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가득한 여름 오후, 창밖으로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문득 평화로운 풍경 뒤에 감춰진 가족의 그늘진 단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신문과 뉴스는 오늘도 섬뜩한 사건들을 보도한다.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형제자매가 서로를 해하는 끔찍한 이야기들. 우리는 이른바 ‘가족 내 잔혹 범죄’의 시대를 살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이제는 예외적인 비극이 아닌,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낯선 풍경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우리는 모두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믿음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는 현실 앞에서 불안감에 휩싸인다. 무엇이 우리의 가정을 이토록 위태롭게 만들었을까?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가족 범죄의 원인으로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고립, 개인주의 심화 등을 꼽는다. 물론 이러한 거시적 원인들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어쩌면 더 근본적인 문제는 가족의 가장 핵심적인 주축이 되는 ‘부모’의 역할과 ‘자녀 교육’이라는 미시적인 부분부터 시작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의 부모들이 지향하는 부모의 모습과 그들이 자녀를 길러내는 방식이 과연 건강한 형태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현재의 주된 부모 세대는 대체로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치며 경제 발전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환경에서 자라왔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자란 이들은 어쩌면 ‘완벽한 부모상’에 대한 압박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자식만큼은 나보다 더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 좋은 성적과 번듯한 직업을 가진 ‘자랑스러운 자식’을 길러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진정으로 자녀의 행복과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보다는 결과 지향적인 교육에만 몰두하게 되었던 것 같다.그 결과, 우리 사회의 자녀 교육은 치열한 경쟁의 장이 되었다.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학업 성취와 사회적 성공이라는 거대한 목표 아래 내몰린다. 수많은 학원을 전전하고, 끝없이 시험을 치르며, 점수 하나에 울고 웃는다. 부모들은 자녀의 뒤를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며 모든 것을 관리하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정서적 교감’과 ‘인간적인 관계 형성’에는 소홀한 경우가 많았다. 자녀의 감정이나 스트레스에는 둔감하고, 오직 ‘공부’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채찍질하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내면의 욕구와 감정을 억누르고, 부모에게는 좌절감이나 불만, 혹은 극심한 무기력을 느끼게 되었다.또한, 과거 권위주의적 부모 밑에서 충분한 정서적 지지와 표현 방법을 배우지 못한 부모 세대가 그대로 그 결핍을 자신의 자녀에게 대물림하는 악순환도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감정 표현에 서툴고, 대화보다는 일방적인 지시와 명령에 익숙한 부모는 자녀와의 건강한 소통 채널을 구축하기 어렵다. 자녀가 자신의 고통이나 어려움을 이야기할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이야기해도 공감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점차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 가족 구성원 간의 진정한 대화와 이해의 부재는 서로를 타인보다 더 냉혹하게 대하게 만들고, 결국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옥죄는 고통의 굴레로 변질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오랜 시간 쌓인 분노와 좌절감이 극단적인 폭력으로 표출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우리는 지금 무너져가는 가정을 걱정하며, 우리 사회는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방법에 대해 깊이 성찰할 시점에 도달했다. 부모 세대는 자녀의 건강한 성장을 돕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자녀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하고, 성공 지향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자녀의 감정과 개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완벽한 부모가 되는 것보다,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자녀와 소통하는 ‘충분히 좋은 부모’가 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성적 위주의 경쟁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사회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고,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돕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제는 진정으로 우리 모두가 ‘가족’이라는 이름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는 노력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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