둘려서 살 필요가 있을까? 삶을 돌아보며. 느끼며. 비워내며 살지 않으면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될 때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여 발버둥치며 죽어가게 된다고 한다. 정신없이 질주하는 인생은 제대로 사는 법도. 제대로 죽는 법도 터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선종(善終)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은 치료를 사양하고 편안히 임종을 맞으셨다. 토지의 작가 고 박경리님도 치료를 하면 조금 더 살 수 있음에도 의사와 친지들의 간곡한 요청을 거절하고 “참 오래 살았으니 괜찮다”면서 평화롭게 생을 마감하셨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늘그막에 당신께서 쓰신 글을 보면 생전에 제대로 죽는 법을 준비하신 듯하다. 항상 기도하며 마음 비우며 사셨던 나의 어머니도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딸네들 집을 다니며 자식들 얼굴보시고. 찬장 그릇 안에 내 등록금 얼마를 넣어두시고. 설교 준비하시던 아버님에게 “여보. 설교 준비 잘 하세요.” 한마디하시고 아버님 곁에서 낮잠 주무시던 중에 편안히 돌아가셨다. 우리는 하이테크(High-Tech) 시대의 정점에 서 있다. 기심(機心)이 앞서다보니 인심(人心) 천심(天心) 다 잃고 알맹이 없는 껍데기 인생을 헐떡이며 살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제부터는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마음 깊이 느끼며 그 황홀함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하이터치(High-Touch)의 삶을 살아야 한다. 봄의 끝자락이다. 봄은 볼 것이 많아 봄이라 하니 이 봄이 다 가기 전에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자. 없는 시간이라도 쪼개어 밖으로 나가 가는 봄에 인사를 하자. 얼마나 화사하게 피어났던 봄인가. 그도 이렇듯 덧없이 가니 삶은 참으로 텅 비어 가벼운 것이고 그래서 더욱 순간순간이 모두 가슴 아리게 아름다운 생이다. 그대는 어디에 정신을 팔고 있는가? 무엇에 넋을 잃고 사는가? 욕심에 들떠 정신없이 살아도 될 인생이 아니다.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더 가까이. 더 기쁘게. 더 알차게 삶에 다가서자.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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