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1000m 이상의 함양 15개 명산을 오르는 ‘초보 등산러의 함양 산행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주간함양 김경민 기자가 직접 함양의 명산을 오르고 느끼면서 초보 등산러의 시각으로 산행을 기록한다. 해당 연재로 천혜의 자연 함양 명산에 흥미를 가지는 독자들이 늘어나길 기대해 본다. <편집자 주>
지난달 지리산 천왕봉을 다녀온 뒤로 산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오랫동안 마음에만 담아 두었던 산을 다녀온 뒤여서일까. 이제 웬만한 산은 어렵지 않겠다는 묘한 용기가 생겼다. 이번에는 지리산 줄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삼정산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마천면 덕전리와 남원시 산내면 경계에 걸친 삼정산은 높이 1182m로, 이름은 아담하지만 험준하기로 소문난 산이다. 아래 하정, 음정, 양정 세 마을 이름을 합쳐 삼정(三政)이라 불리는 이 산은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해 왔다.
삼정산은 사람의 손길이 덜 닿은 만큼 길이 험하고 접근성이 좋지 않아 한때는 일부 구간이 통제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 산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예전에는 마음먹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달 지리산 백무동 코스를 다녀온 터라 이번에는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오히려 기대가 앞섰다. 초여름의 삼정산은 계곡이 살아있고 숲이 우거져 한여름 산행지로도 손꼽힌다. 다만 전날 비가 제법 내려 길이 미끄럽진 않을까 걱정도 있었다.6월22일로 잡았던 일정은 비 예보로 잠시 미뤄질 뻔했지만, 다행히 날이 갰다. 전날 밤까지도 하늘을 보며 마음을 졸였는데, 새벽 공기가 깨끗했다. 덕분에 우리는 약속대로 삼정산 산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오전 9시35분, 도마마을에서 견승골과 삼불사를 지나 정상으로 향하는 코스. 거리로는 약 4.8km 남짓, 예상 소요시간은 2시간 반 정도였다.마을에서 처음 20분가량은 포장도로가 이어졌다. 산으로 들어서기 전부터 뜨거운 포장도로의 열기가 발바닥을 데웠다. 이 계절 햇살은 이미 한여름처럼 따가웠다. 불과 한 달 전 지리산을 오를 때만 해도 기온은 선선했고 바람은 시원했다. 6월 말의 삼정산 입구는 그때와 달랐다. 계절은 이미 부쩍 올라서 있었다. 앞으로 다가올 7월과 8월의 산행이 조금은 두려워졌다.
포장도로를 벗어나자 곧 계곡이 동행했다. 물소리가 생각보다도 더 크게 들렸다. 전날 내린 비 덕분에 계곡은 꽤나 수량이 많았다. 물길 옆을 따라 오르는 산길은 처음부터 경사가 있었다. 한동안 이어지는 계곡 소리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계곡은 산행 내내 이어졌다. 이름만 들어도 무성한 삼정산의 숲은 풀과 나무로 뒤덮여 있었다. 초여름이라 풀은 온 힘을 다해 자라고 있었다. 물기 머금은 숲은 걷는 내내 시원하면서도 눅눅한 공기를 품었다.삼정산이 험하다고 한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초여름 풀숲은 길을 감췄고, 바위 위를 흐르는 물길은 미끄러웠다. 때로는 계곡과 길이 한 몸처럼 겹쳐져 있어 신발이 물에 젖는 것을 피하기 어려웠다. 바위를 조심스레 딛고 건너며 안전장비의 중요성을 새삼 다시 깨닫는다. 생각해보면 지리산 백무동 코스는 꾸준히 오르면 되는 코스였지만, 삼정산은 발밑이 그때그때 달라져 더 많은 집중이 필요했다.하지만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계곡과 숲길, 갑자기 나타나는 돌계단, 짧은 평지와 다시 시작되는 오르막이 교차하며 풍경은 계속 바뀌었다. 무엇보다 특별했던 것은 오르는 길목마다 사찰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었다. 삼불사와 상무주암, 그리고 그 너머 이름 모를 작은 암자까지, 산속 깊은 곳에 사찰이 있다는 것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자, 오랜 세월 사람과 산이 함께 살아온 증거였다.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숨이 거칠어진다. 중간중간 상무주암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른 코스로 삼정산에 오른 이들이었다. 마천면 도마마을에서만 오르는 줄 알았는데, 남쪽 산내면 쪽이나 지리산 줄기에서 넘어오는 이들도 있었다. 산은 길을 품고 있고, 그 길은 사람마다 다르다. 잠시 말을 나누고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에 다다르기 전 마지막 오르막은 짧지만 만만치 않았다. 발밑 돌길이 습해 미끄러웠고, 몸은 이미 계곡 옆 습기와 더위로 무겁게 젖어 있었다. 그래도 끝은 있다. 오후 12시20분, 마침내 삼정산 정상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조금 늦었지만, 오히려 그만큼 정상의 시원한 바람이 반가웠다.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야 다시 하산길에 나섰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오는 길은 늘 조심스럽다. 돌계단과 계곡길이 이어지는 삼정산의 하산길은 방심하면 발목을 잡는다. 하산 중간에는 다시금 계곡물이 다리를 적셨다.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디며 오후 3시7분, 도마마을로 돌아왔다.모두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산행은 성공이었다. 내려와서 먹은 콩국수 한 그릇은 여름 산행의 피로를 단숨에 씻어냈다. 시원한 국물과 푸짐한 면발, 그 순간만큼은 차가운 맥주 한 모금이 떠올랐다. 누구는 산행의 목적이 하산 후 술 한 잔이라고도 하지 않는가.삼정산은 여름 산행으로 썩 괜찮은 산이다. 계곡을 끼고 있어 한여름에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장마철에는 길이 미끄럽고 물이 불어나 위험할 수 있으니 반드시 날씨를 잘 보고 올라야 한다. 준비 없이 오르기엔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니다. 무성한 숲과 계곡 소리, 사람의 숨결이 깃든 암자와 돌길. 그 모든 풍경이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는다. 여름날 삼정산은 꽤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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