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군은 총 인구 약 3만6000명이다.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체 40%, 법에서 정하는 청년인구는 전체 9.5%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소멸 위협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히가시카와는 일본 홋카이도 중앙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홋카이도 내에서도 인구가 적은 편에 속하는 지역이지만, 일본의 전반적인 지방 인구 감소와 달리 최근 몇 년간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지역이다. 히가시카와의 인구 증가 요인을 히가시카와의 자원, 그리고 도시문화, 청년 유입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함양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 또한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국내 다양한 로컬문화 사례를 분석하고 도시계획과 관계인구 유입 전략을 통해 함양의 발전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글 싣는 순서>1. 함양은 인구가 늘어날 수 있을까?2. 함양을 거점으로 새로운 대안 연구3. 히가시카와(1) 지역 자원4. 히가시카와(2) 도시 문화5. 히가시카와(3) 청년6. 다양한 로컬문화 사례와 관계인구 형성7. 지역을 살리는 시스템   일본의 소도시 히가시카와의 대표 브랜드가 ‘사진’이라니 다소 의아할 수 있다. 히가시카와정이 1985년에 내건 ‘사진의 마을’은 카메라 공장도, 유명 작가도 없던 농촌이 “사진으로 담기 좋은 무대”를 스스로 만들자는 선택이었다. 타케시 오카쿠 사진의마을과 과장은 “유명 사진가가 있느냐, 공장이 있느냐보다 주민 모두가 한눈에 담을 풍경을 같이 가꿔 보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선언문 속 핵심 가치는 ‘자연·문화·사람의 만남을 기록할 무대 만들기’였다.선택의 배경엔 시대적 흐름과 지역 형편이 겹쳤다. 1970~80년대 일본 정부가 각 읍·면마다 하나의 특색을 정하라고 독려한 ‘일촌일품’ 정책이 있었고, 히가시카와는 개척 90주년(1985)을 맞아 ‘100주년을 기념할 콘텐츠’를 고민하던 차였다. 홋카이도가 일본 본토에 편입된 지 길어야 200년 남짓이라 “역사도 산업도 짧다”는 열세를 사진이라는 새 매체와 결합해 돌파하자는 발상도 힘을 보탰다.히가시카와는 1985년 6월 1일 ‘사진의 마을 선언’을 통해 ‘사진의 마을 목적’을 분명하게 명시한다. △사진으로 담기 좋은 마을 만들기, △사진으로 담기 좋은 사람 만들기, △사진으로 담기 좋은 물건 만들기로 총 세 가지 목적이다. 사진을 대표 브랜드로 정하면서도 사진이 유명하다는 것을 외부로 꾸준히 홍보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지역 내부에서도 브랜딩이 건강하게 진행됐다.사진을 고른 이유는 실용적이었다. 쌀·목공처럼 특정 업종만 이익을 보는 특산품 대신,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문화매개’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초기엔 “왜 하필 사진인가”라는 회의론이 있었지만, 조례에 선언을 명문화해 ‘생활규칙’으로 못 박으면서 반발을 최소화했다. 또한 히가시카와에서 진행하는 ‘전국 고등학교 사진 선수권 대회’ 때 히가시카와를 찾은 고등학생들의 숙박을 지역 주민 홈스테이 시스템으로 연결한 것도 이방인과 지역주민을 자연스럽게 잇는 매개체가 됐다.선언 직후 1985년에 ‘국제사진페스티벌’이 출범하고 1989년 개장한 ‘히가시카와정 문화 갤러리’는 지역 문화 활동의 중심지로 꾸준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10주년에는 전국 고교생 팀이 마을을 취재·촬영하는 ‘전국 고등학교 사진 선수권 대회’가 추가됐다.대회는 올해 32회를 맞이할 정도로 유서깊다. 지금은 매년 600여 개 학교가 예선을 치를 만큼 성장해, 청소년·전문가·주민을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한다. 페스티벌 수상작은 해마다 마을에 기증돼 현재 4000여 점이 공공 컬렉션으로 남아 있고, 주민들은 언제든 저렴한 관람료로 다양한 사진을 접할 수 있다. 오랜 시간 안정적으로 사진을 브랜딩한 히가시카와는 사진 관련 관계인구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히가시카와 지역 화폐인, 히가시카와 유니버셜 카드(이하 HUC) 가입자 수는 인구의 10배를 훌쩍 넘긴 10만 명으로, 관계인구가 안정적으로 형성된 것을 알 수 있다.결국 ‘사진’은 히가시카와가 가장 넓게 주민을 묶을 수 있는 매개였다. 오카쿠 과장은 “사진이란 창(窓)을 통해 자연, 웃는 사람, 잘 깎인 목재가구까지 한 컷에 담길 때 비로소 ‘살기 좋고 찍기 좋은 마을’이 완성된다”고 요약한다. 선언 40년이 지난 지금도 사진은 히가시카와의 풍경·관계·행정을 한 프레임 안에 묶어 주는 브랜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지역민과의 공동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히가시카와의 ‘JET 시스템’과 히가시카와정립 일본어학교   “히가시카와가 외국 손님 앞에서 주저하지 않는 건 행정 안에 다국적 동료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츠히로 미시마 기획총무과 주간은 프레젠테이션 첫머리에서 ‘JET 프로그램’을 꺼냈다. JET는 일본 문부과학성·총무성이 전국 기초자치단체에 배치하는 청년 국제교류 인력 제도로, 히가시카와는 CIR(국제교류원), ALT(원어민 교사), SEA(스포츠 코치) 세 직군을 고루 운용한다. 2023년 4월 기준 17개국 19명이 정규직 공무원 신분으로 일하며, “다른 농촌과 비교해도 월등히 많은 편”이라는 게 미시마 주간의 설명이다.이들은 단순 통·번역을 벗어나 마을 정책 기획과정부터 참여한다. 예컨대 CIR은 사진 페스티벌 영문 홍보문을 직접 쓰고, 외국인 방문객 동선을 분석해 안내표지 디자인을 제안한다. SEA는 초·중·고교 스포츠클럽에 코치로 파견돼 지역 아이들과 주말 리그를 꾸린다. ALT는 학교 수업 외에도 마을 도서관 낭독행사, 문화센터 워크숍에 참여해 주민이 영어를 ‘행사 언어’로 접하게 만든다. 미시마 주간은 “행정팀이 회의할 때부터 영어·일본어가 섞이니 국제교류가 별도 사업이 아니라 조직 문화가 된다”고 말한다.외국인 인재 풀이 행정 안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장치는 ‘히가시카와정립 일본어학교’다. 2012년 문을 연 이 학교는 일본에서 유일한 공립 일본어학교로, 현재 전 세계 유학생 약 300명을 1년 단기 과정으로 받는다. 커리큘럼 절반이 지역 체험·봉사로 짜여 있어 학생들은 논두렁 사진 워크숍, 축제 스태프 근무, 눈 치우기·제설 봉사를 학점으로 인정받는다. 덕분에 ‘모두가 외국 친구 한 명쯤은 알고 사는’ 생활권이 형성됐고, 홈스테이 프로그램이 30년 넘게 유지되며 교류 경험이 세대 간에 전승됐다.국제 인재와 주민이 섞이는 접점은 행정 절차에도 존재한다. ‘다양한 국제교류 사업이 다섯 갈래로 전개된다’는 슬라이드에서 미시마 주간은, 페스티벌·대회·언어교실·스포츠·음식문화 교류를 담당 부서별로 나눠 “연중 365일, 어느 계절에 와도 외국인을 만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페스티벌 기간에는 CIR 팀이 해외 작가를, 일본어학교는 학생 자원봉사자를, 관광협회는 다국어 안내 부스를 운영하며, 각 부서가 맡은 역할을 교차 공유해 사람이 끊기지 않는 장치를 마련했다.미시마 주간은 “지역에 외국인이 매년 새롭게 오는 데도 갈등이 적은 이유는 ‘실패해도 괜찮다’는 조직 문화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전례가 없으니 안 된다’는 말은 금기로 삼고, 다음 기수에게 과제와 노하우를 자연스럽게 전달해 준다는 것이다. 새로 온 인재가 시도한 프로젝트가 기대만큼 성과를 못 내더라도 이런 ‘실험 허용’ 분위기가 40년간 축적돼 현재의 국제 네트워크를 키웠다고 그는 강조했다. 지역 화폐? 지역 생활 서비스 플랫폼! 히가시카와 유니버설 카드, HUC 히가시카와정상공회에서 만든 HUC은 2017년 11월부터 실시됐다. 지역 내 경제 순환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HUC은 지역 화폐 역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 도서관 출입이나 지역민 건강검진에 사용하는 등 전반적인 지역 생활 서비스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이를 통해 큰 지출이 예상되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조기에 해결할 수 있다. 건강검진 등 사회생활 서비스를 이용하면 포인트가 쌓이니 지역민 만족도 역시 높다.지역 화폐로써 기능도 충실히 수행한다. 2012년 개교한 공립 일본어학교와 HUC을 결합한 사례도 매우 훌륭한데, 미시마 기획총무과 주간은 “학생 장학금을 현금이 아닌 HUC 포인트로 주기 때문에 유학생 소비가 그대로 내수 순환을 만든다”고 설명했다.공립 일본어학교는 일본 최초이자 유일의 ‘정(町)립’ 일본어 교육기관으로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온 재학생은 연간 300명 안팎이다. 8000여 명 규모 인구 구조에서 300명의 ‘상시 외부 소비층’은 적지 않은 성과다.미시마 주간은 “편의점까지 가맹점이어서 학생들이 밥을 먹고 기념품을 사면 자연스럽게 포인트가 순환된다”고 말한다. 카드 결제액 일부는 자영업자의 적립 포인트로 돌아가 ‘최소 수입선’을 지킨다. 장학금이 지역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 구조 덕분에 소규모 식당과 카페마저도 기본 매출을 확보한다는 설명이다.HUC는 주민에게도 생활 혜택이다. “같은 가격이면 적립되는 마을에서 쓰겠다”는 동기가 자연스럽게 내부 소비를 부추긴다. 외부 손님 역시 환대 문화에 끌려 소비 흐름에 참여한다.덕분에 ‘폐업’은 좀처럼 듣기 어려운 말이다. 미시마 주간은 “3년째 살면서 문을 닫은 가게를 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지역 소상공인의 목표도 ‘부자’보다 ‘워라밸’이다. “힘들게 일할 거면 도시에 있었을 것”이라며 “적당히 벌면 충분하다”는 분위기가 강해 과도한 경쟁 대신 상호 보완적 영업시간이 자리 잡았다. 낮엔 카페, 저녁엔 술집 같은 시간 분업도 흔해 관광객은 하루 코스로 여러 가게를 순회한다.히가시카와의 생활경제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더 이상 빈집이 없어 새 택지를 개발해야 할 정도로 이주 수요가 꾸준한 것도, 2020년 기준 홋카이도 내 ‘이주공무원’ 1위 지망이 히가시카와 정이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제도 삶도 지역의 매력이 된 것이다. 결국 사진이라는 문화 테마가 불러온 관계인구와 방문객, 유학생이 HUC라는 화폐 관문을 거쳐 가게 매출로 연결되고, 다시 주민 삶을 지탱하는 순환 구조가 완성된다. 미시마 주간의 표현대로 “사진이 사람을 데려오고, 카드는 그 사람을 생활경제로 묶어 두는” 장치가 오늘도 마을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다.결국 히가시카와는 사진이 사람을 부르고, 사람을 묶는 제도가 돈을 돌리는 선순환을 만들어 냈다. 행정이 디자인한 틀을 주민과 방문객이 생활 속에서 체험하며 완성해 온 결과다. 함양도 히가시카와처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문화언어를 찾고, 관계인구를 안정적으로 형성하며 소비가 지역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 회로를 설계한다면 지속 가능한 로컬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히가시카와 사례가 보여 주듯, 지역 활성화의 핵심은 거창한 투자가 아니라 ‘사진 찍히기 좋은 일상’을 위해 웃으며 지내는 이웃과 함께 산다는 감각, 더 나아가 함께 만드는 작은 규범과 끈질긴 실행에 있다.히가시카와에서 삶을 이어가는 주민들의 이야기는 다음 기사에서 이어진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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