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군은 총 인구 약 3만6000명이다.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체 40%, 법에서 정하는 청년인구는 전체 9.5%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소멸 위협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히가시카와는 일본 홋카이도 중앙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홋카이도 내에서도 인구가 적은 편에 속하는 지역이지만, 일본의 전반적인 지방 인구 감소와 달리 최근 몇 년간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지역이다. 히가시카와의 인구 증가 요인을 히가시카와의 자원, 그리고 도시문화, 청년 유입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함양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 또한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국내 다양한 로컬문화 사례를 분석하고 도시계획과 관계인구 유입 전략을 통해 함양의 발전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1. 함양은 인구가 늘어날 수 있을까?2. 함양을 거점으로 새로운 대안 연구3. 히가시카와(1) 지역 자원4. 히가시카와(2) 도시 문화5. 히가시카와(3) 청년6. 다양한 로컬문화 사례와 관계인구 형성7. 지역을 살리는 시스템8. 히가시카와에서 만난 사람들
관계인구(關係人口)’는 한 지역과 일정한 깊이의 관계를 맺고 있지만 주민등록은 두지 않은 사람을 뜻한다. 관광객처럼 스쳐 지나가는 방문자도, 주민처럼 세금과 의무를 지는 사람도 아닌 그 중간의 존재다. 일본 총무성이 2015년 지방소멸 대책의 한 축으로 관계인구 개념을 처음 제시했고, 이후 출생률이 떨어지면서 지역 활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를 세우기 위해 관계인구 개념을 도입했다.책 <관계인구를 만드는 N개의 방법>에서는 “억지 관계는 불편하고, 맹목적 관계는 부당하며, 급행 관계는 불가능하고, 준비 없는 관계는 허상일 뿐이다. 관계인구와 생활 인구를 만든다며 머릿수 늘리기에만 과몰입하는 ‘관계만병통치론’은 필패할 것이다. 인구 흐름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는 머릿수가 아니라 이동 인구와 어떤 좋은 프로젝트를 만들 것인가를 궁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과연 그렇다면 지역은 어떻게 건강한 관계 인구를 형성할 수 있을까?조희정 박사“지역을 움직이는 힘은 재미와 순환”책 <관계인구를 만드는 N개의 방법>을 쓴 조희정 박사는 스스로를 “정치학을 전공하고 지방소멸을 연구하지만 이데올로기적으로 공동체 의식을 강요하면 나도 싫다”고 소개하며 주민 참여를 바라보는 시각을 나타낸다. 재미가 없는 프로그램에는 누구도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는 현실 인식이다. 연구자로서 그는 지역을 분석할 때도 ‘카테고라이징’이 먼저라고 말했다. 조희정 박사가 책을 통해 관계인구를 △지역 자원 발굴 △지역 살이 공감 △지역 상품 생산 △지역 사람 연결 등 총 네 범주·15개 유형으로 분류한 이유 역시 “정리가 되어야 남에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조희정 박사가 설명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키워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가’이다. 책 <관계인구를 만드는 N개의 방법>의 본문을 보면 “인구 포비아가 아니라 삶 포비아가 더 문제다”라며 인구 감소와 증가를 전부로 치는 일종의 공포 마케팅에는 어디에도 인구가 아닌 ‘사람’, 양이 아닌 ‘질’로서 삶의 가치나 행복에 대한 고민이 없다고 말한다. 조 박사는 인구 감소를 걱정하기보다, 지역이 가진 조건과 주민의 가치관이 얼마나 맞물리는지를 먼저 묻는다. “지역을 선택하게 하는 건 결국 사람들 사이의 후킹 경험”이라는 말처럼, 그는 관계와 재미, 행복, 그리고 순환 구조가 맞아떨어질 때만 지역이 지속된다.정주 인구 이전에 관계 인구그 이전에 활동 인구가 있다조희정 박사는 “관계인구를 단순 머릿수로 세면 정책이 엇나간다”며 인터뷰에서 ‘관계인구’ 개념부터 다시 잡았다. 일본에서도 법적 주민이 아닌 사람이 지역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도록 돕자는 취지였지, 스쳐 가는 관광객 집계가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관계인구가 지역의 에너지를 만들려면 먼저 만날 사람, 들어갈 공간, 다시 올 이유가 있어야 한다”며 질적 지표가 우선이라고 강조했다.조 박사는 “활동 인구 없이는 관계인구를 논할 수 없다. 활동 인구란 우리 지역 끝내준다”는 자신감으로 동네를 요즘 감각에 맞게 스토리텔링할 주민 가이드·도슨트를 가리킨다. 고령화율이 40%를 넘어선 현실에서, 건강하고 의욕 있는 안내자를 먼저 키우지 않으면 관계인구 유치 전략은 서류에 그칠 수밖에 없다.그렇다면 활동 인구가 일할 무대를 어떻게 만들까. 조 박사는 일본에서 이미 시행했던 ‘관계 안내소’를 제안한다. 마을회관·관공서는 낯선 방문자에게 문턱이 높으니, 개인이 부담 없이 드나들며 동네 사람을 만날 열린 공간이 필요하다. 이런 구조 없이 워케이션이나 한 달 살기 프로그램만 양산하면 “공짜 숙소를 옮겨 다니는 노마드만 늘 뿐”이라고 경고했다.활동 인구를 모으는 방식도 딱딱한 회칙은 금물이다. 개인이 참여하기 위한 동기나 요소가 있어야 주민도, 외지인도 오래 머무른다고 말했다. 경직된 회칙과 조직이 생기는 순간 불행이 싹튼다는 농담 섞인 경고도 덧붙였다.조 박사의 조언은 함양군에도 적용된다. 함양군이 가장 시급한 일은 로컬 서점, 작은 창업 카페처럼 문턱이 낮은 거점을 만들고, 그 공간을 즐겁게 설명할 활동 인구를 발굴·지원하는 일이다. 관계인구 전략의 실질적 출발점은 지역을 재미있게 이야기할 활동 인구와, 그들이 일할 열린 공간이다.
서큘레이션이 움직이는 도시로컬 브랜딩이 붙잡는 힘조희정 박사는 일본 히가시카와의 ‘아기 의자 프로젝트’를 서큘레이션의 교과서라고 정의했다. 서큘레이션이란 표현을 통해 “행정이 진행하는 사업 하나가 경제·문화·교육·커뮤니티 등 다각도로 순환할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아이가 태어나면 히가시카와는 이름이 새겨진 목재 의자를 증정한다. 히가시카와는 매년 목재 의자를 위한 디자인 공모를 열고 지역 목수가 제작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수상작은 전시되기도 하고 목공방의 일감으로 지역 목공 기술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 가족은 아이 성장 사진을 SNS에 올려 ‘사진의 마을’ 이미지를 확장한다. 조 박사는 “출생, 산업, 커뮤니티, 관광, 브랜드가 한 회로로 묶이면 예산이 소모되지 않고 순환한다”고 설명했다.히가시카와 지역화폐 HUC 카드 가입자가 21만 명을 넘어섰다. 인구 8000명 마을에 수십 배 규모의 사용자가 있다는 사실에 박사는 “화폐가 관계를 잇는 통로가 되면 돈만 도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와 신뢰가 함께 쌓인다”고 강조했다. 기부자가 HUC로 답례품을 사고, 유학생은 장학금을 지역화폐로 받는다. 아르바이트 임금 지급, 도서관 대출 포인트 적립까지 생활 동선에 화폐 기능이 얹히자 “주민·방문객·관계인구가 같은 시스템을 쓰며 데이터가 축적된다”는 설명이다. 박사는 이 데이터가 지역 의사결정의 근거가 되고, 투명성은 다시 사용자의 신뢰를 높여 선순환을 강화한다고 덧붙였다. 이 역시 사업이 다각도로 순환된 사례다.
로컬 브랜딩에 대해 조 박사는 “지역 자원·공간·사람의 방식을 일관된 약속으로 반복 노출하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조 박사는 지방정부가 ‘브랜드 로고’와 ‘캐릭터’ 만들기에 집착하는 현실을 꼬집으며 “힐링·치유 같은 추상어보다 하루를 어떻게 살게 할지를 보여 줘야 한다”고 말했다. 히가시카와가 목재·사진·대설산이라는 세 키워드를 의자·갤러리·아웃도어로 끈질기게 해석해 온 덕분에 ‘가고 싶은 지역, 살고 싶은 지역이 됐다’는 것이다. 다른 지자체가 히가시카와처럼 의자 증정을 따라 했지만 순환 구조 결여로 벤치마킹 실패한 사례를 들며 “핵심은 반복 노출과 체험의 일관성”이라고 강조했다.정책 순서를 묻자 조 박사는 “순환 구조 설계가 먼저”라고 답했다. 고령화·인구 감소는 단기간에 해결 불가하지만, 자원과 사람·공간이 순환하도록 설계하면 지역은 버틸 근력을 얻는다는 논리다. 함양군도 약초·목공·농업 같은 고유 자원을 하나씩 꿰어 서큘레이션 구조를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역에는 “1타 5피” 구조가 필요하다.결국 도시의 미래를 좌우하는 열쇠는 지역에서 주체적으로 행복을 느끼고, 그 행복을 계기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조희정 박사가 강조하듯 “인구가 줄면 망하고, 늘면 흥한다”는 식의 숫자 프레임은 정작 중요한 흐름을 가린다. 지역이 먼저 할 일은 머릿수를 끌어올릴 이벤트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활동 인구의 일상을 풍요롭게 설계하는 것이다. 활동 인구가 일·여가·학습·문화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면, 그 장면이 외지인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방문자가 머물고 싶어지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축적된 관계는 인구 유입을 견인하며, 이는 자원·정보·재능의 순환으로 확장되면서 지역 내 인구 유입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히가시카와가 보여 준 목재 의자, 지역화폐 같은 작은 장치들은 활동 인구의 행복과 관계를 자극해 산업·교육·관광으로 번져 갔고, 그 흐름 끝에 인구 유입이라는 열매가 맺혔다. 함양군도 숫자에 앞서 활동 인구의 삶과 행복을 증진시키고, 그들이 외지인과 관계를 촉진할 수 있는 생활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행복을 느끼는 주체인 활동 인구와 지역을 반복적으로 찾고 관계를 맺는 관계 인구 속에서만 지속 가능한 인구 성장이라는 열매를 기대할 수 있다.최학수 PD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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