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끓어오른다. 올여름 연이은 폭염은 사람들의 일상과 건강을 위협한다. 자비라고는 일도 없어 보이는 더위에 사람들은 평온함을 잃고 무기력하거나 날카로워진다. 이럴 때는 일단 시원한 곳으로 피신하고 보는 것이 상책이다. 바야흐로 바캉스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바캉스(vacances)’란 ‘비어있다’는 뜻의 라틴어 ‘vacare’에서 나온 프랑스어로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찾는 시간’, ‘회복을 위한 일탈’을 말한다.
계곡이나 바다가 여름 바캉스지로 단연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인다. 전국의 계곡과 바다는 왁자하게 몰려든 사람들로 또 몸살을 앓는다. 어디로 떠날 것인가.나의 선택은 바다이다. ‘바다’ 하면, 검은 바위에 부딪히는 하얀 포말과 넓은 수평선에서 끝없이 해안가로 몰려오는 파도가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이미지를 대부분 떠올릴 것이다. 생각만 해도 더위를 싹 날려줄 것 같다.그러나, 나는 올여름에는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바다를 보러 떠날 것을 권한다.앨리스는 1939년에 태어나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이다. 이 작가의 놀라운 점은, 결혼하고서 아이 셋을 키우면서 부엌에서도 짬짬이 그림을 그릴 정도로 그림에 진심이었으며, 올해 87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적 여정을 걸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다가 그녀의 그림은 인간 능력의 한계는 어디인가 싶어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요즘, 전시장을 다니다 보면 추상표현주의가 대세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을 그린 것인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종잡을 수 없는, 그런 어설픈 작품들을 보면, 사실주의 작가들의 치열함이나 성실성이 대단해 보일 때가 있다.
앨리스의 그림은 일상적인 풍경을 극사실주의로 표현하고 있다. 언뜻 보면 사진인가 싶을 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하게 그렸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실재하는 풍경 그 자체가 아니라 거기다가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재해석한 풍경이다.그녀의 바다는 서정적이다. 격렬하거나 사람을 압도하지도 않는다. 다만 청량하고 투명하다. 고요로움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은 바람에 휘날리는 커튼이다. 1994년 친구의 집에 방문했을 때 창문에 드리운 커튼이 바람에 살랑이는 모습에 매료되어 이후 그의 그림에는 바다 이미지와 함께 커튼이 항상 등장한다.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푸른 바다 위의 윤슬, 바람에 부드럽게 날리는 커튼, 빛의 움직임과 바람의 흐름이 바다의 이미지를 만든다. 멈추어 있는 듯 천천히 움직이는 듯 평화의 시간으로 데려간다.그런데, 이 바다는 집 안에서 창을 통해 바라다보는 바다이다. 우리에게 ‘집’은 어떤 공간인가. 가장 편안한 곳,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는 공간이다. 시선은 편안한 집 안에서 밖을 바라본다. ‘안’과 ‘밖’을 이어주는 ‘창’은 나와 세계를 이어주는,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이다. 이 그림을 바라보는 나는 그림 속으로 들어가 주인공이 된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에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바라보는 관람자가 곧 그림 속의 인물이 되어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이다.더현대 서울에서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회고전 ’지금 그리고 영원‘가 9월 20일까지 열리고 있다. 65년 넘는 세월 동안 치열하게 추구해온 그녀의 열정이 초기작부터 140여점의 원화와 드로잉, 유화 등에 담겨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올여름 바캉스는, 앨리스 그림 앞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창가에 서서, 빛과 물, 그리고 바람이 만들어내는 고요함에 마음을 적셔 보는 것도 멋진 바캉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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