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읍 외곽 이은리, 옛 승마장 길을 올라가면 마을과 들녘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다채로운 색의 그늘막과 물놀이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웃고 뛰노는 이곳은 ‘레인보우캠프’, 함양군민은 물론 대구·광주 등 외지에서까지 손님이 찾아드는 당일형 캠핑 공간이다.이곳을 운영하는 임원섭 대표는 수동 출신으로, 25년 가까이 농협에서 일하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캠핑장을 택했다. ‘왜 하필 캠핑장일까?’라는 질문에는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웃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는 짧은 답이 돌아온다.임 대표는 1971년생으로, 고향은 함양 수동면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수동에서 마쳤고, 고등학교와 대학은 외지에서 다녔다. 1996년 농협에 입사해 수동농협과 함양농협을 거쳐 다시 수동농협에서 퇴직할 때까지, 그는 농민들과 부대끼며 일했다. IMF 시절 농협의 위기를 직접 겪었고, 농협에 대한 농민들의 불신이 컸던 시절에도 성실히 자리를 지켰다.“그때 ‘농협은 농민 등골 빼먹는 곳 아니냐’는 얘기도 수없이 들었어요. 저도 농민 자식인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상했죠. 그래서 더 열심히 일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그는 정년까지 일할 계획이었지만,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삶이 흘렀다. 2019년 농협을 그만두고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던 찰나,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됐고, 어머니의 건강 문제도 겹쳤다. 그때 농협 시절 오랜 고객이었던 한 지인이 함께 사업을 해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그렇게 시작된 일이 지금의 레인보우캠프다.“그분은 원래 승마장을 운영하던 분이었어요. 함안에서 먼저 시작했고, 함양으로 확장해서 승마장을 운영하던 중이었죠. 그런데 코로나19 여파로 승마 산업이 주춤하니까, 기존 시설을 개조해서 캠핑장으로 전환하게 된 겁니다”레인보우캠프는 숙박 없이 당일만 이용하는 ‘캠크닉’ 콘셉트의 캠핑장이다. ‘캠크닉’이란 캠핑과 피크닉의 결합어로, 하루 동안만 쉬었다 가는 구조다. 텐트를 비롯해 물놀이장, 에어바운스, 트램펄린 등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시설이 갖춰져 있고,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별다른 준비 없이도 와서 편하게 쉬다 갈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다.
“‘레인보우’라는 이름은 무지개처럼 행복한 하루가 되라는 의미예요. 우리 캐치프레이즈도 ‘무지개빛 행복’입니다. 어릴 적 동심, 부모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이미지요”처음 시작할 땐 낯설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웃는 모습에 힘이 났다. 운영이 4년째 접어든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다. 시즌 영업이다 보니 운영 기간은 5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로 한정돼 있다. 이 때문에 경제적으로 큰 수익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그는 여전히 캠핑장을 열심히 지키고 있다.“올해는 작년보다 손님이 좀 줄었어요. 수해 피해도 있고, 경기도 어렵고… 그래도 운영이 가능한 정도면 만족합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고요. 수익보다도 의미가 더 크죠”그가 기억하는 손님 중 가장 인상 깊은 이는 초등학생 아이와 함께 찾아온 할머니였다. 부모는 함께 오지 않았고, 단둘이 찾아왔다.“할머니가 연세도 있으시고, 뭔가 많이 준비하지 못한 눈치였어요. 아이는 친구들처럼 물놀이를 하고 싶어 했고…. 옆에서 도와드리면서 고기도 같이 구워 먹고, 요금도 안 받았죠. 돌아가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는데, 저도 울컥했습니다. 나중에 그 아이 아버님이 오셔서 고맙다고 인사도 하셨고요”그날 이후 임 대표는 여력이 된다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을 위해 초청 이벤트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이곳에서 맺은 소소한 인연들은 그에게 큰 보람으로 남기 때문이다.운영하면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단연 ‘안전’이다. 아이들을 위한 물놀이장이 있는 만큼, 물 관리에 늘 신경을 곤두세운다. 청결과 안전이 최우선이다. 또한 넓은 공간이 한눈에 들어오는 구조라, 부모들이 텐트에 앉은 채 자녀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우리 함양은 지리산도 있고 계곡도 좋지만, 거긴 바위 뒤에 아이들이 숨어버리면 살피기 어렵잖아요. 여긴 텐트에 앉아서 아이들을 다 볼 수 있어요. 부모들도 그 점에서 만족하시더라고요”하루 일과는 오전 7시 무렵부터 시작된다. 가장 먼저 풀장 청소와 점검을 하고, 오전 10시에 손님을 받는다. 에어바운스는 오후 6시, 물놀이는 7시, 전체 마감은 오후 8시다. 하루 평균 13시간 정도 일하지만, 그는 여전히 체력적으로 버틸 만하다고 한다.농협에서 일하던 시절과 비교해보면, 정서적으로는 지금이 더 즐겁다고 말한다.
“예전엔 어르신들하고 일하면서 마음이 참 편했죠. 지금은 아이들하고 놀다 보니까 오히려 제가 젊어지는 기분이에요. 물장난도 같이 하면서 웃고…. 그런 게 참 좋아요”그는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 특히 우리나라 교육 환경에서는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부모와의 여가 시간이 줄어든다. 그래서 더더욱, 하루라도 이런 공간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아이들과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아요. 여기는 준비 없이 와도 되고, 집 근처에서 아이들이랑 하루 신나게 놀 수 있는 공간이니까, 그런 시간을 자주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지금도 매주 오는 단골 가족들이 있다. 부모는 “언제까지 얘네들이 나랑 놀아주겠냐”며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그 말에 임 대표는 더욱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확장’과 ‘다변화’라는 두 단어를 꺼냈다. 현재 함양과 함안 두 곳에서 캠핑장을 운영 중이며, 남부권을 중심으로 한두 곳 더 열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또 시즌이 아닌 기간에는 전시 공간과 키즈카페, 카페 등을 결합한 복합 공간으로 활용할 구상도 갖고 있다.“우리 지역 예술가들을 위한 전시 공간을 무료로 제공하고, 아이들과 부모들이 사계절 내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어요. 작은 카페도 하나 만들어보고 싶고요”마지막으로 캠핑장을 찾는 이들에게 그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몸만 오세요. 나머지는 저희가 다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군민이라면 지인 찬스도 있습니다. 사정이 어려우시면 말씀만 주세요. 제가 격하게 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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