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엔 감자 캐야지!올해 3월, 아이들과 처음으로 만난 날 씨감자를 심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감자를 소개해 주고 싶어서 텃밭 교사들이 겨우내 보관하고 있던 5종류의 감자는 눈뻘개감자, 거창하지감자, 평택노란감자, 러셋감자, 자주감자였습니다. 모양과 색깔이 다 달라 신기한지 아이들은 한참을 관찰하더니 모둠별로 심고 싶은 감자를 정해 심고 이제껏 열심히 물 주고 보살펴 주었습니다.드디어 직접 키운 감자를 수확하는 날! 얼마나 달렸을까? 크기는 적당할까? 저 또한 걱정 반 설렘 반이었습니다. 너무 양이 작아서 실망할까 봐 제 밭에서 키운 감자를 한아름 들고 갔더랬죠. 하지만 걱정과 달리 학교 텃밭에서도 아이들이 노력한 만큼, 친구들과 나눠 먹을 만큼의 감자가 나왔습니다. 감자 하나가 나올 때마다 환호성도 함께 터집니다. “우와~” 감자 입장에서는 이만큼 귀한 대접을 받을 줄 몰랐겠지요. 한 알 한 알이 저희에겐 소중하니까요.이렇게 수확한 감자를 종류별로 삶아 맛봅니다. ‘진짜 맛이 다를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친구들도 먹어보고는 “샘! 진짜 맛이 다른데요? 이건 포슬포슬하면서 달콤하고, 이건 단단하면서 감자 원래 맛이 더 많이 나요” 하며 눈이 똥그래집니다. 하나같이 맛이 다르고 성질이 다릅니다. 어떤 친구들은 눈뻘개감자만 찾고 어떤 친구는 거창하지감자만 찾습니다.현대에는 수확량이 많고 상품성이 좋은 쪽으로 많이 심다 보니 점점 품종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각자의 환경에 맞는, 선호하는 맛을 중심으로 품종을 지켜나갔기에 종의 다양성이 지켜졌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주로 다국적 기업에서 판매하는 씨앗과 모종이 그 자리를 대체했고 많은 농민은 재배하기 간편한 쪽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어졌습니다. 다양성이 줄어든다는 것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종자의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오랜 시간 우리 땅의 기후와 성질에 맞게 자라온 유전 정보는 그 무엇도 대체할 수 없는 귀한 자원입니다. 한 번 잃어버린 종자는 다시 되살릴 수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이론적으로 전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신 다양한 맛을 보고 내가 선호하는 감자를 찾아보고 직접 키워본다면 아이들은 직간접적으로 이런 사실들을 배워갈 것입니다. 오늘처럼요. 농사의 다양한 가치돈만 내면 먹거리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냉동식품과 밀키트는 필수가 되었습니다. 그에 반해 작물을 직접 키워내서 식탁에 올리기까지의 시간과 수고를 생각한다면 참으로 비효율적입니다. 하지만 효율과 비효율을 가르는 기준을 뭐로 삼을 것인가에 따라 달라지는 건 아닐까요?작물을 돌보는 긴 시간 동안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많은 것들을 발견합니다. 열매가 하나하나 맺힐 때마다 놀라워하며 친구와 교사에게 자랑합니다. 혹여나 감자가 다칠까 봐 살살 흙을 파다 ‘뿅’하고 나오는 감자를 만나는 일은 즐겁습니다. 매일 물 주며 돌보니 조금씩 자라나는 작물이 기특하고, 때가 되면 열매가 맺히고 날이 쌀쌀해지면 씨앗을 맺고 사라지는 식물의 한 생애를 온전히 경험하면서 아이들은 감각적으로 자연의 순환을 배워갑니다. 때론 날씨가 도와주지 않고 땅의 거름기가 부족해 노력한 만큼 수확을 못 해 실망하더라도 실패가 밑거름되어 내년 농사를 계획해 볼 수 있습니다. 땅에 기반해 생명을 기르고 돌보며 그 생명을 받는 순환적 관계인 농업은 다양한 교육적 가치와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나를 위한 아름다운 식탁 차려보기봄부터 키워온 작물들을 하나둘 수확할 시기입니다. 상추도 벌써 꽃대를 올리고 있고 바질과 허브들도 무성해졌습니다.특히 다양한 꽃과 허브는 작물의 수정을 도와주는 벌들을 불러들이기도 하고 풀이 덜 자랄 수 있도록 땅을 덮어주는 멀칭 효과도 훌륭히 해주었으며 마지막으로 예쁜 식탁을 차리기에 손색이 없는 재료가 되었습니다.모둠별로 심은 다양한 작물들을 수확해 샐러드와 오픈 샌드위치를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오이 맛이 나는 보리지꽃과 겨자 맛이 나는 한련화 잎을 빵 위에 살짝 올리기만 해도 근사해집니다. 크림치즈에도 딜을 조금씩 잘라 섞어 넣으니 독특한 맛이 납니다. 직접 키운 감자도 삶아 으깨서 마요네즈와 딜, 바질 등 허브를 잘게 잘라 넣어 새롭게 만들어봅니다. 낯선 향과 맛에 어색해하면서도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예술적 감각을 꽃피워보는 아이들. 눈과 입이 함께 즐겁습니다.나를 위한 아름다운 식탁을 차리는 것은 나를 귀하게 여기고 돌볼 줄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를 먹더라도 건강하게 자라온 것을 선택하고 귀하게 먹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텃밭만 한 것이 없지요? 작물을 키우기 위해 흘린 땀방울을 생각한다면 허투루 먹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귀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을 배워갑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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