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정원에는 내가 열정으로 심고 가꾼 장미가 50종 넘게 피어있다. 나는 이렇게 많은 장미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해 이름표를 만들어 달아두고, 새순이 돋을 때마다 그 이름을 속삭이며 손길을 보탰다. 마치 내 인생에 또 다른 봄이 온 듯, 아침마다 장미 덤불 사이를 거닐며 마음 한구석이 들떴다.하지만 장미는 변덕이 심한 꽃이다. 햇살을 사랑하면서도 뜨거운 열기에는 쉽게 시들고 만다. 몇 해 전부터 여름 폭염이 잦아졌다. 처음에는 힘겹게 물을 주고, 양산도 씌워주고 버텨냈지만, 점점 내 정성에는 한계가 찾아왔다.더는 수많은 장미 모두를 돌볼 수 없다는 것을, 장미를 정상적으로 가꾸려면 적어도 절반은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꽃이 많다고 내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도 아니고, 관리하지 못할 수많은 장미는 결국 아무것도 아닌 짐이 되어 버렸다. 살면서 깨닫는 것은,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오히려 그 가치를 잃어버린다는 사실이다. 너무 많은 소유는 결국 마음의 부담으로 돌아온다.음악도 그렇다. 감동이 밀려오는 그 한 곡을 반복해 듣다 보면, 언젠가 그 멜로디는 일상의 배경음이 되어 더 이상 내 영혼을 울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숨이 멎을 듯 아름다웠던 그림도 거실 벽에 일 년 내내 걸려 있으면, 어느새 무심히 지나치는 풍경이 되고 만다.사람의 감각은 늘 새로움을 갈구한다. 그래서 감동은 항상 처음에 머문다.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보던 장미 한 송이, 귀를 열고 기다렸던 음악 한 곡, 갤러리 한구석에서 마주친 낯선 그림 한 점. 그 순간이 주는 감동은 언제나 짧고도 강렬하다. 그러나 우리는 욕심을 낸다. 그 감동을 소유하고, 반복해 누리려 하지만, 그럴수록 감동은 점점 옅어지고 만다. 이제는 알겠다. 내 정원에 남겨둘 꽃은 ‘많음’이 아니라, ‘돌볼 수 있음’ 이라는 것을. 우리 삶도 그렇다. 과도한 소유와 지나친 반복이 아닌, 소박하게 돌볼 수 있는 만큼의 사랑과 관심, 그리고 늘 새로운 감각을 잃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다.아무리 좋은 것도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 오히려 마음은 더 깊어지고, 남은 것에 대한 애틋함이 자란다. 오늘은 장미 몇 그루 곁에 앉아 조용히 생각을 정리해 본다.나는 내 삶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감동도, 모두 한정되어 있으니 말이다. 결국 남는 것은, 늘 곁에 있어 줄 수 있는 것, 오랜 시간 돌볼 수 있는 것, 그 소박한 것들이 내 삶의 썸네일이 되고 은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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