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기 위한 《사상계》 여름호(복간 2호)가 출간됐다. 이번 호에서는 보수·진보 원로, 진보 청년, MZ세대가 참여한 4개의 ‘대담한 대담’을 통해 한국 사회가 마주한 갈등과 피로의 원인, 그리고 공존과 회복의 길을 모색하는 목소리를 담았다.보수 진영 대담(조갑제, 정규재, 김진)은 12.3 계엄을 한국 사회의 내재된 문제들이 드러난 사건으로 평가하며, 사회 유지의 최소 조건으로 ‘국민의 단결’을 강조했다. 조갑제는 한반도의 자유 통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한중일 3국의 평화 공존 경험을 언급했다. 이들은 보수가 대미 의존적이라는 선입견을 불식시키며,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인 ‘국민 단결’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진보 원로 대담(이정옥, 조희연, 한인섭)은 이번 시기를 통해 ‘더 나은 민주주의 안에서의 진보 기준’을 재설정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드러냈다. 12.3 계엄부터 6.3 선거까지의 과정을 되짚으며, ‘공화적 민주시민’ 교육을 통해 타인에 대한 배려와 갈등의 조화로운 접점 찾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옥 전 여성가족부 장관은 서구의 자유 개념이 한국 사회에 ‘탈규제’와 ‘시민참여’로 분열되어 인식되는 현상을 지적하며, 동양적 재해석의 필요성을 언급했다.진보 청년 대담(장혜영, 박지현, 박혜민, 김혜미)에서는 산업화와 민주화 세대를 지나며 진보·보수의 기준이 모호해진 현실 속에서 청년 정치인의 고민이 공유됐다. 김혜미 마포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연결 가능성을 짚으며, ‘좋은 정당이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믿음이 활동의 원동력이라고 밝혔다. 청년 정치인들은 정당 정치 참여 이후 정치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진 현실을 지적하며, 개인의 정치 참여가 개인의 회복으로 이어지는 ‘피드백 고리’의 복원을 주장했다.MZ세대 문명 대담(전범선, 함은세, 임명묵, 임정희)에서는 현 시기를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닌 문명사적 전환기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강조됐다. 함은세 작가는 ‘계엄 불면증’ 시기까지의 사회적 위기를 지켜보며 개인의 회복 능력이 상실된 지점에 도달했다고 진단했고, 전범선 작가는 현재의 갈등을 ‘죽임의 문명’으로 규정하며 낡은 시스템을 넘어 새로운 ‘디지털 문명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이번 《사상계》 여름호는 한국 사회의 갈등과 피로의 원인을 과거사 청산의 실패, 기존 권력의 잔존, 근대적 정치 시스템의 한계에서 찾으며, 세대를 넘어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해원과 상생’의 메시지를 통해 사회의 잔해를 치우고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단순한 제도 개편을 넘어 시스템 자체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공화’라는 개념이 단지 체제의 이름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엇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묻는 물음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처럼, 《사상계》 여름호는 낡은 이념의 틀을 넘어 공존과 회복의 길을 모색하려는 한국 사회의 새로운 움직임을 담아냈다.
보수원로 정치대담(조갑제/정규재/김진) 김 진: ‘정상적인 국가’를 지켜야 합니다. 민주주의, 법치주의, 시장 질서, 상호 배려, 적절한 복지, 지속적인 성장, 실용적 외교 안보, 통일에 대한 현명한 준비와 대처. 그러려면 정상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조갑제: 국가든 민족이든 개인이든 자존심을 지켜야 합니다. 신라에 의해 최초의 민족국가가 만들어졌고, 이승만 정부에 의해 최초의 국민국가가 만들어졌고, 해방 후 경이적인 문명국가를 만들었다는 보수의 자부심, 이걸 지켜야 합니다. 정규재: 보수가 품위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는 말을 종종 합니다. 보수는 자신이 대한민국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품위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요즘 진보 진영과 싸우고 갈등을 빚으면서 품위 상실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보수가 소수파가 된다고 해서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럴수록 오히려 소수파가 되어도, 진보 진영이 ‘보수는 그래도 품위가 있다. 세상에 대한 지혜가 있고,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있더라’ 이런 말을 들어야 합니다.
진보원로 정치대담(이정옥/조희연/한인섭) 한인섭: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은 불구대천의 원수가 아니라, 그냥 우리 가족이고 이웃입니다. 지역별 차이도 나는데, 전국이 3시간 권에 다 들어가니까 상대 지역도 그냥 이웃 지역입니다. 결국 견해차는 있는 것이고, 차이가 가족·이웃 간의 일이니까 결국 어떻게 공존하는 가운데 차이를 어떻게 대화해나갈까 하는 점에 대해 누구나 실존적 고민과 실천을 해나가야 한다고 봅니다.조희연: 최근에 저는 자기 성찰, 자기 객관화에 기초한 역지사지형 성찰 같은 덕목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성찰을 이야기하는 것은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나쁜 적, 나쁜 악마와의 투쟁이나 전투성만으로 충분조건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동안은 악마와 같은 국가와 독재자가 있었기 때문에 그랬지만, 지금은 그 악마성이 우리 안에 있다는 성찰적 인식도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자유와 권리를 향한 적과의 전투성의 의미로 민주성을 주로 사고했었는데, 이제는 그것을 넘는 성찰에 기초한 ‘공화성’에 대한 강조가 필요합니다. 이정옥: 자유라는 개념을 보수적으로 이해하면 정부의 간섭도 없고 지원도 없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자유’를 강조하는 보수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대기업의 정부 의존성은 예나 지금이나 높습니다. 코로나 때 지원금도 제일 많이 받아 가고 그러는데 정말 자율적으로 경영하는가 하면 그렇지 않거든요. 개념하고 현실이 다른 것을 가리키는데, 그것을 쓰는 사람 자신이 옳게 쓰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점검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어쨌든 원래 Republic을 ‘공화’로 번역하는 것이 맞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리퍼블릭’은 단어 뜻 그대로만 한다면 ‘공공성을 재구성한다’라는 뜻이거든요. 근데 우리는 공화라는 개념으로 ‘더불어 삶’을 강조하고 싶어 하지요. 우리가 개념을 어떻게 구상하고 재구성할 것인가 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인 것 같습니다.진보청년 정치대담(장혜영/박지현/박혜민/김혜미) 박혜민: 우리와 동료가 될 수 있는 유권자가 어디에 어떻게 모여 있는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지는 저희한테도 되게 어려운 과제에요. 하지만 동시에 전환을 만들어야 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그 안에서의 미디어 모양도 고민하게 되는데, 예를 들면 저희는 인스타그램이나 뉴스레터를 하지만 이번에 정치권에서는 그 숫자가 별로 유의미한 미디어 숫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좀 느꼈거든요. 유튜브는 몇 명일까 아니면 신문이 나오나 약간 이게 훨씬 익숙하기 때문에. 그러면 우리 세대에서 어떤 식으로 메시지의 관점을 많이 확산할까 이런 것도 고민이 됩니다.박지현: 저는 보수라고 하는 것이 진보보다는 쉽다고 생각해요. 보수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진보가 훨씬 더 어려운 이유는 기존의 것을 지키면서 또 새로운 것들로 계속해서 변화를 모색해 나가야 되기 때문에 더 어렵다고 생각해요.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변화를 두려워하잖아요. 이미 가지고 있는 게 많은 기득권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잃을까 봐 다른 새로운 세상으로 손을 뻗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데요. 김혜미: 저는 광장에 매일 어떤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나갔지만, 제 스스로 내가 어떤 정치를 해야하지 이런 난감한 느낌이 있었어요. 물론 계엄을 한 대통령을 시민들의 힘으로 절차적 과정을 통해서 내려보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그 수많은 광장과 투쟁 현장을 열어냈다는 사실, 그리고 소수자들과 여성들이 무대에 올라가서 자신의 인생을 얘기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말했다는 사실들 하나하나는 너무 감격스럽고 감동적이지만, 저는 아직 이 일련의 과정이 아직 믿기지 않는 것 같아요. 어떻게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이렇게까지, 어떻게 대한민국 정치가 그렇게까지 무너질 수 있나 하고요.장혜영: 결국에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이라는 감각이 때로는 오늘의 생존에 도움이 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물론 혼자서 시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가 곧 나의 존재 전부를 규정하도록 내버려두는 거는 좀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인식하는 것과 이 시대에서 내가 어떤 개인으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것 사이에는 종이 한 장만큼이라고 할지라도 분명히 차이가 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시대가 이러니까 순응해”라고 말을 하지만, 오늘의 진보정치를 말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싫은데요 생각 좀 해볼게요”라고 말하는 무게를 견디고 있다고 생각해요. MZ세대 문명대담(전범선/함은세/임명묵/임정희) 함은세: 저는 인류에 대한 희망이 있어요. 이렇게 세상이 막장으로 치닫는 것 같아도, 우리는 결국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이상한 믿음이 있고, 그 믿음이 제 안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만약 그게 사라진다면 저는 이 자리에서 주저앉고, “인간에게 기대할 게 뭐 있냐, 인간 다 끝났어” 이렇게 돼서 절망 서사, 디스토피아로 가겠죠. 유토피아를 만드는 게 물론 쉬운 건 아니지만, 결국엔 정말 고루하고 진부한 말일 수 있지만, 사랑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전범선: 저는 ‘함께’라는 말보다 ‘하나 됨’이라는 말을 자주 써요. 그 말 안에는 온전함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고, 개인과 사회, 부분과 전체를 나누지 않고 모두가 연결돼 있다는 감각이 있어요. 그러니까 저는 개인들이 모여서 사회를 구성한다고 보지 않아요. 부분과 전체, 나와 나라, 나와 지구는 결국 하나의 존재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나라가 있기 때문에 내가 있고, 어머니가 있기 때문에 내가 있고, 지구가 있기 때문에 내가 있는 것이고 동시에 내가 있기 때문에 나라도, 어머니도, 지구도 있는 거죠. 그래서 그 하나 됨으로 가기 위해서, 결국 내 안에 있는 ‘진짜 나’, 참나를 찾아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그 참나는 내가 신났을 때의 나, ‘신나는 나’가 곧 참나라고 생각해요. 임명묵: 한국 사회는 근대 문명이든, 6공화국 체제든 다들 마음속으로는 “이대로 가도 되는 건가? 지속 가능한가?” 하는 느낌을 갖고 있었잖아요. 우리가 한 40년을 더 살든 50년을 더 살든 그때 어떤 삶이 펼쳐져 있을지가 가늠도 안 가고, 그냥 지금 이대로 지속만 돼도 OK. 발전은 바라지도 않고, 사실 필요도 없고요. 현재의 삶의 조건조차도 이대로 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은 누구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계엄 덕분에 드러난 거잖아요. 한국 안에서도 그렇고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이거는 이대로 가면 진짜 큰일 나겠구나 하고요. 진짜 이상한 방식으로 위기가 딱 드러났고 그 덕분에 진보든 보수든, 그리고 세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지금 이대로 가면 안 된다”라는 것을 진지하게 듣기 시작하고 있어요. 임정희: 그런데 이번 계엄이 딱 터졌을 때는 망설임 없이 택시를 타고 국회 앞으로 갔어요. 그때 심지어 회사에서 녹취록 작업 중이었는데도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엔 “그래, 지금은 가야 한다”라는 마음이 더 컸어요. 가보니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 있는 거예요. 심지어 장갑차가 온다는 소문에 사람들이 맨손으로 막으려고 하더라고요. 두려움을 갖지 않고 일단 나아가게 만들었던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이걸 생각해 봤을 때, 분명히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너무 많지만, 그래도 우리 안에 ‘해야 한다’라는 마음, 어떤 심리적인 합의 같은 것이 형성된 게 아닌가. 만약 이번에도 탄핵이 안 됐다면 정말 깊은 무력감에 빠졌겠지만, 결국 탄핵이 되었고, 그게 다음을 상상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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