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자연의 힘이며 어디까지가 인간의 힘인지 분간할 수 없는 이곳 서암정사. 서암정사는 바위와 바위가 한데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산지형을 이루는 화강암에 사천왕들을 조각한 곳으로 한국에 유일한 곳이다. 석가탄신일을 며칠 앞둔 지난 4월28일 연등으로 오색 옷을 입은 서암정사에는 불자들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어렵게 만난 원응스님은 제 자리에서 지리산 골짜기를 훠이 둘러보고 온 듯한 모습으로 취재진을 맞았다. 스님을 뵙는 순간 속세의 시간이 멈춘 듯 했다. -편집자말- 잘 짜여진 건축물처럼 산의 능선과 바위가 교차되어 만들어진 공간은 바깥세상과의 소통은 잠시 미루어도 좋을 만큼 아늑한 스님의 수행장소로 안성맞춤이었다. 석가탄신일을 맞아 큰스님의 말씀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전하자 원응스님은 대중의 관심사인 가뭄을 걱정하시며 얼마 전 산불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하셨다.스님은 말씀을 이어나갔다. "좋은 말이 있겠나. 잘사는 길은 뜻을 모으는 것이지. 우리나라나 세계가 갈등이 생기는 원인은 겉으로는 평화를 외치면서 속으로 아집. 자기주장을 내세우기 때문이지. 단체가 융화되려면 자기 주장을 버려야 해. 우리나라 정치는 아집. 자기를 낮추지 못해서 정치문화가 후퇴하고 있으니 양보하고 자기를 낮추면 함양사회가 밝아지고 경남이 밝아지고 남북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고 충고했다. 원응(元應)스님은 50여년전 27세의 나이에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이 와글거리는 부산을 떠나 이곳 마천면 추성계곡에 흘러들었다. 인민군 유격대. 일명 빨치산들이 은신하며 군경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지리산은 민족분단의 상징이며 아픔이 서린 곳이다. 이곳은 시련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때라 도처에 뼈골이 널려있었으며 밤낮으로 시달린 주민들은 정신이 황폐해져 있었다. "이 어찌 억겁의 세월을 숲 속에 숨겨져 사람의 인연을 기다리는 성지가 아니고 무엇이랴? 여기가 만년도량 자리로다" 스님은 이렇게 확신하고불사를 시작했다. 1975년 처음 터를 고르고 1988년에는 주변 부지를 매입해 본격적인 불사에 들어갔다. 본존불인 아미타불을 조성한 석굴법당은 1989년 6월부터 조각을 시작해 10여년만인 2001년 완공했다. 정서향인 석굴법당의 전면은 서로 기대어 선 두 개의 큰 바위로 이뤄져 있다. 멀찌감치 앞에서 바라본 바위는 문수보살을 상징하는 사자의 형상을 하고 있고. 왼쪽바위는 보현보살을 상징하는 거대한 코끼리 형상을 하고 있다. 이 형상을 비롯한 갖가지 형상을 발을 옮기는 순간 발걸음은 여기가 바로 화엄세계가 아닌가 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여느 사찰 입구는 사천왕들이 나무목형 조각이나 서암정사는 화강석으로 섬세히 조각되어 있다. 입체적으로 조각되어 있는 모든 불상과 조각품들은 다른 돌로 덧붙인 것이 아니라 자연석 그대로를 이용해 조각과 돌이 완전한 하나로 연출된다.원응스님의 바램대로 6.25때 지리산에서 죽어간 원혼을 위로하고 부처님 품안에서 국민화합을 기원하기 위해 만든 서암정사는 각고의 노력 끝에 지리산의 대표사찰로 우뚝 섰다. 부처님을 새긴 후 종각전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한 것은 많은 영혼이 방황하지 않고 부처님의 진리의 소리를 듣고 어둠에서 벗어나길 염원해서다. 마천. 지리산에 대한 원응스님의 사랑은 남다르다. "마천은 사람들이 순박하고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우리나라에 이런 곳은 없다. 사람이 마음만 바꾸면 극락세계가 따로 없는데 별천지를 멀리 가서 구할 것이 아니라 마천 안에서 마음만 순박하게 하면 이곳이 청학동이다"며 마천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특히 지리산의 영험함을 내세우며 "대지가 똑같은 것 같아도 나쁜 기운이 못 들어가는 곳이 있는데 이곳 지리산이 그런 곳이다. 자연의 기류는 어디든지 갈 수 있지만 지리산에는 나쁜 기운이 들어올 수 없다"며 지리산을 그래서 명산이라고 했다. 원응스님을 이야기하자면 서암정사 외에도 사경수행을 빼놓을 수 없다.총 60여만자나 되는 경전인 화엄경을 하루도 쉬지 않고 옮겨 써도 16년의 시간이 걸린다는데 원응스님은 한번은 먹으로 한번은 금으로 12년만에 두 번이나 옮겨 적었다. 금분으로 옮겨 쓴 국내 유일한 80권의 화엄경 금니사경전(金泥寫經典)은 불자들의 염원으로 우리나라에서 전시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대만에서 전시회를 갖고 올해 중국 상해에서 대외문화교류팀을 통해 초청. 전시회를 가지기도 했다. 사경이란 부처님 경전을 정성들여 쓰는 것으로 수행에는 염불. 참선. 사경 등이 있는데 고려이후 없어진 사경을 아쉬워 한 원응스님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세계평화에 대해 말씀을 전하신 원응스님은 "앞으로 세계라는 것이 내 나라만 평화롭다고 결코 평화로운 나라가 될 수 있는게 아니라 이웃나라도 평화로워야 그게 가능하다. 이웃과 허물이 없어야 평화가 있으니 나라와 나라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가로막혀 있는 국가간의 장벽을 허물어가자는 것이 인류가 추구해 나가야 하는 것이니 옳은 나라가 되려면 지역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전했다. 1935년 경북 달성군에서 태어난 원응스님은 부산 선암사에서 석암스님을 은.계사로 출가. 사미계를 받았다.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한 이후 합천 해인사. 문경 김용사. 선산 도리사 등 선원에서 정진한 이후 벽송사 선원을 재건. 조실로 제방납자들을 제접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