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1000m 이상의 함양 15개 명산을 오르는 ‘초보 등산러의 함양 산행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주간함양 김경민 기자가 직접 함양의 명산을 오르고 느끼면서 초보 등산러의 시각으로 산행을 기록한다. 해당 연재로 천혜의 자연 함양 명산에 흥미를 가지는 독자들이 늘어나길 기대해 본다. <편집자 주>
지난 겨울의 기억이 아른거렸다. 눈발 날리는 1월 어느 날, 감투산을 목표로 나섰던 우리는 예상치 못한 등산로 착오로 대봉산 계관봉에 올랐었다. 계획했던 감투산은 고요히 뒤로 밀리고, 추위와 강풍 속에서 발걸음을 옮긴 우리는 어느새 계관봉 정상에 서 있었다. 당시 대봉캠핑랜드를 들머리로 잡았던 우리는 등산로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든 탓에 뜻밖의 고생을 했고, ‘편하게 다녀오자’며 선택했던 겨울 산행은 끝내 호된 경험으로 남았다.그러던 차에, 지난 7월 다시 감투산을 찾았다. 계절은 한겨울에서 한여름으로 바뀌었고, 혹서기 특유의 무더위가 산 전체를 덮고 있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쉬운 산행’이 필요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걷기 좋은 산, 처음 마음먹었던 감투산을 다시 찾기에 딱 좋은 시점이었다. 게다가 빼빼재 코스를 들머리로 삼는다면 지난번 대봉캠핑랜드 코스보다도 훨씬 짧고 경사도 완만하니, 여름 산행으로 적격이라 판단했다.감투산(甘投山)은 함양군 서하면과 병곡면에 걸쳐 있는 높이 1035m의 산이다. 함양군에 위치한 해발 1000m 이상의 15개 고산 중 하나로, 빼빼재(해발 약 800m)를 기점으로 하면 고도차가 200m 남짓밖에 되지 않아 실제 체감 난이도는 꽤 낮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감투산을 독립적인 목적지라기보다는 대봉산(괘관산)과 도숭산까지 이어지는 종주 코스의 초입으로 여긴다. 실제로도 빼빼재에서 시작해 감투산을 지나 대봉산, 도숭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연계 산행의 대표적인 루트로 잘 알려져 있다.‘감투산’이라는 다소 독특한 이름에는 두 가지 설이 전해 내려온다. 하나는 산 이름을 이루는 한자인 ‘달 감(甘)’과 ‘던질 투(投)’에서 비롯된 해석으로, 함양의 풍요로운 자연이 사람들에게 사과, 배와 같은 맛있는 과일을 던져주는 산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다른 설은 이 일대 산세의 상징성과 관련이 있다. 옛날 벼슬을 내려놓고 세속을 떠난 이들이 이곳 감투산에서 ‘감투’(벼슬을 상징하는 관)를 벗어 던졌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감투산에서 대봉산(옛 괘관산)으로 이어지는 길목은 예부터 속세를 떠난 이들이 자주 올랐던 길로도 전해진다.감투산은 단순히 해발고도만 놓고 보면 고산에 속하지만, 그 접근성만큼은 함양에서 손꼽힐 만큼 뛰어나다. 특히 빼빼재를 들머리로 하면 오르막길은 1km 내외, 소요시간은 30~40분 정도로 짧고 경사도 완만하다. 초심자도 걱정 없이 오를 수 있는 이 산은 첫 산행지로 손색이 없다.
다시 찾은 감투산, 이번엔 빼빼재에서
우리는 오후 3시쯤, 서하면에 위치한 빼빼재 주차장에 도착했다. 전날 전국적으로 폭우가 쏟아졌고, 함양도 예외는 아니었다. 곳곳에 산사태 피해가 발생했다는 소식도 있었기에 혹여 산길이 질퍽하진 않을까 염려했지만, 정작 빼빼재에서 감투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매우 안정적이었다. 생각보다도 훨씬 잘 정비되어 있었고, 진흙탕보다는 살짝 촉촉한 흙길 정도에 불과했다.초입은 갈참나무 숲이 짙게 드리운 능선길이었다. 숲이 울창해 강한 햇볕은 거의 들지 않았고, 흙길도 말끔히 다져져 있어 걷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다만, 전날 폭우로 인해 산 전체의 습도가 크게 올라가 있었고, 더위와 습기 속에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오르는 길이 그리 길지 않았지만, 수분 손실은 상상을 초월했다. 생수를 꺼내 들 때마다 시원한 한 모금이 온몸에 스며드는 듯했다.특별한 전경은 없었다. 그저 숲 안을 조용히 걷는 산행이었다. 오히려 너무 평이한 숲길이라 주변 배경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 덕분에 햇빛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고, 마음도 온전히 여유로웠다. 스틱 없이도 전혀 무리 없는 코스였고, 함께한 이들과 담소를 나누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금세 정상석이 눈에 들어왔다.감투산 정상에 도달한 시각은 출발 30분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보통 1시간 정도는 잡았던 산행이었기에 다소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 법도 했지만, 오히려 그 빠름이 산의 접근성을 다시금 실감하게 했다. 함양읍에서 빼빼재까지 차량으로 이동한 시간이 오히려 산행 시간과 비슷했다.정상에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감투산 정상 1035m’라는 비석이 홀로 서 있었다. 전경은 없었다. 이곳은 연계산행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감투산에서 대봉산까지 이어지는 종주를 계획한 이들에게 이 정상은 말 그대로 출발선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날 감투산 정상은 또 다른 의미를 품고 있었다. 미뤄진 숙제를 푼 기분. 지난 겨울의 착오를 떠올리며, 드디어 올랐다는 성취감이 짧은 산행이었지만 만족감을 배가시켰다.하산은 오를 때보다 훨씬 더 빨랐다.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고, 지친 기색도 없었다. 준비한 생수 두 병 중 한 병만 거의 비운 상태였다. 완만한 길, 쉬운 접근, 짧은 거리. 감투산은 누구에게나 산행의 문턱을 낮춰주는 산이었다.
처음 산행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감투산은 ‘처음’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산이다. 처음 등산을 시작하는 이들, 처음 함양의 산을 접해보는 이들, 처음 1000m급 고지를 밟아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감투산은 최적의 선택지다. 몸과 마음의 준비를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고, 동시에 정상에 올랐다는 성취감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산이다.함양의 산을 하나씩 정복하고 싶다면, 감투산을 시작으로 삼봉산 등을 차례로 오르며 몸을 만들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 지리산이나 덕유산처럼 긴 시간과 강한 체력을 요구하는 고산 종주를 계획 중이라면, 감투산은 훌륭한 워밍업 산행이 되어줄 것이다.하산 후 우리는 백전면 함양 남서로를 따라 읍내로 돌아가던 중, 도로변에 위치한 약수터 하나를 발견했다. 공중 화장실과 주차장이 함께 딸린 이곳은 백운산 약수터였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아이들은 시원한 약수에 손을 담그고 장난을 치며 웃고 있었다. 생수보다 차갑고 맑은 약수 한 컵이 지친 몸을 식혀주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감투산 산행의 마지막 코스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마무리였다.여름의 감투산 산행길은 쉽고 짧으면서, 숲은 짙고 그늘은 깊다. 더위를 피해 산을 찾는 이들에게 감투산은 지혜로운 선택이 될 수 있다. 짧지만 산행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산이 어렵다’는 선입견을 없애주는 친절한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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