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 오후, 병곡면 도천마을 노모당엔 어르신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20여 명의 어르신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공을 던진다거나, 허공에 콩주머니(오재미)를 던졌다 받는 놀이를 통해 어르신들의 뇌와 손의 감각을 자극한다. 가끔 실수를 하면 벌칙으로 신나는 노래를 박수치며 함께 부른다.다리를 펴고 손을 쭉 뻗어 스트레칭도 하고, 손을 따뜻하게 비벼 눈 마사지를 하거나 팔과 다리를 쓰다듬는 동작을 하면서 자신에게 고맙다, 수고했다 인사를 건넨다.노모당에 모인 어르신 대부분은 80~90대다. 그러나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어르신들이 깔깔대고 웃을 때면 마치 교복 입은 소녀들 같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얼굴엔 화색이 돌고 정정하다.이 시간을 이끄는 사람은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박정숙 씨다. 노모당 총무인 그는 벌써 3년째 매주 화요일마다 동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건강체조와 힐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은퇴 후 10년 전 귀촌해 재능기부 시작백전면이 고향인 박정숙 씨는 부산과 창원 등 도시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부산 출신인 남편과 은퇴 후 살 자리를 찾으며 경남 곳곳을 다니다 박 씨의 외가 동네인 병곡면에 자리 잡게 됐단다. 10년 전 귀촌한 그는 웃음코칭과 건강체조를 배운 경험을 살려 도천마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재능기부를 시작하게 됐다.“함양에 와서 웰니스관광 코디네이터 전문가 양성 교육에 참여하게 됐어요. 이후 산삼축제에서 힐링투어를 운영하기도 했고, 생활지원사를 하면서 공무원 대상 힐링아카데미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몇 해 전, 상림 인근 항노화관에서 운영되던 어르신 대상 프로그램이 종료되면서 ‘이 좋은 프로그램을 우리 마을에서라도 지속해 보자’ 하는 마음에 재능기부를 시작했다.처음엔 어르신들이 농사일에 치여 참여를 꺼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모두가 이 시간을 손꼽아 기다린다. 한복순 어르신은 “제2의 인생을 사는 것 같다” 말할 정도로 할머니들의 삶에 활기를 불어 넣는 프로그램이다.
다리를 뻗지 못할 정도로 몸이 굳어 있었던 어르신들이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손이 발 끝에 닿을 정도로 유연해졌다. 순발력이 필요한 제법 어려운 동작도 곧잘 따라 하게 됐다. 무엇보다도 자꾸 깜빡깜빡 생각이 나지 않던 이웃들의 이름도 잘 기억한다.전복달 노모당 회장은 “박정숙 씨 덕분에 주민들이 건강해지고 활력이 넘친다”면서 “함께 모여 운동도 하고, 노래도 하면서 웃고 떠들다 보니 주민들의 사이가 더 돈독해졌다”고 말했다.박정숙 씨는 “평생 가족들을 위해 살았고, 농사일밖에 모르던 어르신들이 안타까웠다”며 “이제라도 자신을 사랑하고 나를 돌보며 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엄마 같이 딸 같이 “이제는 한 가족”박 씨는 건강체조뿐만 아니라 그림 그리기 수업을 진행, 지난해에는 어르신들은 직접 그린 그림으로 책을 만들기도 했다. 또한 어른들이 아프면 직접 병원까지 모시고 오갈 정도로 마을 어르신 한 분 한 분을 살뜰히 챙기고 있다. 이 같은 활동으로 재작년엔 군수 표창까지 받았다. 마을 어르신들은 “우리가 언제 이런 걸 해보겠냐”며 “박 선생님 만한 사람이 없다”, “우리 마을에 보물 같은 사람이다”, “너무 고맙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박정숙 씨는 “어르신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인데 오히려 지금은 내게 큰 힘이 되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최근 남편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 어르신들이 엄마처럼 걱정하며 챙겨주셔서 큰 위로와 응원이 됐다고.한편 박정숙 씨는 어르신들의 변화를 체감하면서 더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싶어 통합인지놀이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하지만 통합인지놀이 기자재 가격이 만만치 않아 자체적으로 운영하기엔 부담이 크단다.“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사람들이 바로 이분들이에요. 어르신들이 활기차게 노년을 보내며 여생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어르신들의 뇌 자극 및 인지 능력 향상을 위한 놀이기구 지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